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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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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0일 12시 00분 등록
항상 이 곳에서 여러 사람들로 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로서는 솔직히 말해 별로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공짜로 남의 것을 훔치는 듯한 켕기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더욱이 코치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치는 직업이라 글 쓰는 것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즈음에는 조직학에서도 코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운동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을 위해서 쓴 글인데 혹시 읽을거리가 될까해서 올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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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본의든 본의 아니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군가에게 배우고

그리고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다.





여분의 자유도와 사고의 유연성


들어가면서

오랫동안 코치라는 신분으로 현장에서 가르치다 보면 많은 선수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체력과 자세들을 가르치고 난 뒤 그들에게 기술과 전술을 가르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키가 다르고 몸무게가 다르고 그리고 성격과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른 그들에게 조금은 더 적당한 각자에 맞는 기술을 가르쳐 최상의 결과를 만드는 것은 지도자가 갖는 최대의 희망이며 의무이기도 하다.

다양한 개성과 신체의 체격이나 체력적으로 다른 조건을 가진 선수들에게 종목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가르치는 동안에 "이겨야 한다"는 것과 "좀 더 잘해야 한다"는 것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때때로 화내고 실망하고 흥분하면서 후회하고 반성하며 다시 계획을 세운다. 그러면서 지도자로서의 여러 가지 능력과 생활인으로서 또는 선수를 이끌어가는 팀의 리더로서 사고의 유연성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이라고 했을까?

다이나믹 시스템 이론과 여분의 자유도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의 관점으로 다이나믹 시스템 이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행동이 유기체(organism : 동식물 따위의 생활 기능을 갖춘 조직체)인 인간, 그 유기체가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 자연과 환경 (environment)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과제(task)가 어느 하나의 일방적인 지배가 아니라 상호 역동적인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즉 어떤 선수가 경기 중에 나타내는 하나의 행위를 이해하기위해서는 그 사람의 움직이는 체계의 특성과 신체에 작용하는 내외적인 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이러한 이론을 만들었던 러시아의 생리학자 Bernstein은 인간의 행동에 관하여 똑같은 동작을 하는데도 숙련자와 초보자의 폼이 다른 이유를 인간이 가진 신체의 근육과 관절들의 고정과 풀림의 차이로 설명하였다. 그는 자유도라는 개념을 만들어 인간이 학습하여 행하는 기술적인 행동을 설명하였는데 자유도란 인간의 행동을 일으키는 구성 요인의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이 어떤 하나의 목표행동을 하는데 그 구성요소인 근육, 관절, 운동단위 등의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의 수이며 일반적으로 관절의 수준에서 계산 한다

번스타인은 초기에는 동작을 수행하는 유기체와 과제 및 환경의 특성에 따른 제한 요소를 잘 연결시켜 운동을 수행할 때 작용하는 자유도의 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배드민턴을 배울 때 초기에는 손목의 스냅을 사용하지 못하며 손과 앞 팔을 고정시켜 단지 셔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기술수준이 점차 향상됨에 따라서는 보다 부드럽고 힘 있는 운동 수행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서로 묶여 있던 자유도를 풀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점점 라켓을 휘둘러 맞추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힘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효율적으로 힘을 사용하기 위해 손목의 관절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학습후기에는 더 많은 자유도, 즉 동일한 동작 내에서의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사용하거나 무릎의 탄력적인 사용이나 지면의 반력을 사용하는 등 주어진 운동과제에 관련되어 있지만 전에 사용하지 못했던 신체의 협응 요소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게 되는데 이를 여분의 자유도 (redundant degrees of freedom)라고 한다.
이러한 여분의 자유도의 활용은 연습에 의하여 변하는 협응 형태, 즉 기술적인 동작의 변화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경기장에서, 그리고 생활 속에서의 여분의 자유도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학교생활의 기초를 안내 받으며 서클 활동을 하고, 강의에 들어가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경연대회에 참가한다. 그러는 동안에 그들은 생활과 삶에 대한 많은 것들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배우게 된다.
어렸을 때는 "이렇게 하는 거야!""그것은 틀렸어!" "우리 선생님이 이것은 이런다고 그랬어!" 라는 식으로 세상의 모든 일들을 흑백의 논리처럼 "맞다" "틀리다"로 인식하면서 성장하고 그러한 기준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대부분의 그것들이 크게 "착하고 옳은 행동"과 "악하고 옳지 못한 행동"으로 구분된다.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이 기초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세나 기본 동작을 배우는 동안에는 항상 "팔은 어떻게 해야" 하고 "중심은 어디에 두어야" 하고 "발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맞다"와 "틀리다"의 판단의 틀에 따라서 기초를 다져가는 것이다.

