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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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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5일 11시 39분 등록
밀란쿤데라가 쓴 '느림'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종종 '느리게 살자'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들을 보곤 한다. 그러한 책들을 따로 읽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그간 신문, 방송 등에 언급된 것들을 보면 그러한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향이 작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한편으로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러한 책들이 세상의 흐름을 바꿀만큼 강력하지는 못한 것 같다. 즉, 개인에게 어떤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주기는 했지만 사회적인 이슈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느리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 달리기 시합. 어릴 적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을 하면, 할때마다 등수가 달라지지 않았다. 몇명이 뛰든 상관없이 나의 등수는 언제나 숫자가 아닌 문자로 표현되었다.

말을 하는 것도 그랬나보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그에 관한 얘기를 하도 여러번 들려 주셔서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내가 세살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첫 마디를 들을 때까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무척이나 걱정하셨다고....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도 또래들 보다 다소 시간이 걸렸었나보다.
한참 나이가 들었을 때. 어머님으로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나에 대해 평하신 것을 듣게 되었다.
처음 나에 대해 하신 말씀이 지진아일지 모른다 하셨단다. 몇 개월 뒤 선생님으로부터 달라진 평을 들었다고 하셨다. 재동이는 늦되는 아이라고....
내 기억에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서서히 그 곳 생활에 적응해 갔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느리다는 것은 은연 중에 '게으름'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혹시 나 혼자만의 편견을 확대 해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괴로운 일이기에 나 스스로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강하게 규정 짓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에 대해 내려지는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다른 해석을 시도한다. 그것은 또한 온당한 결론으로 귀결 되어지기도 하고 자기합리화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찾아낸 말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신중함'이다. 그 다음이 '여유로움' 정도이고..

사업 파트너로 일하게 되는 회사의 팀이 내가 일하는 사무실 밑으로 이사를 왔다. 새로운 작업 공간에서 컴퓨터, 인터넷과 관련한 부분의 일은 모두 내게 맡겨졌다.
초기에 그러한 작업 환경을 만드는 데에 다소 시간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종종 전산 환경에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그때마다 나는 호출 당하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종종 성격 급한 상사가 문제의 원인을 다짜고짜 묻는다. 상사야 즉각적이고 속시원한 답변을 바라겠지만 그런 질문일수록 나는 오히려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컴퓨터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때 요구되는 자세 중 하나가 차분함이다. 대체로 급하게 행동하면 행동할수록 문제 해결이 늦어진다.
가급적 마우스 클릭 하나도 덜하는 것이 좋다. 급하게 이것저것 막 클릭하다보면 컴퓨터는 그 작업 하나하나를 수행하느라 오히려 처리 속도가 늦어진다.
때문에 상사가 닦달을 해도 거기에 동요하지 않고 내가 하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단거리 경기는 스타트가 중요하다. 출발이 늦으면 앞서 가는 사람에 비해 몇배 많은 에너지를 소진해야 한다. 반면에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기는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 초반에 페이스를 오버하게 되면 레이스 완주조차 힘들게 된다. 처음에 앞서 나가는 사람이 마무리 지점에서 가장 일찍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인생이 마라톤과 같다면 그만큼 긴 레이스에 맞는 전략을 짜야 하는데...
이러저리 생각이 엉켜 버린다. -_-
IP *.97.22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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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07.06 15:37:24 *.118.67.80
언제나 나의 등수는 숫자가 아닌 문자...

정감이 가는 말이야. 그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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