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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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술마시고 들어온 날.
한명석님의 시에 관한 말씀에 필받아 잠깐 끄적거리는 사이에 새벽이 되어버렸네요.늘 님의 글을 읽으며 한번도 답글도 달지 못하고 크게 감명만 받고 그랬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글에 취해 저도 모르게 습작을 하다가 이렇게 올려볼까나 용기까지 내어보았습니다.
어쩌다 가끔 한번씩 시를 흉내낸답시고 끄적거린게 몇 개 있는데요,
이왕 올리는 김에 그간 평이 좋았던 거 한번 올려볼까 합니다.
부끄럽지만 일독 부탁드립니다.
제목: 가을 볕
모습을 모습이라 보지 못하고
마음을 마음이라 느끼지 못한 나는,
눈이 있다 하여 보인다 할 수 없고
목소리가 있다 하여 뱉을 수 없나니..
그대여.
혹여 내 그림자에 휘감겨
발걸음이 멈춰지걸랑
그땐 그저 가을 볕을 쬐이시게.
큰 유감도 작은 미련도
가을 볕에 날개 달아 보냄세.
얼기설기 어리석음
가을 볕에 토닥하며 먼 길 떠나 보냄세.
그렇게 커다란 의미도
그렇게 대단한 방종도
살아 나아간다는 것보다 더한 일은 없음을...
나의 설움,
너의 혼돈,
그 역시 살아 나아 가고자 하는 몸짓이었음을...
(2006,9,30)
제목: 막걸리
난 너를 바라보면 어미젖이 생각 나.
꼭 빛깔이 그렇잖아.
우유로 자란 나는 늘 널 보면 맛을 보고 싶어.
난 어미젖의 맛을 기억하지 못하거든.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는 나는 젖을 만들어 본 적도 없지.
젖 내음이 비릿한 건 알지만
그 맛은 잊어버렸어.
난 널 마시면 허름한 옛 주막의 거친 사내들이 떠 올라.
왜 드라마에선 남자들이 사발로 벌컥벌컥 마셔대잖아.
산을 내려오는 길목에선 나도 그렇게 꿀꺽꿀꺽 넘기고 싶어.
허리가 반 구부러진 할머니가 하는 식당이 있어.
난 막걸리와 생 두부를 주문했지.
묵은 김치와 묵은 열무가 놓여졌어.
꼬부랑 할머니가 “혼자 드시네~” 말을 건네며 상을 차려주었지.
내 어미처럼 정성이 깃든 손의 움직임.
맛있게 먹으라는 그 마음이 와 닿아 그냥 코끝이 시큰거려.
돌아오는 길에 시장을 들려봤어.
내가 좋아하는 니가 놓여있어 덥석 집었지.
다듬어 놓은 파와 감자를 파는 할머니를 봤어.
어둑어둑한데도 아직 팔지 못한 소쿠리가 그득해.
추위로 오그라든 작은 손에 발이 멈추네.
그런 할머니들을 보면 꼭 거기서 사주고 싶어.
까만 비닐에 담아주시며 부추를 한 웅큼 넣어주셔.
계란말이할 때 넣어 먹으라고.
난 그걸 다 넣어 감자전을 만들었어.
그리고 냉장고에서 널 꺼내 투명한 술잔에 따라
내 어미젖의 맛을 기억하려 애쓰며
꼬부랑 할머니들에게 파이팅을 하면서
너를 통해 세상과 소통을 하지.
나를 찾아 가는 길에 만나는 허물없는 친구.
너는 막걸리.
(2005,10)
제목:건배
다이아를 캐서는
그것으로 교환가능한 욕망을 셈해가며
안전지대를 향해 달렸다.
저 산만 넘으면 될 꺼라고
이 파도만 견디면 된다고 숨을 죽였다.
탐욕에 눈이 멀고
집착으로 다리가 부러지자
같이 뛰어왔던 오만이 이제야 알려준다.
당신이 움켜지고 있는것은
다이아가 아니라 돌멩이라고.
숨을 고르고 앉자니
옆에 온 쓸쓸함이 술을 청한다.
우리는 항상 그렇게
같이 달려와 놓고선
오늘이 처음인 듯
반갑게 건배를 한다.
