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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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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8일 04시 27분 등록

영화와 쇼비즈니스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확장이 놀랍다. 다양한 철학과 관점을 지닌 감독집단을 토대로 한국영화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고, 가수들이 속속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에서 고현정의 1회 출연료가 2,500만원이라든가, 연예산업의 화폐단위가 일반인에게 괴리감을 주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다. 전에는 그저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요며칠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다시 보면서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이 드라마에는 재벌가의 남녀와, 극빈층의 남녀 네 명이 나온다. 이 네 명은 발리에서부터 시작되는 인연으로 얽히며, 사랑과 욕망을 연기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드라마에서조차 남루한 현실을 보고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들은 늘 재벌가의 자제이다. 그런데 사랑타령만 갖고는, 나처럼 따져보는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없으므로 계층간의 문제를 양념으로 섞는다. ‘계급은 중세에만 있던 것은 아니야, 그놈들의 헤게모니가 우리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을 뿐이지’ 계급이 다른 그들은 사랑은 할 수 있어도, 결혼할수는 없다.


현실에는 드라마에서처럼 사랑이 흔하지 않다. 더러 사랑을 겪기도 하지만, 그것이 드라마에서처럼 드라마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우리는 조인성이나 하지원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가 원하는 모든 환타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네 명의 캐릭터가 완벽하고, 배우들역시 충분히 몰입되어 있다. 걷는 것조차 화보인,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럭셔리한 조인성의 패션과 가난한 수재 소지섭의 냉소, 동네북처럼 얻어터지고 다니면서도 결코 밥을 거르지 않는 잡초같은 하지원, 모든 것을 가졌으나 결국 사랑을 구걸하게 되는 박예진, 드라마 속에서 그들은 완벽하다.


드라마에는 상류사회의 패턴이 있고, 선남선녀가 있고, 게다가 순정이 있다. 완벽한 부와 신체조건을 가진 조인성이 판자촌에 사는 하지원을 허락해달라고, 아버지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운다. 인간의 이마와 코가 어떻게 저렇게 각이 질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꺼이꺼이 운다. 사팔뜨기 기미가 있는 조인성의 백치미가 여실하게 발휘된 드라마이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끊임없이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화를 생산한다. 알면서도 나는 드라마를 본다. 그것도 아주 빠져서 본다.


적당한 개연성을 가지고, 철학적인 대사도 간간이 등장하며, 지독한 통과의례를 겪는 네 청춘의 모습에 매료된다. 방송작가 부부가 같이 썼다는데, 한 장면에 대해 무려 30가지의 옵션을 두고 토론한 적도 있다고 한다. 심리묘사가 리얼하고 억지가 없다. 두 남자가 서로에게 갖는 질투 때문에 하지원에 대한 사랑이 증폭된다.
‘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굳이 가 볼 필요가 없는 길도 있어’
부와 사랑을 쫓으며 얽히다 급기야 권총자살까지 하게 되는 이 드라마는, 극적으로 과장되었다고 하나, 청춘의 진혼곡으로 손색이 없다.


어찌보면 대중문화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는’ 욕망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지나가는 레일인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을 감내하기 보다, 창조하는 일에서 더 일상을 느끼는 저 예술가라고 하는 무리들의 자위행위이다.


결국 우리의 실체는 우리가 욕망하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의 빛깔은 우리가 욕망을 처리하는 방법에 따라 변주된다. 배우들은 연기하면서 환타지에 빠지고, 우리는 시청하면서 환타지에 빠진다. 우리가 드라마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그들의 몸값은 올라간다. 연예인은 분명한 역할이 있는 직업이었다. 부와 명예를 그러쥘 수 있는 신 귀족이 될만한 직종이다.


이번에 ‘발리에서 생긴 일’을 다시 보면서 나는 알았다. 작가와 연기자와 시청자인 나의 욕망이 어우러지는 드라마 한 편에서 나는 알았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우리의 욕망을 대신 처리해주는 산업이라는 것을.
IP *.81.2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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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뎀뵤
2006.11.18 06:32:44 *.91.54.146
그런의미에서 본다면
최근에(!이라고 하기에는 좀 오래된) 제가 잼있게 본 드라마
'연애시대'라든지 '발칙한 여자들'을 본다면.
요즘 사람들은 옛사람과 한번쯤은 다시 마주치고 싶은 욕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알지 못하게 얽혀있던 과거의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좋게 매듭 짓고 싶은 마음이 있는것 같아요.
제가 잼있게 보았던 이유도 그런 것들에 공감하기 때문인것 같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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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저는 그게 궁금해요.
실제로도
찢어지게 가난하고 억척스러운 아가씨가
그렇게 능력있고 멋있고 잘사는 남자를 만나서
팔자펴고(?) 사는 일이 있기나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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