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김성렬
  • 조회 수 197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6년 11월 16일 14시 15분 등록
겨울로 간다.


1

비가 내린 뒤
스산하게 젖은
빈 주차장에 서 있는데

나를 스치고 간
하늬바람이
굽어 도는 갓길에
몸을 눕힌 채,
시무룩한 낙엽들을

차들이 뜸해져 신선한
길 위의 여백 속을 춤추게 한다.

큼지막한 파카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은 손을
어깨를 치켜 움츠리며
힘을 주어 낮은 팔장을 하면서

서울 가는 길에
누나를 데려다 주려 마당가에
기다리고 서 있던 나는
서울이 아니라
겨울로 가는 길목에 섰다.


2

너울거리는 낙엽을 따라 다니던 시선이
겨울로 가는
내 생각들을 불러
머리 속을
이리 저리 휘젖고 다닌다.

문득
심각한 이야기 말고
재미난 거 하나 쓰라던

동갑내기 친구가
한 말이 생각이 나서
피식 웃으며 돌아 서는데

‘가자!’
채비하고 나선 누나가
나를 부른다.

‘ 가요 !’
그렇게 길을 나서는데
누나는 서울로
나는 겨울로 간다.

3

누나는 손가락을 접으며
김장김치 나눌 사람을 셈 하면서
‘몇 포기나 담아 달랄까? ’
내게 묻는데

나는 만년설 속에
천년에 한 번 핀다는
전설의 꽃을 생각하다가
‘천 포기!? ’
반색하며 대답한다.

‘어이그야! 너무 많지 않니?’
‘형네 집엔... 단체 손님도 많이 올거잖아요’
‘그래 ... 그러기는 해... ’
‘모자라면 안 돼! 꼭 천 포기 해야돼’

멀뚱히 나를 쳐다보던
누나는 김장 담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서울로 가는데

나는 싱겁게 피식 웃으며
천년을 채운
꽃이 피는 겨울로 간다.


4

누나는
책카페에 '닫힘' 팻말을 걸어 두고
거리를 지나 서울로 가고

나는
천년을 비워 둔 하얀 가슴에
'열림' 팻말을 안고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간다.

겨울로 간다.

길을 쫒는 나는
북적이는 서울로 가고
천년을 달려온 나는
따뜻한 겨울로 간다.

^^ 겨울로 간다.












IP *.75.166.98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49 소정이에게, 공간에 대한 이야기 (몰입의즐거움중) [4] 다뎀뵤 2006.11.15 2108
2848 처음 강의를 마치며... [6] 도명수 2006.11.15 2558
2847 나는 너와 즐기는 탈선이 재밌다. [5] 다뎀뵤 2006.11.16 1946
» 따뜻한 겨울로 간다 김성렬 2006.11.16 1970
2845 우리의 모습 [11] 신재동 2006.11.16 2731
2844 선천성 목표비호감 증후군 파해법 원아이드잭 2006.11.17 2114
2843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1] 한명석 2006.11.18 1961
2842 무엇이 그토록 절절한 고독 속으로 너를 떠밀었을까. 다뎀뵤 2006.11.18 2133
2841 -->[re]따뜻한 가슴이 흐른다. [1] 오옥균 2006.11.18 2094
2840 '자기다움'을 찾는 것이 '열정'의 시작이다!! [6] 원아이드잭 2006.11.20 2052
2839 11/18 [4] 김성렬 2006.11.20 2141
2838 내 생애 마지막 일주일 [5] 김귀자 2006.11.21 2465
2837 나는 혼자서 병원 다녀오는 길의 군것질을 좋아한다. [2] 다뎀뵤 2006.11.26 1965
2836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몇 가지 일 [1] 자로 2006.11.26 2488
2835 자기다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의 초대 [7] 亨典 이기찬 2006.11.27 3111
2834 transfer platform [11] 김성렬 2006.11.28 2039
2833 한 친구를 생각하다 多仁 귀자 2006.11.29 2090
2832 제주도 코미디 [5] 김귀자 2006.11.29 2037
2831 나이들어 좋은 점 [10] 한명석 2006.11.29 2796
2830 친절한 글쓰기에 대하여 [1] 다뎀뵤 2006.11.30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