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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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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3일 11시 25분 등록

모 문화센터에서 글쓰기에 관한 강좌를 듣고 있는데, 지난 주에 황당한 일이 있었다.
강사가 잘못된 글쓰기 샘플로 고른 글은 어느 사보에 실린 가정주부의 글이었다. 글쓰기의 오류만 지적하면 좋았을 것을, 강사의 표현은 점점 인신공격 수준으로 비화하고 있었다. 강사가 사보에 실린 글쓴이의 사진을 보며 용모까지 언급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기어이 문제제기를 하고 말았다.


잡지기사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기사가 아닌 글, 게다가 전문 기고가가 아닌 사람을 글쓰기 외적인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계속 “이 여자, 이 여자” 라고 칭하는 것은 듣기에 좀 거시기하다고. 나는 논쟁형이 아니고 수강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길게 끌지는 않았지만 신문기자를 10년이나 했다는 박사학위 소지자의 사회의식에 조금 놀랐다.


그에 비하면 출판평론가 표정훈의 섬세한 양식은 아주 돋보인다. 표정훈은 그의 책 “탐서주의자의 책”에서 ‘어머니의 서가’에 대해 언급한다. 애초에 글의 주제는 ‘아버지의 서가’에서 촉발된 독서력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헤르만 헤세와 제인 오스틴과 체 게바라의 사례를 들면서, 부모가 책 마당을 넉넉하게 펼쳐 놓으면 아이가 제 나름의 취향에 따라 스스로 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표정훈자신도 아버지의 서가에서 책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초둥학교 3학년 때 ‘삼국지’를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에리히 프롬과 마르크스, 아놀드 토인비와 빅토르 프랭클, 칼 포퍼를 아버지의 서가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서가를, 아버지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의 관문이자 금단의 세계처럼 느껴지던 어른들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딘 연습의 공간,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일단 의지해야 할 거인의 어깨로 이름짓는다. 아버지의 서가가 그러했듯이, 그의 서가도 아이에게 그런 곳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표정훈은 따뜻하고 매력있다.


그러면서 표정훈은 이제까지 ‘어머니의 서가’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례를 접하지 못했다고 얘기한다. ‘서가’에 대해서 논의하는 중이었고 굳이 ‘어머니’의 역할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표정훈은 이제 ‘어머니의 서가’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평소에 표정훈이 ‘여성’에 대해 개방적인 시각을 넘어선 기대치까지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어머니라고 해서 늘 부엌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서가’로 표현되는 독자적인 자기세계를 가지고 있어, 아이들에게 독립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서가’라고 할 것까지는 없어도 나는 늘 아이들에게 책을 읽고 쓰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미흡하나마 이 분야는 도와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결정적으로 취약한 분야는 ‘스포츠와 음악’이다. 이 두 분야처럼 충만한 몰입과 환희를 가진 분야에 문외한이라는 것이 통탄스럽다. 학원을 운영할 때, 원생들을 데리고 뉴질랜드와 필리핀에 간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스포츠와 음악 안에서 순식간에 하나가 되는 것을 보았다. 스포츠와 음악은 ‘위대한 통합적 언어’임에 틀림없다.


우리 나라의 이상 교육열은 ‘보여지고 점수를 따기 위한 것’에서 ‘스스로 향유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스스로 즐기고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진 사람은 행운아다. 살면서 부딪친 크고작은 인생의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확률이 높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대가 심화될 것이다. 혼자 놀 줄 알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안정된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안하랴. 기성세대로서 먼저 깨달은 것을 자녀에게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텐데, 스포츠와 음악의 세계를 열어주는 부모는 최고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악기는 어린 시절에 익혀야 하고,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라 반강제적으로 끌고 간다는 부모를 접하면 존경스럽다.


어머니가 차리는 것은 밥상만이 아니다. 어머니의 서가에는 책만 꽂혀 있는 것이 아니다. 초보엄마 시절에 행한 실수들을 만회하는 마음으로,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곰곰 생각한다. 언제고 아이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 그럼으로 해서 아이들이 부닥칠 많은 역경을 스스로 헤쳐나갈 자존심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 나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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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6.10.24 09:28:37 *.217.147.199
저에게도 아버지의 서가는 아주 의미 있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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