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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30일 14시 07분 등록
여름 휴가

휴가들 다녀오셨는지요?
이제 휴가 시즌이 시작되는 때인지라 다들 분주하겠네요. 모두들 뜻 깊고 유익한 휴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2박 3일 동안 강원도로 다녀왔습니다. 가족들하고 가는 여행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휴가는 휴식의 의미가 많지요. 고생한 당신, 떠나라. 뭐 이런 광고 카피도 있잖아요? 그러나 가족들한테는 휴식의 의미보다는 같이 있다는 의미, 오붓한 우리들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바다로 가는 이들도 있겠고, 산으로 가는 분들도 있고, 계곡으로 가시는 가족들도 많지요. 어디를 가시든 가족들과 함께 같이 숨 쉬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 가족은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동강, 태백, 임원으로 다녀왔습니다. 저희 형님네랑 8명이 한 차로 사이좋게 다녀왔습니다. 첫날 아침 일찍 영월 동강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김밥가 유부초밥을 싸서 가는 동안 아침 대신 먹으며 뛰뛰빵빵! 기분 좋은 여행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오전이 거의 다 가서야 동강에 도착하였고 예약한 펜션에 짐을 풀고 간단하게 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하고는 역시 사전 예약한 래프팅 회사에서 준비한 차량으로 이동하였죠. 간단한 안내와 연습(그래봤자 물 퍼붓기 정도?)후에 보트를 타고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래프팅을 시작하였습니다. 약 3시간 정도 물에 빠지기도 하고 급류에 보트를 뱅글뱅글 돌리면서 내려오는 짜릿한 기분도 맛보구요, 급류에 몸을 싣고 떠내려 가보기도 하였습니다. 가이드한테 잘 보이지 않으면 배가 뒤집히는 엄청난 사태(?)를 겪기도 했었지요. 중간 정도에서 막걸리를 파는 곳이 있어 막걸리와 도토리묵 글고 파전과 함께 짠하고 한 잔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른들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애들이 좋아하였습니다. 작년에 이어 다시 온 동강이었지만 물놀이와 애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여름의 한 틀 같았습니다.

밤부터 비가 와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별마루 천문대는 할 수 없이 취소하고 노래방 대결로 첫 날 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고씨동굴을 관람하였습니다. 몇 억년의 시간을 가지고 만들어진 자연의 모습을 얄팍한 인간들의 손때에 의해 이제는 닳을 대로 닳아버린 노회한 느낌으로 다가오긴 했지만 그런대로 봐줄만 하였습니다. 장마가 온 다음이라서 그런지 동굴 속 깊은 곳에서 흐르는 물을 보면서 생명이란 것의 질김이 한없이 솟아나는 샘물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요.

고씨동굴 관람을 마치고 곧바로 태백으로 향했습니다. 김삿갓 계곡도 가보고 싶었고 장승고개도 갈 생각이었지만 예정에도 없던 태백의 장성광업소 방문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태백으로 가는 지름길(그 지방 사람들만 아는)이 이쪽 방면인지도 모르고 네비게이션만 따라 빙 둘러 갔다는 거 아닙니까.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한 장성광업소는 우리나라 석탄 생산량의 50%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 최대의 석탄채굴현장입니다. 소장님의 안내로 간단한 회사소개를 받고 지하 900m에서 석탄을 캐는 장면을 보러 갔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석탄을 캐는 굴속으로 화차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바로 현장까지 내려갑니다. 63빌딩 높이보다 몇 배는 더 내려가는 깊이인데도 전혀 감각을 느낄 수 없습니다. 공기도 많아 보여 숨 쉬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을 보니 위에서 공기를 불어서 보내주는 것 같습니다. 인구 5만의 태백은 2천여명에 달하는 광업소 사람들에 의해서 경제가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IMF때도 모르고 지나갔다고 할 정도니까요. 석탄산업 말고 다른 산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지요.

그러고 보니 오늘 구경한 두 곳이 공교롭게도 땅 속이었습니다. 잠자기 전에 하루 일정을 정리하다 든 생각이었는데 옮겨볼까 합니다.
“대지가 속살을 보여 준 날이다. 부끄럼도 잊어버린 채 속살을 내보이며 말하는 것 같다. 사람들아, 우리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아라. 내 몸 낱낱이 어떻게 만들어져 어머니같은 대지를 만들었는데 너희 교만한 인간들이 우리를 이토록 괴롭히고 갉아먹는지 똑똑히 보아라.”
지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현장에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리고 그 땅속의 자원으로 우리들이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에 의해 훼손되어진 자연은 어떻게 되는지요?

