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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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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23일 19시 02분 등록

영화의 역사는 50년씩 두 번 쓰여졌다.
-장 뤽 고다르 <프랑스 영화 2×50년>



세계 영화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이 영화의 제목은 <프랑스 영화 2×50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감독인 고다르는 영화의 역사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과연 그는 무엇을, 그리고 왜 두 조각으로 쪼개어 보았을까.

이 영화는 먼저 프랑스 영화 협회 회장과 고다르 자신이 영화 역사 100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 영화 속에서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영화 초기, 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두 사람의 대화이다. 기획자와 감독의 관점에서 서로의 입장 차이와 이견을 보여줌으로써 100년 동안 영화라는 매개체가 제작되기까지의 많은 문제들이 바로 이러한 ‘소통’의 문제에서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대화의 과정 중에 내용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부호들이 등장한다. 그 부호들은 때로는 감독 자신의 심상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만한 명언들을 담기도 하다. 이렇듯, 고다르는 음성의 언어를 때로는 시각화하여 보는 이에게 불편함을 선사한다. 즉, 의미 전달의 부자연스러움을 통해 그간의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전달 방식 또한 원활하지 못했음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의미도, 설명도 없이 흘러가는 문자들처럼, 영화라는 매개체가 관객들에게 낯설고 어렵게 다가간 것이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보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고다르는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를 통해 관객들이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연출을 꾀하고, 기획자와 작가의 소통불능을 넘어, 계층과 계층간의 단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즉, 호텔 벨보이와 청소하는 젊은 처녀, 그리고 식당에서 일하는 주방장을 등장시켜 노동자와 지식층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재를 보여준다. 그들이 ‘아놀드’를 아느냐는 질문에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안다고 대답 하는 등의 에피소드는 헐리우드 영화가 특히 노동자 계급에게 어필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영화를 만드는 작가 스스로에게 그들이 손을 뻗어 화합하려는 대화를 시도했는지에 대한 강한 의문과 동시에 반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다.

이들 세 명의 등장인물은 작품 초반, 회장과 고다르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회장 뒤로 보이던 한 여인의 모습과 대립된다. 그 여인은 딥 포커스(deep focus)로 포착하였는데, 그녀의 존재는 아무런 대사도 없어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녀는 그들이 하는 대화를 다 듣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녀는 앞 사람을 바라보고 있지만, 상대방의 모습은 회장의 모습에 교묘하게 가려져있고, 고다르가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동안 마치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흔든다. 즉, 감독 스스로가 그 여인으로 대별되는 특정 지식인 계층만을 이해 할 수 있도록 이제껏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프랑스 영화에 관한 자성의 부분을 나타내 주는 대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회장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고다르는 아우슈비츠와 베트남, 그리고 사라예보 등의 사건들을 언급하고, 영화 역사의 후반 50년은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에서 비롯된 죄책감을 담은 비극의 역사로 서술한다. 이러한 비극의 역사를 겪은 세대들은 그 이전 세대들의 맹목적인 영화에 대한 애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설령 이전 영화들에 대한 복구작업이 이루어지더라도 상영이 불가능한 현실을 작가 자신의 나래이션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역사적으로 획을 그은 영화 평론가들이 남긴 명언들과 그들의 사진들이 함께 화면을 수놓는다. 고다르는 그들에 대해 경의와 동시에, 그들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를 그린다. 그 참회의 목소리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흑백으로 처리된 것, 그리고 레퀴엠을 연상시키는 듯한 장중한 첼로 음율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참회의 소리도 결국, 자신의 영화의 터를 만들어준 프랑스 영화의 한 일부분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비록 프랑스 영화의 현재 시점이 이전보다는 많이 침체되어있더라도, 날카로운 비평의 문화와 치열한 사유의 문화, 그리고 의식적인 대화를 통한 계층간 소통을 이루려는 노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그는 <2×50> 란 제목이 보여주듯이, 두 개의 대립된 존재들, 즉, 제작자와 작가, 노동자와 지식인, 헐리우드와 프랑스영화, 그리고 작가의 영역과 비평 영역의 이중구조를 드러냄으로써 결국엔 ‘영화’라는 하나의 문화를 이루어낸 프랑스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한 편의 대서사시를 그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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