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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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읽기에 물이 올랐다. 어떤 문장들은 고스란히 내 안으로 들어와 환한 등불이 된다. 2막 인생을 살아갈 실마리를 잡을듯도 하다. 젊은 날에는 아무리 좋은 글귀를 읽어도, 그에 가늠하는 체험이 없으므로 관념으로 받아들일수밖에 없다. 머리로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은 어지간한 인간사를 모두 겪어왔다.
여자들이 제일 혼란스러워한다는 나이 서른과, 남자들이 혹독하게 사회적인 성장통을 치룬다는 나이 마흔을 모두 지나쳐왔다. 그래서 그에 관련된 내용을 접하면, 아하 나는 그 느낌을 알지, 그 오솔길을 지나왔거든... 하고 슬쩍 미소지을 수 있다. 서른? 결혼에 대한 강박관념만 떨쳐버리면 그렇게 아름답고 유능한 시기가 없는데 왠 엄살이야. 마흔? 아직 멀었어. 아직도 청년처럼 욕구가 앞서는 것이 훤히 보여.
이제는 책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는다. 저자가 하는 말이 나의 체험과 맞물리면서, 쩌릿한 감동이나 절절한 통한으로 온다. 아아, 그 때도 이걸 알았더라면 하고 생각하지만, 어림없는 말이다. 그 때도 이 정도 책을 접하기는 했을테니까. 단지 머리로 받아들이고, 금방 잊어버렸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가슴으로 받아들인 책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나의 삶이 된다. 나는 내 삶 속에서 내가 읽은 것을 실현해내야 하는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미래에셋의 회장 박현주는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19번 읽었다고 한다. 그는 1999년에 다음커뮤니케이션 주식에 24억을 투자하여 1000억의 매매차익을 얻었다. 선진국에서는 인터넷사업이 활황이라는 것을, 그는 독서를 통해 알고 있었다. 선구자가 지나간 길은 곧바로 대중에게 상식이 된다. 대중보다 너무 앞서면, 재미가 없다. 니체 정도 되면 한 300년 자신을 알아줄 독자를 기다릴 수 있지만, 보통 사람은 다르다. 너무 지치기 전에 작은 성공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통통통 징검다리처럼 작은 성공을 딛고 큰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대중보다 딱 한 걸음만 앞서는 방법이 책 속에 있다.
책을 읽다보면, 책이 나를 격려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오늘 읽은 내용이 인용된 것을 그 다음날 발견한다. 하루에 각기 다른 책에서 비슷한 내용을 세 번이나 발견하는수도 있다. 책의 요정이 나에게 예비된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박현주만큼 쇼킹하지는 않더라도, 남은 시간에 헌신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일은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각광받지 못하는 일일수도 있다. 단지 내 마음이 가는 일이면 된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상태이기 때문에, 마음이 가면 행복하다. 그것도 책에서 배웠다. 아니 체험으로 배웠다. 좋은 일이다.
오랜만에 산책을 갔더니, 늘 다니던 오솔길이 훨씬 넓게 보였다. 실제로 완연하게 넓어졌다. 일년초 덤불들이 모두 말라죽고, 나무 이파리도 다 떨어져 길이 넓어진 것이다. 잎을 모두 버렸는데 더 넓어졌다? 나는 신기한 것이라도 깨달은 사람처럼 흐뭇한 심정이 되어 초겨울의 숲을 지나왔다. 나를 알고 자연을 알고, 매 순간이 아까워 오감을 열어놓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역시 한 시절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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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일년 가운데 저는 봄을 유난히 좋아했더랬습니다.
몇 년전까지만해도 그랬는데요, 사월 무렵 나무에 새 이파리가 마악 올라오고 그 이파리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아주 미치게 좋아했습니다.
그건 제가 다니던 중학교 - 교실 바깥 풍경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면 제게 떠오르는 기분 좋은 풍경 하나입니다.
그랬던 제가 가을에 흠뻑 빠져있었습니다. 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감탄을 합니다.
중부지방에는 눈이 내리기도 한다는데 이곳 남쪽에는 이제 막 늦가을의 절정이 지나가고 나무들은 이파리를 모두 떨구어 내었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훨씬 아름다운 절정의 가을이었습니다.
내가 열서너살에 발견했던 봄처럼
지금 가을을 발견하고... 그래서 또 설레입니다.
마흔살의 나를 설레며 맞이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몇 년전까지만해도 그랬는데요, 사월 무렵 나무에 새 이파리가 마악 올라오고 그 이파리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아주 미치게 좋아했습니다.
그건 제가 다니던 중학교 - 교실 바깥 풍경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면 제게 떠오르는 기분 좋은 풍경 하나입니다.
그랬던 제가 가을에 흠뻑 빠져있었습니다. 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감탄을 합니다.
중부지방에는 눈이 내리기도 한다는데 이곳 남쪽에는 이제 막 늦가을의 절정이 지나가고 나무들은 이파리를 모두 떨구어 내었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훨씬 아름다운 절정의 가을이었습니다.
내가 열서너살에 발견했던 봄처럼
지금 가을을 발견하고... 그래서 또 설레입니다.
마흔살의 나를 설레며 맞이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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