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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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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7일 11시 30분 등록


햇살이 너무 맑고 투명해서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어쩌면 그대로 내 안에 들어와 토실토실 나를 살찌울 것같은 그런 햇살입니다. 알맞게 서늘한 기온과 적당하게 살랑거리는 미풍사이로 내리쬐는, 이 햇살은 더 이상 따갑지 않습니다. 온 몸으로 맞이하여 마냥 앉아있고 싶은 그런 햇살입니다. 아하, 소장님께서 북한산 어디쯤에서 하신다는 놀이가 이해되는 순간입니다. ^^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완벽한 거울같습니다. 우리 어려서 하늘색이라고 쓰여있던 크레파스부터 시작해서 점점 짙은 쪽빛까지 그라데이션으로 펼쳐있는 거대한 비단 저 끝자락에, 손오공이 타고 다니면 딱 좋을 것같은 구름 두 어 개 떠 있습니다.


내게는 옥상의 사면이 모두 구경거리입니다. 입주를 코 앞에 둔 아파트도 좋은 구경거리입니다. 우선 일률적으로 기립부동 자세로 서 있는 것이 아니고, 동마다 전망과 채광을 보장받는 자유로운 자세입니다. 동의 높이도 모두 달라서 전체적으로 아주 유니크합니다. 아, 도시에서는 흔한 배치인가요? 이 곳 소읍에서는 모든 아파트들이 각진 두부모처럼 줄서 있거든요. 마침 아파트 이름이 Enrich이군요. 아무리 rich하게 해준다고 해도, 그 아파트 자체가 탐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미련없이 시선을 돌립니다.


제법 짱짱한 이층집이 몇 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뜰에 오층 건물 높이는 될 것같은 나무가 있는 집이 눈에 띕니다. 전나무 비슷한 이 나무는 완벽한 이등변삼각형으로 거대하기 그지없습니다. 막 누렇게 변하기 시작한 잔디에 널이 놓여져 있는 것도 정답습니다. 아침에 기사까지 딸린 차가 와서 이 집 주인을 태워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촌에서 그럴만한 위치란 어떤 직업일까, 잠깐 궁금해지지만 역시 그 집에도 별 욕심이 없습니다. 담장에 빨갛게 단풍든 담쟁이는 탐이 나네요.


오히려 제 가시거리 안에서 제가 욕심나는 집은 따로 있습니다. 저 쪽에 유독 나지막한 낡은 스레트집이 있군요. 녹이 슬었는지 검붉은 색깔을 띠고 있습니다. 뜰은 넓은 편이어서 상록수 몇 그루와 채마밭이 유독 새파랗습니다. 나머지 뜰은 가을색을 띠고 있어 오히려 그 집과 잘 어울립니다. 복숭아꽃 살구꽃만 피어있으면 그대로 ‘나의 살던 고향은’의 배경이 되어도 좋을만한 집입니다. 저는 그런 집이 좋습니다.


저의 사회적 정체성은 80년대 강원도에서 멈춘 것같습니다. 사람의 성향을 결정짓는 요인이 신기합니다. 오남매 중에서 저만 별종이거든요. 경빈씨가 ‘그리스인 조르바’ 리뷰에선가, ‘서울을 떠나 살 수 있을까’를 대단한 일탈인 것처럼 쓴 것이 생각납니다. 내게는 ‘당분간이라도 서울에서 살 수 있을까’가 대단한 과제이니 말이지요.


어쨌든 내 못생긴 꼬라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 결과, 제가 되고 싶은 것은 ‘산에 사는 작가’입니다. 물론 산도 없고, 작가도 아닙니다. 그러나 산도 있고 작가도 될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의 비밀이겠구나, 짐작합니다. 먹거리는 자급자족하고, 인세로 최소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면, 월든 호숫가의 소로처럼 못살랴, 싶습니다. 적어도 기질은 타고났으니까요.


