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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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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1일 11시 34분 등록

<낯설고 삐걱대는, 그러나 매력적인 일상>

'은밀함'의 사전적 정의는 숨어있어서 겉으로 드러내지 아니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단어의 용례는 사전적 의미가 포함하지 않은 독특함을 내포한다. 즉, '은밀한 요구'나 '은밀한 관계' 혹은 '이번 일은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추진되었다' 와 같이 우리가 흔히 사용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무언가 부정적, 혹은 성적인 것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싸구려 포르노를 시청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회적으로 진지한 직종을 지닌 계층인 교수나 간호사, 의사들로 나온 전문 배우들이 유니폼을 활짝 벗어 던지고 동물적인 성행위를 보여줄 때 관객들은 의외의 짜릿함을 느낀다는 것을. 우리들은 그런 이중적이고 상반된 이미지가 주는 짜릿함을 이 영화의 제목에서 기대할 지도 모른다. 그럼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은밀함 또한 그러한 짜릿함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것일까?

흥미로운 사건이라고는 벌어질 것 같지 않은 지방 대학의 무료한 공간. 염색과 교수 은숙(문소리)은 이곳 교수들 사이에서 인기 절정의 매력 덩어리 교수이다. 교수라는 타이틀이 가져다 주는 지성에 남부럽지 않은 외모, 게다가 별다른 경쟁자를 볼 수 없는 지방의 소도시라는 삼박자를 골고루 갖추었으니, 그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표적이 되기를 자처한다. 환경 단체 활동을 하다 취재차 만난 김PD (박원상)와 처음 만나 익숙한 잠자리를 나누며 인기 절정의 매력을 어김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이 같은 찬사를 충분히 즐기고 이용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의 인기를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다. 만화가 같은 대학 강사로 석규(지진희)가 부임하면서 그녀의 1인 독재 시절에 찬물을 끼얹게 된다. 석규와의 은밀한 만남에 주변 사람들은 석규를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린 먹이감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 석규와 은숙의 만남은 그리 간단치 않다. 중학교 시절 석규와 은숙은 담배와 섹스를 즐기는 비행 청소년이었고, 그들의 비행은 한 소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어두운 과거를 숨기려는 공모자인 석규와 은숙은 버둥거림 속에 어느 누군가 배신할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현재. 박석규는 박필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은숙은 다리를 절게 됨으로써 본인의 과거에 대해서 철저히 감추게 된 두 사람. 그러나 은숙을 사모하는 유 선생(유승목)은 둘의 관계에 질투를 느끼며, 어느 순간 스토커로 변신하게 되면서 둘의 과거가 들어날 위기를 맞게 된다.

여교수가 다리를 저는 불구여도, 말도 안 되는 시(詩)를 읊어대도, 그 소도시에서는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마저도 섹시하며, 읇조리는 수준 이하의 시마저도 향기롭기만 하다. 그것은 그녀의 행동으로 인한 매력이 아닌, 그녀 자체가 매력이라는 상품을 제조해 내는 모태인 것이다. 그래서 여교수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관심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제자들에게 이유 없는 심술을 부려도, 환경 운동한다고 떠벌리는 여교수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도, 그건 모두 여교수의 매력 하나로 용인된다. 한적한 지방 소도시가 주는 갑갑함을 두고, 여왕벌로 군림하는 여교수에게 이 커뮤니티는 더할 나위 없는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왕국인 것이다. 결국 영화는 이 알량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자신의 안락을 위협하는 과거의 그림자를 쫓아내려는 여교수의 노력과 그에 대응하는 사회의 비틀거리는 갈등에 맞추어진다.

<여교수…>의 모든 것은 이제껏 우리가 진정으로 은밀함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있다. 이제껏 천편일률적인 유머, 친절을 가장한 안이한 스타일을 강요당했던 관객에게, 이 영화는 낯선 즐거움을 선사한다. 주인공들은 더없이 진지한 표정들이지만 살짝 초점이 어긋난 대화를 나누며, 과잉으로 포장된 공허한 식사 장면들과, 아무도 없는 거리에 주인공들만이 과장된 대화를 나누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연극적 요소들, 그리고 권선징악적 이야기 구조에 익숙한 관객들의 시점에서 보면 당연히 불행해져야 할 인물들의 뻔뻔스러운 구원은 낯설기만 하다. 유원지에 떠 있는 노란색의 오리배는 인물들과 대등한 비중으로 프레임에 나란히 위치하고, 화면과 음악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비중을 견제하며 평균율을 연주한다. 심오함과 진지함이 결여된 일상. 그리고 실수가 생활이고 오버가 주무기인 인물들. 에누리없이 깔끔한 대중영화와는 전혀 다른 일상이 이 영화의 배경이지만, 이는 오히려 삐걱대고 어색한 순간으로 벗어난다. 이런 중심선상에서 벗어난 주인공들의 공간은 우리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남의 이야기로 치기에는 좀 엉뚱하다. 시종일관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느낌. 그러나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 이 영화의 화법이 바로 이 영화가 지니는 미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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