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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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의 유일한 취미는 TV시청이다. TV가 한 사람 몫 역할을 한다고 하신다.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시면, 나는 컴퓨터 앞에, 어머니는 TV앞에 마치 맹신도처럼 앉아있다. 그것이 민망해서 가끔 옆에 앉아 있다보니, 아침연속극의 대강의 흐름을 알게 되었다. 방송국마다 아침연속극이 있어 4가지나 되는데, 비슷비슷한 구성 속에서도 유독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부모 특히 어머니가 장성한 자녀에 대해 휘두르는 전권이다.
시부모가 찬성하지 않는 결혼을 감행한 며느리를, 아들이 미국출장 간 틈을 타서 열쇠를 바꿔달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시어머니가 나온다. 정말 지겨운 설정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드라마를 시청해야 하는지? 혹시 아직도 실제 생활에서 이런 배역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인지? 비단 아침 시간대 뿐만 아니라, TV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관계 설정이다. 얼마 전에 탤런트 박원숙씨가 자신이 맡은 악역 시어머니 역할에 대해 “대본만 봐도 머리가 아프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보며, ‘탤런트의 사회의식이 대본을 뛰어넘을 경우, 그 직업도 골치아프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성학자 박혜란의 글에서, 자신은 아들의 결혼식에 주빈으로 초대받고 싶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아들부부가 모든 의식을 준비하고 주도하여 “이제까지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부터 저희 힘으로 살겠습니다” 하고 큰 절 올리는 자리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결혼이 무엇인가? 사회인으로 성숙하여 이제 그야말로 성인이 되었다는 독립선언인데, 우리네 삶의 풍경에서는 여전히 부모의 숙제요, 부모의 잔치가 아닌가?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기생하는 젊은 세대가 있다면 그것도 문제이거니와, 장성한 아들을 아직도 품 안의 자식으로 생각하여 일거수 일투족을 좌지우지 하려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도 시대착오적이다.
마침 대학 2학년인 아들 애가 첫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 모양이다. 두 살 연상인데, 신기하게도 참 말이 잘 통한다고 한다. 내가, 너무 빨리 일대일 관계로 들어가지 말고 자유롭게 복수의 여자친구를 만나는 걸 뭐라고 하느냐고 했더니, 아들애 왈 enjoy란다. ^^ 일단 ‘사귄다’는 것은 배타적인 관계로 진입하는 것을 뜻하나 보다. 어쨌든 아들애는 날개를 달았다. 알바해서 제가 번 돈으로 리바이스 청바지 사 입고, 홍대 앞 클럽에서 구미 땡기는 공연은 모조리 골라 보고, 이제는 여자친구까지 사귀게 된 것이다. 과거의 부모들은 그렇게 자유로운 아들딸만 바라보며 목매고 있었다는 얘기아닌가? 다소 위악적으로 얘기하자면, 부모들이여 자식을 버려라, 자식에게서 벗어나라. 그들이 독립된 개체인 것을 인정하고, 떠나 보내라. 그대신 부모들이여, 새로운 시니어 시티즌의 삶을 살아라. 자식을 독립시킨 자리에 무엇으로 ‘나의 시간’을 채울 것인지 고민하라. 자식들을 부양하되 이야기상대는 안되었던 종래의 역할을 뒤집어, 어느 선에서 부양의 책임은 벗되 진정한 의논상대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고민하자.
말도 안 되는 억지대사는 거의 폭력적이다. 머리 속으로는 끝도 없는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아직도 아침연속극은 끝나지 않았다. 구태의연한 고부간의 갈등스토리는 이제 그만, 산뜻하게 시대정신을 리드하는 드라마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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