NBA 농구경기나 올림픽경기에서 뿐만이 아니라 전국체육대회나 동호인의 모임에서도 훌륭한 운동기능을 가진 선수나 참가자들은 어떠한 상황에 놓였을 때 대응하는 기술적인 다양성과 함께 상황에 대한 여유와 안정된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잘 닦인 기본기 위에 상대와의 상대적인 조건에 따라 그러한 기본기들을 응용하여 적절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기술적인 능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여분의 자유도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교생활을 계속해 가면서 학생들은 생활 속의 많은 일들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며 또 반드시 하나의 방식으로만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중고등 학교를 거쳐 많은 시간동안 배워 온 자신의 지식(knowledge)들과 새로이 배우는 지식들을 자기화하는 지혜를(knowhow)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회의 직업전선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일 처리를 함에 있어서 막히지 않고 여유 있게 일 처리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은 잘 닦인 전문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다양한 처리 방법과 함께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고의 유연성이다. 그러한 경우를 공식적인 시합이나 친선 경기의 관점에서 볼 때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의 전개 속에서 선수가 행하는 운동 행위(motor behavior)의 표현방식과 동일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기술적인 체계를 지니면서도 갇히지 않고 다양하고 효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행동의 유연성이며 우리는 이것을 여분의 자유도의 활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선수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상당한 기간동안 힘든 훈련을 하고 기술들을 배우지만, 그것들은 사실상 온갖 개성과 기술을 가진 선수들이 모인 시합장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비하면 물위에 떠있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서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제 경험 없이 완벽하게 라는 상황에 접근한다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비밀을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법과 안목으로 세상의 비밀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도자는 소중한 자기만의 생명을 지닌 선수들에게 지도자 자신이 터득한 수많은 기술을 모두 가르쳐 자신의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명확하게 가르치고 그것을 통해 선수들이 자신의 생각으로 자기 자신의 시합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자기 자신의 내 면 속에 존재하는 잠재된 가능성 즉 여분의 자유도를 현실로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수들과 함께 시합에 참가해 보면 평소에 알 수 없었던 선수들의 성격이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시합경험에 관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선수들에 따라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에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어느 선수는 정신없이 상대에게 달려들고 어느 선수는 자꾸 자꾸 뒤로 도망을 가고 때로는 "머리 속이 텅 비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선수들도 있다.
나는 이럴 때마다 각각의 선수에게 다른 처방을 내리는데 달려드는 선수에게는 공격하지 말라는 말 대신에 왜 공격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거나 언제 공격해야 하는지를 상기 시켜준다. 자꾸 뒤로 물러서는 선수들에게는 무작정 물러서다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과 물러서는 것만이 상대로부터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이도 저도 못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선수에게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린왕자를 썻던 생떽쥐베리의 이야기를 해 준다. 비행기가 고장 나서 사막 한 가운데에 놓여 있던 그가 그냥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알 수는 없지만 오아시스를 향해 어느 방향으로든 발을 옮기며 기억을 더듬어 밤 하늘의 별을 이정표로 삼는 지혜를 이야기하며 시합장위에서 그들이 겪었던 당혹감과 좌절감을 위로해 주는 것이다.


운동과 생활 속에서의 가치와 의미

체육의 학문적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 행동에 대한 다이나믹 시스템적인 접근은 그 근거를 물리학에 두고 있으며 물리자연 현상의 상호역동적인 관계인 자기조직현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서가 아니라 환경 속에서 스스로 생명현상을 영위해 가는 유기체, 그리고 하고자 하는 것(Task)에의 자발적 참여를 의미한다.
이러한 원리는 동양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로서 대자연라고 불렀던 세계, 그리고 그 속에서 오늘에 충실할 때 모든 것이 자연스렵게 이루어져 (順其自然)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無爲而無不爲)라고 자연의 섭리에 대한 견해를 설파했다.
이미 2500년도 더 된 동양의 도덕경의 정신이지만 현대적으로, 다이나믹 시스템적 접근의 기본적인 원리인 자기조직현상(self-organization)과 일치한다.

