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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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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1일 07시 57분 등록

<환상과 현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레퀴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네덜란드의 판화가 '예셔(Maurits C. Escher, 1989-1972)의 그림 '도마뱀'을 떠올리게 한다. 그 작품속의 도마뱀은 그림에서 나와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도마뱀들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환상이 넘실대던 구석기인들의 동굴벽화를 보는듯한 이 작품은 그림속의 파충류가 현실이 되어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하기도 한다. 그러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아가는 도마뱀의 움직임 앞에는 그 자신으로 보이는 파충류의 추상화와 책, 육각면체, 그리고 살아있는 화분이 놓여있다. 환상과 현실이 모호하고, 한 마리인지 다수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이 도마뱀들의 모습은 우리 일상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가감없이 스쳐지나간다. 평화로운 한강에 출몰하는 ‘괴물’의 모습 또한 이러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우리를 위협한다.

영화 초반에 명시돼 있듯 봉준호감독이 만들어내는 괴물의 존재는 미군이 폐기한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로 인해 생겨난 돌연변이이다. 돌연변이의 생성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탄생 배경이 우리의 과거로부터 이미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스터 김, 그냥 버려요. 한강은 크고 넓어요. 이건 명령이오”라는 영화 초반 대사가 드러내듯, 실상 괴물이란 예측할 수 있었던 재앙의 결과인 것이다. 이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모토가 보여주듯, 고도성장의 상징이었던 한강이 죽음과 파괴의 장으로 전도되게 된 까닭과도 상통한다.

번영과 안정의 모습 이면에는 포름알데히드로 인해 더렵혀지는 모습과 자살을 시도하는 한 시민의 모습위로 유유하게 낚시를 즐기거나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서울의 모습이 겹쳐지고, 그러한 평화로운 일상은 순식간에 괴물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방류된 독극물에서 태어난 형편없는 유전자 변이체인 괴물이란, ‘발전’이라는 한국사회의 절대적 이상이 만들어낸 기형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괴물을 둘러싼 한 인간과 가족, 그리고 사회를 통해 봉준호 감독은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한 개인과 조직이 어떤 식으로 '괴물'로 변모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박강두(송강호)는 괴물의 피가 얼굴에 튀었다는 이유로 바이러스의 원인균이자 새로운 숙주로 지목받아 감금된다. 자신을 괴물로 취급하는 강두는 병원 간호사의 음성변조된 인터뷰를 통해 또 하나의 '괴물'로 탄생된다. 감금된 간이 컨테이너 속에서 간호사와 의사에 둘러싸여 전두엽 조직이 채취되는 장면은 'Agent Yellow'로 처치되는 괴물의 모습과 동일시된다. 질서와 법을 강요하는 사회에게 박강두와 그의 가족은 전염성을 지닌 괴물과 같은 존재로 취급되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흑백논리로 구축된 현실에서 그들은 비정상적인 괴물로 분류되고 마는 것이다. 그들은 현서가 어딘가에 살아 있음을 반복적으로 주장하지만, 그 누구도 그 말을 '정상적인 의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미 그들은 괴물로 낙인찍혔기에 그들의 주장은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인정받지도 또 통용되지도 않는다. 그들은 완고하게 설립된 정상성의 현실세계에서 비정상적인 일탈자로 축출되고 만다. 결국, 박강두 가족과 괴물이 벌이는 사투는 정상과 비정상간의 대결구도가 아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이탈된 비정상적 주체들 간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박강두 가족 모두는 처음부터 돌연변이의 유전인자를 지닌 원죄를 지니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취업하지 못하는 동생 박남일이나 어머니 없이 자란 현서,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졸기를 일삼는 강두 모두는 사회적 돌연변이인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구조적 유전자 변이에 의해 비정상적 삶에 편입된 자들이다. 정상적인 물속에서 자라난 물고기가 아닌, 하수구 속에서 흘러나온 독극물을 통해 변이된 괴물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괴물'에게 끌려간 현서를 찾는 가족 모두는 '비정상'을 추구하는 '수배자'의 모습으로 현상금이 걸린 ‘집단 괴물'이 된다. 괴물에게 끌려간 딸을 구하기위해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비정상적'인 가격을 주고 획득한 자동차와 총기를 구입한 강두 가족은 '정상적인 방법'이라 여겨지는 공권력의 힘을 거부하고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괴물을 찾아나선다.

