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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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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26일 16시 28분 등록

얼마 전 신문에서 조용헌 컬럼을 읽다가 많은 암시를 받은 적이 있다. 일단 그 글의 전문을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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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남아 있는 전통 고택(古宅)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집은 강릉에 있는 선교장(船橋莊)이다. 대략 120여 칸에 달하는 저택이다. 보통 99칸까지가 민간주택의 한계라고 하지만, 선교장은 99칸을 넘어선 집이다. 집 뒤에 있는 수십 그루의 400~500년 된 소나무들도 일품이다. 세월의 풍상(風霜)을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홍련(紅蓮)이 피는 연못 속에 서 있는 정자인 활래정(活來亭)도 일품이다. 여름 밤에 활래정 마루에 앉아 연향(蓮香)을 맡다 보면 신선 팔자가 부럽지 않다.

또 주변에는 경포대를 비롯하여 삼일포·설악산·금강산을 비롯한 관동팔경(關東八景)이 시인과 묵객(墨客)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내로라하는 풍류남아(風流男兒)들은 선교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관동팔경을 둘러보러 다녔을 것이다. 손님들이 묵는 행랑채의 길이만 해도 60m가 넘고, 23개의 방이 있었다.

조선 최고의 저택인 이 집의 큰 사랑채 이름은 열화당(悅話堂)이다. ‘기쁘게 이야기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수만 석을 하는 부잣집이었던 이 집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기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었다. ‘열화(悅話)’야말로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돈도 가져 보고 권세도 가져 보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일은 다름 아닌 인간들끼리의 이야기에 있었다.

‘열화당’이라는 편액(扁額)에는 이러한 삶의 철학이 박혀 있다고 본다. 249회 ‘김종규 살롱’이 나간 뒤에 독자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많은 격려를 받았다. 필자도 깜짝 놀랐다. 격려를 준 연령층은 주로 50~60대의 장년층들이었다. 우리 사회에 기쁘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열화’의 장소가 너무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가 봐야 술집이거나, 골프 이야기가 주된 화제가 된다. 공이 들어갔느니 안 들어갔느니를 가지고 어떻게 한두 시간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그러다 보니 모두가 삶의 공허를 느낀다. 장년이 되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논하고, 시서화(詩書畵)를 이야기하면서 삶의 허무를 극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슬픔을 달래 주는 것은 악기의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우리 사회에 ‘열화 살롱’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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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悅話堂)이라는 이름의 출판사가 있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그 유래를 알고 보니 그 이름이 너무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 글은 내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상상력을 돋구어 주었으니, 하나는 ‘기쁘게 이야기하는 집’이요 다른 하나는 ‘공부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소통’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더욱이 나이 들어갈수록 ‘소통’의 필요는 증대되는데, ‘소통’의 여건은 축소되는 편이다. ‘기쁘게 이야기하는 집’을 마련할 수 있다면 거기에도 또 하나의 틈새가 있을 수 있겠다.


‘열화(悅話)’야말로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무엇을 가지고 기쁘게 이야기할 것인가. 보통 사람들의 화제는 일상생활이나 남에 대한 품평에서 멈추기가 쉽다. 한 걸음 나아갔다고 해야 골프인 모양인데 조용헌의 말처럼 공이 들어갔느니, 안 들어 갔느니를 가지고 어떻게 긴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해 꾸준히 공부해 나가면서, 때로 함께 모여 성취의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師友를 찾아 천하를 주유하던 옛 선비를 이해할만 하다.


고미숙은 묻는다. 우리네 삶에서 날마다 하고, 평생을 해도 변함없이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공부 말고 달리 무엇이 있는지를. 그러므로 대학 안에 있건 없건 누구나 평생 배워야 하며,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면서 동시에 자기 삶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고.


여기까지 쓰는데 불현듯 생각나는 것은, <논어> 학이편(學而篇) 의 첫머리이다. 누군가 기대에 부풀어 <논어>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 처음이 너무 평범해서 실망했다더니, 절대로 평범한 것이 아니라, 세상사 혹은 인생사의 가장 근본인 탓에 그렇게 비친 것이다. 아, 이제야 공자의 첫 말씀에 도달했구나.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고미숙은 또 말한다. 지식인에게 글은 공부의 최종 단계이자 생산성의 척도이며 존재의 표현 방식이라고. “그런데 글이란 그저 ‘자알’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잘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나 결단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검객이 무술의 초식을 익히듯, 악공이 악기를 다루듯, 한 수 한 수 터득해가는 장인적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 -나비와 전사 578쪽-


효율적인 백수생활을 위해 몇 가지 소의식이 필요하다. 아침에 일어나 세 페이지의 글을 쓰는 ‘글쓰기 명상’과 단어장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 말의 활용과 소통을 위한 단어장은 처음이다. 책을 읽다가 멋진 표현 혹은 혼동하기 쉬운 표현을 만나면, 적어두었다가 짬짬이 들여다보아, 내 것으로 소화할 생각이다.

강인선기자의 컬럼 중에 “뭐든 3년만 매달려 보자”라는 것이 있다. “한 1년 책을 열심히 읽은 정도 가지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3년만 계속해봐라. 그때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3년이 질적 변환이 일어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용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

“인간은 어떤 한 순간의 노력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러므로 위대한 것은 습관이다.”

내가 공부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행복하다. 열화당(悅話堂)에 둘러앉아 열화(悅話)를 즐기는 師友의 모습을 생각만 해 보아도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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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선장
2006.08.27 12:15:59 *.177.160.239
일요일 오후에 무심히 들어왔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3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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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08.27 20:52:07 *.118.67.80
미탄님의 글 중에는 고미숙의 언급이 무척 많군요.
아직 잘 모르는데 ...
한 번 고미숙을 연구해 보고 싶단 느낌이 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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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2006.08.28 07:36:14 *.252.184.251
열화당... "기쁘게 이야기 하는 집"
......
아~~~~~
(깨우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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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6.08.28 12:53:56 *.57.36.18
역시 글씀도 멋있고 글내용도 참하네요

드디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어 좋겠습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
만남에서 열화와 같은 열화를 남길 수 있는
날이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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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2006.09.06 20:25:43 *.75.67.13
52t세 나이에 대학 공부하면서 잘 하는 공부에 대한 연구가 습관으로 가야하군요 깨닫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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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6.09.06 21:14:55 *.81.93.95
반갑습니다. 자주 방문해 주시구요. 윌리엄 새들러 지음 서드 에이지,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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