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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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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8일 17시 03분 등록

단테의 <신곡>은 신의 섭리와 구원,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를 중심으로 서구의 기독교 문명을 집대성한 최고의 문학작품이다. 그 책은 예술과 문학, 역사, 전설, 종교, 철학, 정치학, 천문학, 자연 과학 등 인간의 삶과 지식에 관계되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신곡>은 균형과 절제를 통하여 문학작품이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을 이루어냈다. 단테는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양 문학의 전범으로 꼽힌다.

<신곡>은 단테가 7일 동안 신의 세계를 여행한 문학적 상상의 기록이다. 단테는 여행을 마치고 기억을 통해 지난 일을 회상하며 <신곡>을 집필한다. 말하자면 <신곡>에 담긴 거대한 초월의 세계는 비초월자인 단테의 내부에서 형성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단테가 의존한 것은 '기억'이었다. 기억은 개인적인 사고와 정념으로 이루어지며, 불완전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작가 단테는 문학의 미적 형식을 빌려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통해 자신의 기억이 확장되기를 기다린다. 단테는 인간의 기억으로 불완전하게 재현된 초월의 세계를 독자와 더불어 계속 보완해나가고자 하는 문학적 기획의 입안자였다.

장 뤽 고다르의 2004년작 <아워뮤직>은 단테의 여행기를 지상으로 끌어오려는 거장의 시도다. 영화는 <신곡>의 형식과도 같이 '지옥편', '연옥편', 그리고 '천국편'의 세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지옥편'에서는 아무런 설명없이 수많은 전쟁에 관한 이미지와 몽타주들이 스쳐지나간다. 일부는 영화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이고, 일부는 비디오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 특정한 형식에 구분없이 자유롭게 전쟁의 잔혹함을 드러낸다. 이후 '연옥편'에서 내러티브가 시작된다. 고다르 본인은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유럽문학과의 조우’에 강연차 참석하러 길을 떠난다. 그 여행 도중 만난 인물들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기억들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환기시킨다.
그는 이 영화에서도 이미지와 텍스트의 구분, 실재와 이미지의 구분,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구분, 그리고 건설과 파괴의 문제들을 끊임없이 환기시미켠서 영화와 현실은 다름에 있지 않음을 제시한다. 결국 그는 세계를 구축하는 기본 원리와 현대 문명을 뒤덮은 그림자가 서로 대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되찾고자 하는 화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 챕터인 '천국편' 에서는 카메라는 그저 평화로운 해변에서 한가롭게 경계를 서고 있는 미국 해병대의 모습을 비춘다.

장 뤽 고다르는 <아워뮤직>을 완성한 직후 “더이상 내러티브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실은 그 이전부터 그의 이러한 노력은 진행되어왔다. 그는 고전적인 내러티브 보다는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중요한 매체임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진보적인 영상의 실험 속에서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홍성남은 “영화 <아워뮤직>은 결국, 수많은 반복 속에서 가장 큰 가치를 가진다”는 <뉴욕타임스>를 인용하면서, 반복되는 이미지 속에서 고다르는 명확한 말투로 영화의 원리를 선언한다, 고 말했다.

<아워뮤직>을 영화라고 일컫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까. 이것은 오히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뒤섞은 이미지의 실험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눈앞에서 반복되는 이미지 나열을 암호처럼 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비선형적인 구조 속에서 고다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백하다. 각각의 장은 인간의 역사가 거쳐온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의 형상을 그려낸다. 그는 전쟁과 학살의 역사를 지켜보며 인류의 윤리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의 원리는/ 우리의 밤과/ 우리의 음악을/ 빛으로 밝히는 것.”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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