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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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그리고 정적.
그것은 어느 날 삶의 권태감을 지닌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1962년 홍콩. 공동주택의 나란한 방에 같은 날 이사오는 첸(장만옥)과 차우(양조위)는 이렇게 서로에게 매료된다.
꽉 끼인 실크 드레스와 뾰족한 하이힐. 머리를 곧추 세운 여자는 저녁마다 하얀 면발에 뽀얀 김이 가득 담겨 있는 국수통을 들고 어두운 홍콩의 골목길을 거닌다.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넘긴 머리에 검은색 구두. 정장차림의 남자는 국수가게의 계단에서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서로를 그저 스쳐 지나간다.
네델란드 화가 ‘몬드리안’의 후기작품을 본 적이 있는가? 온통 수직과 수평으로 면분할이 되어있는 가운데, 강렬한 원색만이 면분할 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그림을. 그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곳에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을 서로 다른 색채가 투여되지만, 결국엔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그 그림들을.
왕가휘의 2000년 작, 화양연화는 몬드리안 그림을 연상시킨다. 몇 개의 공간과 색채로 구성되어있는 그 그림들의 각 공간들을 통해 감독은 서로에게 다가가려하지만, 갈 수 없는 외로움과 느림의 정서를 보여준다.
그 그림의 중심부엔 빨간색이 차지하고 있다.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화면 전체를 메우는 오프닝 크레딧. 마치 홍콩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 과도 같은 이 커다란 바탕 화면은, 홍콩 60년대의 홍콩으로 관객을 이끈다. 차우가 첸부인에게 함께 글을 쓰자고 호텔로 초대하는 장면. 그녀는 거절하지만, 결국 달려온다. 그때 그녀는 샛빨간 코트를 입고 있다. 호텔 복도의 휘장도, 그 바닥도 붉다.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 오른편에 가장 커다란 면이 자리잡고 있는 바로 그 붉은 색이다. 이 붉은 색은 서로를 향한 사랑의 색이다.
서로가 서로를 강력히 원하지만, 각자의 남편과 아내가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애인 사이라는 것을 확인 했을 때 ‘절대 잘못되선 안돼요.’ 라고 이야기 하며 못박는 두 사람. 그때 하얀 식탁과 차우의 남방, 그리고 다음다운 답배 연기의 색채는 사랑의 허무함을 나타내는 백색이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 이루는 작은 공간들이 무색으로 남겨져 원색을 강조한다. 허무함의 정서가 사랑의 정서를 돋보이게 한다.
차우는 떠나기 전 그 붉은 방에서 그녀를 기다리지만 끝내 혼자 떠난다. 그녀는 그가 떠난 붉은 방에 홀로 앉아 눈물짓는다. 헤어지기 전날, 헤어짐을 예감한 첸부인은 창밖을 바라보는데, 그녀의 시선은 노란 꽃들에 고정되어있다. 차우 역시 헤어짐을 예감하고 담배를 물고 창 밖을 본다. 역시 창문에는 큼직한 노란색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 그림 속에는 또 하나의 노란색 공간이 숨겨져 있다.
마지막, 캄보디아의 사원에 등장한 동승. 그가 입은 노란 승려복이 무채색의 배경에 대비되어 유난히 눈에 띈다. 이는 마지막으로 첸부인과의 추억을 묻으러 간 캄보디아의 사원에서 발견한 놓친 사랑에 대한 회한의 상징을 의미한다.
강렬한 색감을 대비시킨 그 공간과 공간을 메워주는 것은, 냇킹콜의 Quizas, Quizas, Quizas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이 음악은 얼핏 스쳐 지나가는 느낌들의 포착한다. 즉, 몬드리안의 그림에서는 검은 선들이 색채와 색채의 공간을 분할 하는 것처럼, 때로는 분할을, 때로는 두 색채의 조화를 이루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왕가휘 감독은 화양연화의 이러한 서사의 분열을 영화 매체 본연의 매력인 ‘본다는 것’ 그 자체의 매혹으로 메워버린다. 첸부인과 차우가 종종 스치는 아파트 계단과 국수집 계단의 어두움. 그리고 마주치는 그들의 눈빛마저도 감독은 관객에게 보여주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관객은 그 순간의 스침 속에서 그들의 감정을 상상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역시 서로 확인 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으로 서로를 지나간다. 화양연화는 이처럼 인간 존재 자체를 유혹의 대상으로서 제시하기도 하지만 바로 이곳에 빛과 어둠을 오가는 극명한 콘트라스트의 대비, 짙은 명암의 발생, 순간 스침의 아련한 기억을 나타내주는 기법은 몬드리안을 넘어 선 인상주의 회화로의 회귀를 나타내는 듯하다.
