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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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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2일 00시 08분 등록
글을 쓰든, 검을 다루든

‘볼 수 있는 만큼 보인다.’

하나 마나 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대단한 화두다. 칼럼에 스승님의 글을 읽다가 자로님의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조각 조각의 레고불럭을 주워 맞추듯 머리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생각들을 주워 맞추었다.

자로님이 스승님과 함께 중부지방을 여행하고 돌아 온 뒤에 스승님께서 써 놓으신 기행문에 대해 댓글을 달았는데 .

“같은 길을 같이 다녔음에도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니...
아직도 배우고 또 배워야 함을 느끼게 합니다. “

라고 적고 있다 그래서 볼수 있는 만큼 보인다는 화두가 떠오른 것이다.

나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며 또 그 움직임을 어떻게 배우고 제어하는가에 관한 연구 분야인 ‘운동학습과 제어’(motor learning & control) 그리고 그것들과 관련되어 있는 스포츠 활동으로서의 심리적인 문제들을 연구한다.(sport psychology)
이미 오래동안 나의 주제는 직접지각(direct perception)이다.
어떻게 인간이 인지과정 없이 사물이나 사건, 사람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응하는지에 관한, 즉 우리가 흔히 말해 왔던 ‘직관’에 관한 것이다. 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방법론에서는 인과적인 관점에서 직접지각(direct perception)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본다’ 것에 관심이 많다.

본다는 것을 이리저리 해부하면 복잡해지겠지만 분명한 것은 같은 것을 놓고 다르게 볼 수 있고 또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비록 나의 수준이 미치지 못해 골머리가 지끈거리다 아예 머리털이 허옇게 세어버릴 정도로 끙끙대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 점이 너무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일반적으로 그냥 시야에 들어오는 그런 빛이 미치는 물리적인 세계를 보든(觀光) 그것을 좀 더 자세히 보든(觀察) 혹은 그것을 심미적인 관점에서 보든(觀照) 우리는 보는 것에 대해 여러개의 관점, 즉 같은 것을 통해서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거기다가 우리는 정신적인 것들도 ‘본다’ 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 번 생각해 보라’ ‘그 마음을 보라’ ‘그때의 정신상태를 보라’ ‘그 순간을 느껴 보라’ ‘다시 한 번 반성해 보라’ 는 말처럼 말이다.

같은 장소가 옛날에 본 것하고 얼마 전에 본 것하고 틀리고, 같은 사람이 ‘음마, 그 놈이 알고 본께, 무지하게 좋은 놈이여!’이기도 하고 또 두 눈 똑바로 뜨고 열심히 관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에 본 것이 지금 보니까 틀리게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렇다 치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는 것도 있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형사 눈에는 모든 사람이 범죄자처럼 미심쩍게 보이고, 선생의 눈에는 모든 학생이 뭔가 부족해서 시원찮아 보이고 복부인의 눈에는 온 세상의 땅이 돈으로 보인다.
하여튼 ‘본다’ 는 말은 어떤 문이든 집어넣고 약간만 휘적거리면 척척 열리는 만능키같이 감각이든 생각이든 시간이든 공간이든 과학적이든, 철학적이든 진지하든 유모어스럽든 모든 방면에 걸쳐서 사용하고 또 다 들어맞는다.

과학적인 방법론으로든 인문학적인 묘사로든 일단 따지고 들어가면 책 몇 십 권, 몇 백 편의 논문으로도 끝이 안 나겠지만 어쨌든 본다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인 것 같다.
하나는 그냥 보는 것(看)이고 또 하나는 느낌으로 보는 것(感)이고 나머지 하나가 생각을 보태어 보는 것이다.(觀)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한 순간 속에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장마비로 흙탕물이 가득찬 시야에 들어오는 저수지를 휘 둘러보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sensory stage) 그러다가 ‘응! ’ 하고 날아가는 학을 쳐다보면 학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이 그냥 보이던 것들 중에서 분리되어진다. 그렇게 주의를 한 곳에 집중하면 전경이 된 학과 저수지나 소나무 숲이나 먼 산들과 같은 나머지 것들은 배경이 되어 분리 된다.(short term memory) 거기다가 ‘어! 어제는 한 마리였는데 오늘은 아니네..’하고 생각을 하게 되면 이젠 아예 배경은 사라진다.그 때부터 나는 머릿속에 있는 어제의 학과 지금 보고 있는 학에 대한 생각(정신적인 표상 : representation)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아주 짧은 순간에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는 그 시간을 ‘찰나’ 즉 눈 한 번 깜박할 시간이라고 했고 일상적으로 우리는 ‘순식간’ ‘순간에’ 라는 숨들어 마시는 사이의 시간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과학적으로 한 눈에 휘 둘러 보아서 기억 속으로 들어와 머물러 있는 그 시간은 감각지각단계로 0. 3 초 정도이다. 사람이나 사물이 변화하고 그것을 제어하고 있는 수준이 이렇게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나며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대부분 실재하는 것과 다른 우리 두뇌 안에 저장된 기억 속에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습관, 통념, 맹목, 편견 같은 것들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본 그것들을 글이나 행동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스승님이 섬세한 기행문을 쓰실 수 있는 것도, 훌륭한 선수가 기가 막힌 동작을 할 수 있는 것도, 고명한 학자가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창조적인 재구성 능력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떻게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재구성하고 일관되게 하여 언어로, 행동으로 나타내고 창조적으로 표현되어지냐는 문제이다.