저녁엔 태백에서 나는 한우고기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우리 형편에 이만한 호사를 누릴 처지가 되지 못했지만 아는 분의 호의로 간만에 고기로 배를 채웠답니다. 제가 항상 말하지만 여행의 반은 먹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는 펜션에서 삼겹살을 아주 맛있게 먹었지요. 야외바베큐 장소에서 숯불에 구워먹는 삼겹살과는 또 다른 맛입니다. 강원도 한우는 횡성한우와 태백한우를 알아준다고 합니다. 소고기집을 몇 년 해봐서 고기맛은 아직 좀 알지요. 부드럽고 쫄깃한 한우등심의 맛이 여행길 나선 객의 주량을 훨씬 넘어서게 하였습니다.

태백의 산들은 무척 가까이 있습니다. 산속을 뚫고 만들어서 그런지 산이 산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옆집 같은 느낌이고 집 뒤 언덕같은 생각입니다. 소담스럽고 손으로 만지고 싶은 부드러움도 같이 줍니다. 낮은 산들이 아닌데도 이런 것을 보면 강원도의 힘이 산에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천혜의 자연이 준 선물이 강원도에 있는 듯 한 느낌, 이틀 내내 강원도를 다니면서 든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이왕 먹는 얘기를 했으니 마저 하나 더 하고 지나가야겠습니다. 마지막 날은 바닷가로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난리를 쳐 해장국집이라도 있으면 먹고 가자고 도로변에 있는 아침을 하는 식당을 찾으며 출발하였습니다. 임원항으로 넘어가는 고개입구에 있는 조그만 식당을 발견하고는 들어 가서 음식을 주문하려는데 ‘도로묵찜’이란 메뉴가 보이더라구요. 전 그냥 묵을 요리하는 건가 싶어 물어보니 생선요리라고 하면서 맛이 괜찮다고 추천을 합니다. 야! 이 도로묵요리가 보통이 아닙니다. 손가락보다는 조금 큰 조그마한 생선인데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뼈 채로 씹어 먹어도 괜찮습니다. 국물도 얼큰하고 감자까지 넣은 도로묵찜은 자작한 국물까지 과음한 여행객의 속을 달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번 여행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지금 강원도로 여행가신 분이 있으면 도로묵찜을 꼭 한번 먹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행 마지막 날 마지막 차례가 바다낚시였습니다. 거금(?)을 주고 큰 배를 하나 빌렸습니다. 작은 배도 있었지만 배멀미가 걱정되기도 했고 다행히 임원항에 하나 밖에 없다는 대형 낚시배가 장마로 관광객이 오지 않아서 반값에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의 4시간 동안 바다낚시를 하면서 우리 애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마음 놓인 것도 있지만 그래도 중요한 일정에는 비가 오지 않아 날씨에게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마음속으로 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비속의 여행길이었지만 그나마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말 그대로 폭우속을 뚫고 집으로 귀환하는 역전의 용사 그것이었습니다. 모두들 잠이 들었고 속도를 전혀 낼 수 없을 만큼 양동이로 들이 붓는 듯한 장마가 야속했지만 조심조심 천안에 도착하였습니다. 천안은 거짓말같이 비가 그쳐 있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天安, 말 그대로 하늘아래 가장 편안한 동네라는 뜻입니다. 이번 장마에도 천안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요. 역시 집이 있는 곳이 마음도 편안해지는 곳인가 봅니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여행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하지요. 돌아온다는 말은 어디론가를 떠난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떠남과 돌아옴의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말이 만남과 흔적입니다. 저희는 2박 3일간의 짧은 휴가를 통하여 강원도를 만났고 그 속내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수해로 인해 관광객이 줄어 울상이라고 합니다. 가보니 정말 사람들이 없습니다. 자연을 느끼고 더듬기 전에 현지에서 삶에 지친 이들을 만났습니다. 3.1.2 휴가를 보내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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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6.07.30 15:47:51 *.199.134.32

몇 층짜리 건물도 짓고 있는 것을 보면 우습지요. 거푸집을 짓고 레미콘이 왔다 가고, 단지 외부와 공간을 분리시키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나의 일상과 관계지어지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나의 삶과 하루와 나의 가족을 부려놓을 수 <?> 있는 곳. 너무 가깝게 함몰되어 있어 집과 가족의 소중함을 모를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나지요.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가히 여행전문작가다운 기록,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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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철
2006.08.16 08:13:37 *.247.28.220
자로님 글을 읽다보면 무언가에 쭉 빨려 들어가는것 같습니다..참고로 저두 천안 두정동인데,,,눈팅 열심히 하는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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