화양연화는 시종일관 사랑을 느끼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길게 연장한 찰나의 이미지 횡단과함께 마치 백일몽처럼 꿈을 꾸는 듯한 움직임 속에 시간과 이미지를 완급 조절한다. 이미지 위에 덧입혀진 인물들의 보이스 오버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긴장을 유발시키며 영화전반에 흐르는 슬픔의 정서를 극대화 시킨다. 그리하여 이야기 서사 이외에 이미지 사운드 서사에 의한 영화듣기의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앙드레 바쟁이 언급한 일상이 ‘시화’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모호하고 꿈꾸는 듯한 영상 속에서도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현실. 60년대 홍콩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사건은 일상적인 분주함에 묻혀 그 인위성을 감춘다. 주인공 이외의 손부인과 왕마도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인물로 설정되어 두 주인공의 삶에 끊임없는 일상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일상성은 삶의 편린으로서의 사건이 제시되며, 영화 이후에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흘러간다.
1967년 앙코르와트.
영원한 침묵의 과거로 흘러가버린 왕조의 몰락과 함께 침묵으로 일관하는 석조 건물 구멍에 마음속의 비밀을 불어넣는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듯 빛이 가득한 하늘이 보인다. 그 황홀경에 찬 파란 하늘아래 어딘가 있을 첸부인을 그리는 차우의 모습은 그들만으로 채워진 공간으로 무화시킴으로서 그들을 환상의 시공간으로 탈주시키는 것이다. 화려한 옷과 음악, 그리고 그들이 스쳐지나갔지만, 만날 수 없었던 그 순간이야말로 그들만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화양연화의 뜻) 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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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느 날 삶의 권태감을 지닌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1962년 홍콩. 공동주택의 나란한 방에 같은 날 이사오는 첸(장만옥)과 차우(양조위)는 이렇게 서로에게 매료된다.
꽉 끼인 실크 드레스와 뾰족한 하이힐. 머리를 곧추 세운 여자는 저녁마다 하얀 면발에 뽀얀 김이 가득 담겨 있는 국수통을 들고 어두운 홍콩의 골목길을 거닌다.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넘긴 머리에 검은색 구두. 정장차림의 남자는 국수가게의 계단에서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서로를 그저 스쳐 지나간다.
네델란드 화가 ‘몬드리안’의 후기작품을 본 적이 있는가? 온통 수직과 수평으로 면분할이 되어있는 가운데, 강렬한 원색만이 면분할 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그림을. 그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곳에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을 서로 다른 색채가 투여되지만, 결국엔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그 그림들을.
왕가휘의 2000년 작, 화양연화는 몬드리안 그림을 연상시킨다. 몇 개의 공간과 색채로 구성되어있는 그 그림들의 각 공간들을 통해 감독은 서로에게 다가가려하지만, 갈 수 없는 외로움과 느림의 정서를 보여준다.
그 그림의 중심부엔 빨간색이 차지하고 있다.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화면 전체를 메우는 오프닝 크레딧. 마치 홍콩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 과도 같은 이 커다란 바탕 화면은, 홍콩 60년대의 홍콩으로 관객을 이끈다. 차우가 첸부인에게 함께 글을 쓰자고 호텔로 초대하는 장면. 그녀는 거절하지만, 결국 달려온다. 그때 그녀는 샛빨간 코트를 입고 있다. 호텔 복도의 휘장도, 그 바닥도 붉다.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 오른편에 가장 커다란 면이 자리잡고 있는 바로 그 붉은 색이다. 이 붉은 색은 서로를 향한 사랑의 색이다.
