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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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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30일 15시 31분 등록
영(靈)과 생(生)의 경계에서 부르는 목소리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이제까지 영화계에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태국 출신의 감독이다. 그의 작품 Ghost of Asia는 태국에 츠나미로 인해 피해를 입은 바로 그 해 만들어진 8분짜리 단편영화이다.

제목이 시사하는 내용을 보면 문득, 츠나미로 인해 한 맺힌 원혼들을 달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계음을 넣은듯한 깔깔대는 듯한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한 남자의 일상을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 그려낸다. 그러나 사실은 그 아이의 목소리는 그 남자가 어떤 행동을 하기 이전에 미리 말해버리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그 아이의 목소리를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 아이는 남자에게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고, 꽃을 꺽고, 휴지를 줍게 만든다. 이러한 일상의 반복되는 조그만 행위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자연의 목소리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한 사람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그 목소리는 비를 내리게 하고, 바람이 불게 하고, 또 파도를 치게 만든다. 즉, 자연의 목소리와 교묘하게 겹쳐지면서 그 아이의 목소리는 정녕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활 속의 꼬마의 목소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리얼리티(reality)의 범주에서 벗어나 액츄얼리티(actuality)의 범주에서 자연과 인간의 묘한 동거를 그린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은 생(生)의 법칙이 아닌, 영(靈)의 법칙을 따르게 마련이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그리고 일몰이 지는 자연의 소리를 인간은 듣는 듯 하지만, 실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극히 일부분인 생의 범주 내에 있을 뿐, 영의 범주는 이해하기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인간은 그러한 영적인 소리에 귀 기울여 행동하고자 한다. 그리고 파도가 치면 파도가 치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그저 따라가고자 한다.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 속에 생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아름다움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바로 actual 한 영역 속에 있음을 이 영화는 경쾌하게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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