4개월남짓으로 예정한 백수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뿐이니까요. 폼잡고 쓰려고 하면 자꾸 글이 막히고, 자기검열없이 마음을 풀어놓고 쓰면 조금 쓰입니다. 고작 1차 검열에도 걸리니 2차, 3차의 저 깊은 내면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

소장님께서는 진정한 쾌락주의자라는 생각을 더러 합니다. 눈을 감고 순간을 음미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 모습을 한 두 번 보았습니다. 이 덧없는 생을 제대로 사는 방법은, ‘그 짧은 단명의 순간’을 느끼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인생을 잘 살려고 하지 말고, 하루를 제대로 살아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스스로 모델이 되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말씀 안 드리면 모르실것같아서요. ^^


아직도 오전인 것이 신납니다. 우울이 찾아오면 우울과 놀고, 권태가 찾아오면 권태와 논다는 소장님은 가히 ‘혼자놀기’의 달인이십니다. ^^ 저는 오늘 최고의 감성을 가지고 놀아봐야겠습니다. 하루가 아까워 촘촘하게 달음박질치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사정없이 다운되는 날에 벌충이 되겠지요. 소장님의 하루는 어떤 빛깔인지요. 하루가 그 어떤 빛깔로 오더라도, 그에 맞추어 시간을 빚어내시리라 믿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IP *.81.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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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님
2006.10.28 06:39:42 *.116.34.126
종종 다른 이들이 부르는 내 호칭이 내게 전하는 뉴앙스를 생각해 봅니다. 한선생과 소정이는 나를 소장님이라고 부릅니다. 경빈이와 미영이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요. 재엽이와 간디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요. 도선생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귀자는 나를 사부님이라고 불러요. 나머지는 본지가 오래돼서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이중에서 소장님이라는호칭이 제일 공식적이고 사회적인 것 같군요.

한선생은 매우 개성적인 사람입니다. 매우 자유로운 사고를 즐겨야 하지요. 가장 비사회적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처음 남해 미조의 선창가를 걷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익숙합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지요 ? 혼자있는 자유가 사회와 만나게 될때 발생하는 불일치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지 않도록 하세요. 그 불일치에 대한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로와 져야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어요. 불일치와 함께 사세요.

나는 공식적인 관계에 잘 못견디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만나 정이 들면 무장해제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쉽게 그렇게 됩니다. 다른 사람 보다 갑옷을 빨리 벗어 버리기 때문에 종종 나를 버릇없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이가 들어 서는 조금 조심하게 되었지만 더 나이가 들어서는 조심하지 않아도 소통되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치중하게 됩니다. 날은 저물어 가고 시간은 없는데 왜 이것저것 가려야 하는 사람들과 만나겠어요 ?

나는 죽음이 상징하는 삶의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힘은 밧줄로 묶어 놓은 모든 매듭을 풀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내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모자라는 세상이라는 붉은 각성을 하게 합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투쟁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비사회성이야 말로 마땅한 사회적 기능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의 원칙에 매일 때, 그 밧줄들을 불싸지르는 짓을 하는 것이 문인들이었지요. 뜨겁고 데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지평을 넓혀 주었지요.

지위를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연인들을 만들어 냈고, 자신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인물들을 만들어 냈고, 멀쩡한 세속의 즐거움을 버리고 엉뚱한 길로 새는 영웅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한선생이 말한대로 책과 글은 타고난 영역이라 여겨집니다. 자기검렬을 지우고, 별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성을 향한 노력을 내 던지고 자유로워 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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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6.10.28 08:50:07 *.81.18.156
'언어가 같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입니다. 오랫동안 '미운 오리새끼'로 살아온 것을 보상받을 정도로, 쭈뼛 솜털이 서는 감각과 함께 몸이 부웅 솟구치며 고양되는 것을 느낍니다,
자상한 말씀 고맙습니다.

너무 연로한 제자라 - 아니, 벌써! - 공식적인 호칭을 택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사부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여행길, 안전운행 하시고 맘껏 즐거운 일정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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