고도 산업화의 오류와 위선을 괴물이 드러낸다면, 박강두를 비롯한 가족은 ‘발전’과 ‘주류’의 환상 이데올로기에서 일탈한 개인과 그 조직을 드러내고, 개인의 생명과 가족의 안위를 담보한다는 국가의 존재는 그들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위선을 드러낸다. 결국, 현서를 구해내고 괴물을 물리치는 것은 바로 또 다른 괴물, 즉 정상에서 벗어나 비정상적인 길을 모색한 강두의 가족들이다. 이 과정에서 현서를 구하고자 하는 가족의 의지는 통제와 관리를 자처하는 국가권력의 위선을 명백히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외부세계의 폭력은 정상을 일탈한 가족 구성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 안에 활시위를 놓지 못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비정상적' 동메달의 여인 남주(배두나)는 괴물의 출현으로 인해 마지막에 오히려 통제된 시간 안에 적중시키는 '정상적인 인물'로 변모되는, 현실에 순응한 인물로 그려진다.

진실은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이면에 숨쉬고 있다는 점을 봉준호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서 또 한번 보여준다. 강아지 실종과 인간성 실종을 교묘하게 겹친 감독의 전작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진실은 아파트 지하에서 밝혀지고, 살인자를 찾기 위해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살인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살인의 추억>의 시체도 지하수 통로 아래에서 발견된다. 어쩌면 괴물이라는존재는 우리가 알고자하는 진실의 실체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외면하기위해 Agent Yellow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는 무모함을 보여주는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오류가 나타내는 재앙을 모습을 괴물의 형체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맨 마지막, 눈 내리는 한강의 고요함속에 조용히 밥을 먹는 새로운 '부자(父子)'. 그들은 괴물의 존재가 빚어낸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의미한다. 눈 내린 한강은 더 이상 과거의 평화로운 한강의 모습이 아니다. 매점에 붙어있는 과거의 사진을 이제 ‘추억’의 모습으로 간직될 따름이다. 현실은 음산한 소리가 나면 언제든 준비된 총을 겨누어야 하는 전쟁상태의 한강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제 그들은 예셔의 그림에서 보여지듯, 언제 어디에서 인간이 빚어낸 상상력의 도구가 현실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는 불안감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림 속의 도마뱀이 현실이 되어 우리 주위에 있는 책 위를 걸어다니고, 다시 책 안으로 들어가는 현실. 그 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우리는 늘 소리나는 창문을 향해 총구를 겨누어야 하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환상과 현실사이,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이분화된 사회에서 갈 길을 잃어버린 채 부표처럼 떠도는 모습과 그 오류가 빚어낼 재앙 속에 늘 두려워해야 할 인간을 괴물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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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08.07 14:38:07 *.75.166.83
저도 자로님이 하셨던 말을 하게 됐습니다.

같은 영화 (길)을 봤음에도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니...
아직도 배우고 또 배워야 함을 느끼게 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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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6.08.08 11:25:28 *.57.36.34
재엽님 영화비평가도 저리가라내요
놀랍고도 예리하게 영화의 이면을
파헤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저도 이 영화를 봤지만 너무도
비정상적인 모습에 치중하여
감독에게 실망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상상력과 추리력을 길러주고
이를 통해 미래창조력을 발산케 하는데
가장 영향력 있는 매개첸데

우리 영화감독님들은 현실의 어둠과 아픔만을
뒤져겨 관객을 몰아가는데 치중하잖아요

하여튼 부모된 입장에서 짜증나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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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6.08.08 15:53:02 *.153.213.49
도선생님,

이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의 주 특기가 한국사회의 여러가지 현상을 네러티브로 구성하여 만드는 것이랍니다. 현실의 어둠과 아픔만을 뒤져서 만든것에는 동의합니다.

어짜피 만든사람의 몫과 해석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몫은 별개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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