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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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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8일 16시 30분 등록

얼마 전, 한국영화 '괴물'이 우리나라 전체 스크린의 80% 이상을 점유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시 된 것이 있다. 그럼 여기에서 질문하나. 영화를 공부했거나 영화사에 관심 있다는 사람은 들어봄 짐한 영화 작가- 스위스태생 프랑스 작가인 '장 뤽 고다르'- 그의 70편이 넘는 작품 중 우리나라에 2005년까지 정식으로 개봉 된 작품 편수는 과연 몇 편일까?

정답은 단 2편. 바로 '네 멋대로 해라'가 1960년대에 상영되었고, '만사형통' 이라는 작품이 80년대 초에 소개되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나라의 극장현실에 이변이 생겼다. 바로 그의 최근작 2편 - 1999년작 '사랑의 찬가'와 2004년작 '아워뮤직'이 바로 그것이다.

일단 고다르의 영화를 '보여주지 않은' 우리나라의 극장 현실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솔직히 고다르의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것은 일본을 빼고 프랑스 본국에서조차 거의 드문 일이다. 한마디로 그의 영화는 '쉽지 않을' 뿐 더러 영화를 단순히 '쉼터' 혹은 '엔터테이너'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주기 때문이다. 그의 99년도 영화 - 사랑의 찬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영화를 만들때 관객들에게, 그리고 그가 창조해 낸 인물들에게 고뇌와 무거움을 던져준다. 특히 그의 최근작들은 예술의 기원과 역사속에 숨쉬고 있는 현재의 의미들을 찾아내는 순례자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사랑의 찬가> 또한 기억의 집합을 영화적으로 배열하려는 그의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영화에서 줄거리가 커다란 의미는 없다. 그러나 굳이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자면, 영화감독인 에드가(브루노 퍼즐루)는 영화를 준비 중에 있다. 그가 준비하고자 하는 영화는 “만남, 육체적 열정, 이별, 화해”라는 “사랑의 네 순간 중 어느 하나에 관한 것”이며, 노년, 중년, 청년이라는 세 시기의 커플이 등장하는 영화이다. 그러나 그가 만들려고하는것은 상투적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그는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만들려고 하는 영화가 역사의 한순간에 관한 이야기란 거 이해하죠? 이건 일종의 사회학적 연구예요.” 그건 실제로 <사랑의 찬가>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에드가는 여주인공 역을 맡기기 위해 한 여자를 만난다. 하지만, 사실 그는 그녀를 2년전에 만났지만, 그는 그 기억을 망각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 - 현재의 시점에서 그녀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흑백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2년 전’이라는 자막과 함께 컬러판 과거를 데려온다. 현재보다 늦은 과거, 흑백의 현재보다 더 빛나는 컬러의 과거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는 여러가지 방식을 통해서 그의 철학적 사유들을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기호들을 사용해서 풀어낸다. 신학과 성경에 관한 그의 의견, 미국인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 역사를 갖지 못한 미국과 헐리우드에 대한 사유, 레지스탕스를 불온한 시대의 대표자로 보는 그의 시각, 프랑스와 영국의 삐그덕거리는 관계, 인간의 성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그의 생각-. 그는 주인공 에드가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어두운 시대를 바라보는 고다르 자신의 개인적인 시선를 교차하여 그가 가는 여정을 살찌운다.

어렵고 까다로운 이야기들을 전편에 던져놓음에도 불고하고 때론 장난과도 같은 조그만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령, 전 세계인이 애용하는 영어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 중 하나인 OK의 어원을 설명해주는 장면- 즉, 남북 전쟁 때, 한 장군이 “O Killed(죽였다)” 라고 처음 사용되었음을 직설적으로 나타내 주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는 미국과 영어를 대할 때의 자신의 개인적 사고를 나타낸다. 이 장면들 때문에 헐리우드 비평가들에게 따끔한 반발을 샀다는 후문이다.

영화평론가 정한석에 따르면, 노년의 고다르가 추구하고 있는 영화는 '인류가 거쳐온 거시적 사건의 역사와 개인들의 미시적 삶의 역사가 예술의 역사를 통해, 영화의 역사를 통해 기적처럼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영화가 이를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가장 '정치적'이며 또 가장 '예술적인' 상태를 위해 이미지들을 배열하고 또 배열하는 것이다. 영화, <사랑의 찬가>에는 그런 그의 역사의식들이 고스란히 울려퍼진다. 고다르는 그런 역사의식들을 한데 모아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이를 <사랑의 찬가>라는 이름지운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대사와 화면속 삽입된 문자들을 통해 그가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문제들을 제시한다.

"진실은 현실에 있는데 왜 창작이 필요한 것인가?"
"영화는 침묵으로 가능한 많은 의미를 전달해야한다"
"영화에서는 감정이 사건을 유발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이어서는 안된다"
"나는 무엇에 대해 생각할 때는 반드시 다른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요."
"그는 성년(어른)이 되고자 노력하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존경해요"
"청년과 노년은 분명히 인식 가능하지만, 성년(어른)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 성년이지?"
"사람들이 성년이 되는데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된 것은, TV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나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죽음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살아 있을 때 존재에 대한 자각이 있을 뿐"
"시간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과거와 강한 유대감을 갖는다"
"진실은 어쩌면 의외로 슬픈 것일 수도 있다"
"미소의 잔해를 떠올리게 하는 생각들"
"기억의 의무와 권리"

흔히 ‘현대 영화 언어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ㅡ <사랑의 찬가>는 이제 80이 넘은 노장의 작가가 보여주는 현대사회의 문제와 삶의 철학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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