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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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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8일 11시 54분 등록


변화경영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시작한 지도 벌써 4개월이 되어간다. 3월에 공지를 보고, 한달간의 인턴기간을 합하면 벌써 5개월째 진행해 온 것이다. 한 주 한 주의 과제를 풀어내느라 쉽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지난 5개월의 시간은 마치 5년이나 된 것 같은 긴 느낌이다.
물론 지난 5개월을 지나보았을 때, 나에게 변화는 있었다. 물론 그 변화들이 모두 다 처음에 계획했던대로의 100% 변화는 아니지만, 내 삶에 있어서 나타나는 조그만 변화의 모습들을 이야기하고자한다.

첫째, 나는 '짬짬형 인간'이 되었다.
얼마 전 글에서도 올렸듯이, 나는 제약회사에 풀 타임으로 근무하는 직장인이며, 한 가정의가장이며, 한 아이의 아빠임과 동시에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다. 직장에서 맡은 업무가 마케팅부서이다 보니, 현장에 수시로 나가야 하는 일이 태반이며, 때로는 현장에서 부딪히는 많은 일들을 고도의 지식과 더불어 몸으로 승부해야 할 때도 많다. 그런 나에게 ‘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은 자칫 잘못하면 ‘마이너리티’로 전락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일단 일주일에 한 권씩 읽어제껴야 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나는 장소이동을 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도중, 혹은 잠자기 전과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는 틈만나면 그 주에 주어진 책을 읽는 버릇이 생겼다. 일명 ‘짬짬형 인간’이 된 것이다. 때로 ‘동방견문록’과 같이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 과제물로 주어질 때는 이동할 때 불편함을 느끼지만, 짬만 나면 활자와 친구가 되는, 그러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둘째, '멀티형 인간'이 되었다.
마케팅부의 업무는 늘 현장의 정보와 친숙해야 한다. 일간지는 물론, 업계 전문지 및 인터넷과 온갖 통계자료 등을 통해서 생생한 정보들을 검색하고, 자료를 찾는다. 또한 박사과정의 커리큘럼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늘 영어로 된 원서들을 읽어야 한다. 적을 두고 있는 과정은 전공 및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과제물 또한 영어로 제출해야 한다. 중간고사과 기말고사를 제외하고도 세미나와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해야한다. 이렇듯 온갖 정보와 책들 사이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연구원 자격으로 주어지는 책들을 ‘올인해서’ 읽을만한 여유가 없다. 당연히 3-4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야 한다. 책을 읽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신영복의 ‘강의’에 밑줄을 긋다가, 갑자기 내일 할 프리젠테이션이 생각나면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에 별 표시를 해 놓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정신이 없는 가운데서도 도중에 다른 책을 보다 다시 읽던 책으로 돌아오면, 희한하게도 나의 뇌는 잊지않고 이전에 읽었던 그 흐름을 무리없이 따를 수 있다는 점이다. 전에 기름을 싹 뺀 일본 소설을 읽다가 눈물을 흘린적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같은 박사과정에 있는 동료로부터 내일 발표를 대신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감정이 격해 있었지만, 이내 눈물을 닦고 그 준비를 했다. 준비가 다 끝난후 다시 그 책을 집어들었는데, 좀 전에 느끼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연구원이 된 후 나에게 3-4권의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준 ‘멀티형 인가간’ 내가 생각해도 좀 우습다.

셋째, '밑줄 쫙, 인간'이 되었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후에 독후감을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독후감 쓸 것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하는 즉, 끝을 생각하면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샤프와 볼펜, 혹은 형광펜 등을 반드시 옆에 두고 후에 좋은 문장은 반드시 책에 옮기는 버릇이 들었다. 중간중간 느낌을 여백에 기입을 해 두는 버릇도 생긴 것이다. 혹 주위에 펜이나 다른 필기구가 없으면 과감히 그 페이지는 접고 표시를 꼭 하게 된다. 어떤 때는 마시던 커피를 조금 엎질러 그 페이지에 표시를 해 두었다. 이렇게 나를 스쳐 지나간 책들은 늘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치른 후의 전우를 보는 듯한 애틋함이 묻어난다. 한 번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서 읽은 적이 있는데,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심하게 메모를 해 놓아서 학교측에 반납과 동시에 새 책을 한 권 더 증정하기도 하였다.

나에게 이러한 삶의 변화들이 긍정적인 것인지 혹은 부정적인 것인지 나는 아직 알아낼 재간이 없다. 하지만, 무언가 주어진 일에 대한 애착,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발버둥 치려 노력하면 언젠가 그 답이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는 내가 어떠한 책을 낼 것인지 혼동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저 주어진 것에 충실한다면, 언젠가 혼동과 불분명함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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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7.27 19:41:00 *.62.107.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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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07.28 08:49:09 *.118.67.80
그렇게 '자본을 가진 사람'이 되어 가시는 군요.
학습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고 여러가지 답을 찾아가는 탐험이라고 합니다. '스쳐 지나간 책들이 늘 피비랜내 나는 전투를 치른' 애틋함이
한 번도 뵙지못한(?) 재엽님을 눈에 그냥 그려내는 것 같군요.
하루 종일 바쁠 수 밖에 없는 직장인에다 박사과정의 학생, 그리고 평범하지 않는 가장의 역할에다 연구원까지 하시는 모습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분명 재엽님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습니다.

님의 1년은 분명 행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매일, 조금씩, 즐겁게 사는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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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잣ㅣㄱ
2006.07.31 00:03:36 *.145.125.146
ㅎㅎ
좋은 변화시네요.
눈물 닦으시는 재엽님이 보여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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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6.08.07 15:50:32 *.153.213.49
눈물이라니요---?! 슬슬- 즐기면서 하는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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