서양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현실속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보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속성과 범주화된 명확한 구분을 통해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세계를 분리될 수 없는 전체로서의 하나로 보기 때문에 문제를 구체적인 사실 자체에 의존하기 보다는 하나의 전체로서 관계와 질서의 불균형으로 보았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조화로운 상태 즉 ‘적당한’ 정도를 찾으려고 하였다. 도가의 사상이나 중용이 그러한 대표적이 예일 것이다.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맞다, 틀리다" 라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동양사람들은 "지나치다, 부족하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그것이 시합의 상황이라면 우리는 그것의 해결방법을 단순히 기술적인 난이도나 전략적인 원칙보다는 상대적인 경기의 전체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찾고 보완하며 자신의 믿음과 의지에 따라 성실함과 인내심을 가지고 도전하고 적응하는 유연함을 보이는 쪽에 익숙할 것이다. 또 생활 속의 문제도 남들이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규범이나 질서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환경과 능력에 따라 분수를 지키며 성실하게 자신을 관리하여 자기만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해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적 특성을 수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즐겁고 만족할 수 있는 행복함을 느끼려 한다면 성취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성취감이란 적절한 과정과 단계의 노력과 관리를 거친 수고의 대가로 얻어지는 곡식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냥 재미 삼아 한 두 번 하는데서 얻을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만족감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목표에만 도달한다고 해서 반드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긴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누구와 싸웠으며 어떻게 이겼는가도 중요하다. 일등을 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모든 선수들보다 기량이 최고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면적인 성과에 걸 맞는 내면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면 축구의 신동인 마라도나의 황폐한 생활처럼 정신적인 피폐를 가져온다.

동양의 사상에 정통했던 서양의 정신분석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중국의 당나라 때의 신선인 여동빈(呂洞賓)이 지은 황금꽃의 비밀(The secret of Golden flower : 단학에 관한 서적이며 원제목은 ‘太乙金華宗旨’이다)의 심리학적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인간사의 모든 것은 그 사람 나름에 달려 있는 것이지 방법이
어떠한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그 방식
이야 말로 그의 본질을 바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아니한 경우에
는 방법이란 단지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하면 스스로
를 감추는 정당하지 아니한 목적에만 쓰여 질 뿐이다.


그래서 동양의 사상은 심성의 정화를 통해 실천적인 통찰력에 기초한 자기만의 진실한 삶에 도전하는 것이다 , 중국고대의 현자는 "옳은 수단(방편)이라 할지라도 바르지 못한 사람이 쓰면 그 수단은 옳지 못한 데로 쓰여진다." 라고 했다.
여론과 법을 명분으로 매일 싸우면서도 국민 생활의 질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실망하지만 또 고난과 외로움을 무릎 쓰고 자신의 길을 걸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삶에 우리는 감동을 느낀다. 경기에서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는 했지만 왠지 뒤끝이 개운치 않은 시합이 있고 비록 시합에 지긴 하였으나 가슴 뿌듯하게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연구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것이 삶의 의미와 가치에 보다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방법과 수단에 집착하여 맹목적이게 되면 가치와 의미가 사라지거나 변질된 삶을 초래하게 되고 몸을 타락하게 하고 마음을 각박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성취감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갑자기 로또에 당첨되어 억만장자가 된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일순간에 지나온 삶의 의미와 가치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헝그리 정신은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해 줄지는 몰라도 그 다음에 다가오는 새 세계에 대한 대비와 지속적인 유지를 위한 규범과 질서가 없기 때문에 배고픈 시절의 억제된 욕망의 분출과 통제력을 잃어버린 정신상태는 타락과 정신의 황폐함이라는 불행을 초래하기 쉽다.
운동과 생활에 있어서 올바른 신념과 의지가 함께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목표달성을 위한 명분뿐만 아니라 달성이후의 삶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분명한 가치와 의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맺으면서

선수들에게 가끔씩 심형래씨가 했던 귀감이 되는 말을 하곤 한다.

‘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거야! ’

자신의 삶에 가치와 의미가 없으면 아무리 쉬운 일도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반대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도 가치와 의미가 있으면 할 수 있고 도전할 만한 일이 된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마주치는 문제는 못할 것 같아서 안하다 보니 정말로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마다

'미래는 항상 오늘의 결과이며 오늘은 그 미래의 원인이다.
오늘은 바라보는 자의 마음에 있다. '

라는 법구경의 격언을 되새긴다.

경기나 생활속의 "문제" 는 과거의 결과로 인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의적 태도을 지닌 현재적 사고 성향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미래는 항상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오늘을 사는 사람의 근본적 태도의 저변에는 자신의 삶과 존재에 대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에 대해 기계적인 반복이 아닌 반성하고 다시 계획하며 실천을 통해 충실히 하고자 하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운동뿐만 아니라 기타의 스포츠 활동에의 참가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기본적인 체력과 기술을 충실하게 반복하여 유지하고 이기고 더 나아지려고 하는 목표의 달성만이 전부는 아니다. 지도자로서의 궁극적인 희망은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만나는 상대의 수준에 따라 적절하게 자신의 능력을 조절 즉 여분의 자유도를 효율적으로 발휘하여 최상의 경기를 행할 수 있을 때 느끼는 자기만의 성취감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보다 나은 인생의 목표를 향해 가면서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고의 유연성을 함께 기르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얻어진 자기만의 진실한 체험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건전하게 경쟁하며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어서 건강한 삶과 생활을 성실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만의 인생에 대한 가치와 여분의 자유도를 터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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