(2000,7)
IP *.85.38.137
한명석님의 시에 관한 말씀에 필받아 잠깐 끄적거리는 사이에 새벽이 되어버렸네요.늘 님의 글을 읽으며 한번도 답글도 달지 못하고 크게 감명만 받고 그랬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글에 취해 저도 모르게 습작을 하다가 이렇게 올려볼까나 용기까지 내어보았습니다.
어쩌다 가끔 한번씩 시를 흉내낸답시고 끄적거린게 몇 개 있는데요,
이왕 올리는 김에 그간 평이 좋았던 거 한번 올려볼까 합니다.
부끄럽지만 일독 부탁드립니다.
제목: 가을 볕
모습을 모습이라 보지 못하고
마음을 마음이라 느끼지 못한 나는,
눈이 있다 하여 보인다 할 수 없고
목소리가 있다 하여 뱉을 수 없나니..
그대여.
혹여 내 그림자에 휘감겨
발걸음이 멈춰지걸랑
그땐 그저 가을 볕을 쬐이시게.
큰 유감도 작은 미련도
가을 볕에 날개 달아 보냄세.
얼기설기 어리석음
가을 볕에 토닥하며 먼 길 떠나 보냄세.
그렇게 커다란 의미도
그렇게 대단한 방종도
살아 나아간다는 것보다 더한 일은 없음을...
나의 설움,
너의 혼돈,
그 역시 살아 나아 가고자 하는 몸짓이었음을...
(2006,9,30)
제목: 막걸리
난 너를 바라보면 어미젖이 생각 나.
꼭 빛깔이 그렇잖아.
우유로 자란 나는 늘 널 보면 맛을 보고 싶어.
난 어미젖의 맛을 기억하지 못하거든.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는 나는 젖을 만들어 본 적도 없지.
젖 내음이 비릿한 건 알지만
그 맛은 잊어버렸어.
난 널 마시면 허름한 옛 주막의 거친 사내들이 떠 올라.
왜 드라마에선 남자들이 사발로 벌컥벌컥 마셔대잖아.
산을 내려오는 길목에선 나도 그렇게 꿀꺽꿀꺽 넘기고 싶어.
허리가 반 구부러진 할머니가 하는 식당이 있어.
난 막걸리와 생 두부를 주문했지.
묵은 김치와 묵은 열무가 놓여졌어.
꼬부랑 할머니가 “혼자 드시네~” 말을 건네며 상을 차려주었지.
내 어미처럼 정성이 깃든 손의 움직임.
맛있게 먹으라는 그 마음이 와 닿아 그냥 코끝이 시큰거려.
돌아오는 길에 시장을 들려봤어.
내가 좋아하는 니가 놓여있어 덥석 집었지.
다듬어 놓은 파와 감자를 파는 할머니를 봤어.
어둑어둑한데도 아직 팔지 못한 소쿠리가 그득해.
추위로 오그라든 작은 손에 발이 멈추네.
그런 할머니들을 보면 꼭 거기서 사주고 싶어.
까만 비닐에 담아주시며 부추를 한 웅큼 넣어주셔.
계란말이할 때 넣어 먹으라고.
난 그걸 다 넣어 감자전을 만들었어.
그리고 냉장고에서 널 꺼내 투명한 술잔에 따라
내 어미젖의 맛을 기억하려 애쓰며
꼬부랑 할머니들에게 파이팅을 하면서
너를 통해 세상과 소통을 하지.
나를 찾아 가는 길에 만나는 허물없는 친구.
너는 막걸리.
(2005,10)
제목:건배
다이아를 캐서는
그것으로 교환가능한 욕망을 셈해가며
안전지대를 향해 달렸다.
저 산만 넘으면 될 꺼라고
이 파도만 견디면 된다고 숨을 죽였다.
탐욕에 눈이 멀고
집착으로 다리가 부러지자
같이 뛰어왔던 오만이 이제야 알려준다.
당신이 움켜지고 있는것은
다이아가 아니라 돌멩이라고.
숨을 고르고 앉자니
옆에 온 쓸쓸함이 술을 청한다.
우리는 항상 그렇게
같이 달려와 놓고선
오늘이 처음인 듯
반갑게 건배를 한다.
(2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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