" 아직도 배우고 또 배워야 함을 느끼게 합니다. “

자로님이 그렇게 표현했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도 그것들은 본다고 해서 저절로 보여 지는 것은 아닐 것 같다. 끝없는 훈련과 학습에 의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스승님은 ‘없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로님이 못 보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곧 동일한 것을 놓고 더 많이 볼 수 있고 더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고 더 다양하게 바라 볼 수 있으신 것이다.

과학적인 심리학의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주의의 초점을 어디에 두고 얼마나 다양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볼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우리 식으로 얼마나 시야를 넓고 세밀하게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로,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얼마나 많은 개념들을 가지고 있으며 일관성이 있지만 다양하게 범주화할 수 있는가를 의미한다.

그러니 그냥 책상에 앉아 온갖 책을 읽고 보따리 싸들고 전국을 헤매거나 무작정 지팡이 하나 들고 험한 산 속을 야행한다고 해서 글쓰기가 늘거나 검술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련 곰탱이처럼 살아온 지난 30년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무작정 하고 또 하고 또 해서 문득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형(型)과 식(式)을 익혀서 차곡 차곡 하나씩 정리하여 나가야 좋은 기본이 되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흔들리지 않는 새로운 검술과 뜻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열심히 하고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고 왜하는지를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의식과 행동이 일치되도록 그 둘을 실천적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글과 사람과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겠지만
무예에서는 ‘외공이 없는 내공은 무의미’ 하고 ‘검(劍)은 만(10,000) 일을 수련한 후에 입문한다.’ 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볼 수 있는 만큼 보인다’ 는 말이 허망한 화두가 되지 않을 것이다.
IP *.75.16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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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2006.08.02 09:48:54 *.159.80.86
검이란, 양쪽의 날이 있는 무기라서 다루기가 까다로운 병기에 속합
니다. 잘못 다루면 검을 다루는 당사자가 다치게 되니까요
검은 만일의 수련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 뜻은 다른 병기
창, 도(刀)보다 변화무쌍하여 숙련하기가 힘들다는 뜻입니다.
검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경지란, 숙련되어 의(意)없이 검이 몸에
익어 같이 움직이는 것을 말하는데, 몸에 익어 움직인다함은 상대방의
의도에 맞추어 무의적인 동작들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검술에서는
찰검,擦劍이라는 훈련을 하죠) 검으로 대련할때는 누가 많이 정확
하게 훈련을 해왔냐가 승패를 가릅니다.. 즉 꾸준히 쌓은 내공과
검을 다루는 외공의 능력이 관건이죠..
인생의 모든일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꾸준히, 그리고
바르게 쌓아가는 것... 그것이 삶과 죽음을 가르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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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08.02 16:57:50 *.75.166.83
검은 창이나 도에 비해서 가볍고 예리하지만 반면에 무게가 가볍고 길이가 짧아서 힘으로 휘두르면 별로 도움이 안되죠, 전사나 힘의 중심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근육군들의 분리나 통합을 하는 운동신경 조율능력이 좋아야 하는데 그것은 상당한 연습과 깊이있는 지식을 통해서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뒤에야 힘에 밀리지 않고 상대무기를 흘릴 수 있고 봉이나 곤에 대해 사각을 확보할 수 가 있죠, 상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을려면 상대의 검술체계 전체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상당한 기술적인 지식과 경험에 따른 판단력이 필요하죠 그런후에 그에 따라 적절한 대응능력이 자동화 즉 몸과 생각이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의 연습이 시작된다고 보아야 체계적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양을 늘리는 이유는 그러한 연유때문이죠, 양을 늘리는 것은 보다 적절한 하나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끝에 이르면 기술의 형과 식에 따른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 안되죠. 나머지는 몸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 의식은 그 냥 방해만 될 뿐이라 그렇지요, 일반적으로 스포츠에서는
그것을 최적 수행 상태(peak performance) 라고 합니다.
의식이 있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 그런거죠.. 그런 상태에 몰입하면 삶이나 죽음같은 의식이 만들어내는 불안,공포 같은 그런 각성상태는 없습니다. 그냥 조용하죠 마치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같죠 ... ..
미흡하지만 저의 경험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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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08.07 18:49:27 *.145.231.64
여기서도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군요.
요즘 고수가 너무나 많은 세상이란 걸 실감합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제가 할 수 없는 창조적 재구성 능력의 탁월함이
매일 매일 그렇게 수련하고 훈련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또 다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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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08.07 21:59:32 *.75.166.83
저는 자로님의 살아있는 사는 이야기,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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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08.08 21:46:23 *.145.231.208
형! 언제 술 한잔 해요.
제가 안성으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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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08.08 22:34:18 *.75.166.83
꿈두레 병곤회장님이 전화번호 알고 있다우,,,
전화주시게, 목욕제계하고 기다려 불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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