서로가 서로를 강력히 원하지만, 각자의 남편과 아내가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애인 사이라는 것을 확인 했을 때 ‘절대 잘못되선 안돼요.’ 라고 이야기 하며 못박는 두 사람. 그때 하얀 식탁과 차우의 남방, 그리고 다음다운 답배 연기의 색채는 사랑의 허무함을 나타내는 백색이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 이루는 작은 공간들이 무색으로 남겨져 원색을 강조한다. 허무함의 정서가 사랑의 정서를 돋보이게 한다.
차우는 떠나기 전 그 붉은 방에서 그녀를 기다리지만 끝내 혼자 떠난다. 그녀는 그가 떠난 붉은 방에 홀로 앉아 눈물짓는다. 헤어지기 전날, 헤어짐을 예감한 첸부인은 창밖을 바라보는데, 그녀의 시선은 노란 꽃들에 고정되어있다. 차우 역시 헤어짐을 예감하고 담배를 물고 창 밖을 본다. 역시 창문에는 큼직한 노란색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 그림 속에는 또 하나의 노란색 공간이 숨겨져 있다.
마지막, 캄보디아의 사원에 등장한 동승. 그가 입은 노란 승려복이 무채색의 배경에 대비되어 유난히 눈에 띈다. 이는 마지막으로 첸부인과의 추억을 묻으러 간 캄보디아의 사원에서 발견한 놓친 사랑에 대한 회한의 상징을 의미한다.
강렬한 색감을 대비시킨 그 공간과 공간을 메워주는 것은, 냇킹콜의 Quizas, Quizas, Quizas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이 음악은 얼핏 스쳐 지나가는 느낌들의 포착한다. 즉, 몬드리안의 그림에서는 검은 선들이 색채와 색채의 공간을 분할 하는 것처럼, 때로는 분할을, 때로는 두 색채의 조화를 이루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왕가휘 감독은 화양연화의 이러한 서사의 분열을 영화 매체 본연의 매력인 ‘본다는 것’ 그 자체의 매혹으로 메워버린다. 첸부인과 차우가 종종 스치는 아파트 계단과 국수집 계단의 어두움. 그리고 마주치는 그들의 눈빛마저도 감독은 관객에게 보여주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관객은 그 순간의 스침 속에서 그들의 감정을 상상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역시 서로 확인 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으로 서로를 지나간다. 화양연화는 이처럼 인간 존재 자체를 유혹의 대상으로서 제시하기도 하지만 바로 이곳에 빛과 어둠을 오가는 극명한 콘트라스트의 대비, 짙은 명암의 발생, 순간 스침의 아련한 기억을 나타내주는 기법은 몬드리안을 넘어 선 인상주의 회화로의 회귀를 나타내는 듯하다.
화양연화는 시종일관 사랑을 느끼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길게 연장한 찰나의 이미지 횡단과함께 마치 백일몽처럼 꿈을 꾸는 듯한 움직임 속에 시간과 이미지를 완급 조절한다. 이미지 위에 덧입혀진 인물들의 보이스 오버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긴장을 유발시키며 영화전반에 흐르는 슬픔의 정서를 극대화 시킨다. 그리하여 이야기 서사 이외에 이미지 사운드 서사에 의한 영화듣기의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앙드레 바쟁이 언급한 일상이 ‘시화’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모호하고 꿈꾸는 듯한 영상 속에서도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현실. 60년대 홍콩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사건은 일상적인 분주함에 묻혀 그 인위성을 감춘다. 주인공 이외의 손부인과 왕마도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인물로 설정되어 두 주인공의 삶에 끊임없는 일상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일상성은 삶의 편린으로서의 사건이 제시되며, 영화 이후에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흘러간다.
1967년 앙코르와트.
영원한 침묵의 과거로 흘러가버린 왕조의 몰락과 함께 침묵으로 일관하는 석조 건물 구멍에 마음속의 비밀을 불어넣는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듯 빛이 가득한 하늘이 보인다. 그 황홀경에 찬 파란 하늘아래 어딘가 있을 첸부인을 그리는 차우의 모습은 그들만으로 채워진 공간으로 무화시킴으로서 그들을 환상의 시공간으로 탈주시키는 것이다. 화려한 옷과 음악, 그리고 그들이 스쳐지나갔지만, 만날 수 없었던 그 순간이야말로 그들만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화양연화의 뜻) 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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