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명수
- 조회 수 2155
- 댓글 수 4
- 추천 수 0
E.T. 할아버지 세상을 뜨다
“…저기가 어디야,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E.T. 할아버지 채규철씨가 운명했다는 보도다. 이 보도를 접한 나는 불현듯 그 분이 생각이 났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 분은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국가유공자 자녀 교육프로그램에 강사로 초빙되었던 분이었다. 지금은 이름이 분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보도 내용을 읽어본 순간 그 분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의 장에 들어선 그 분의 모습은 처연했다. 그 분의 얼굴을 본 순간 수강생 전원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얼굴 형체는 그저 둥근 원일뿐이었다. 굴곡이 없었다. 입도 코도 눈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쪽 눈만 어렴프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남은 한쪽 눈은 의안(義眼)이었다.
그 분은 의사로서 남들과 같은 부귀영화를 던지고 풀무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장 기려 박사와 함께 복지운동 중 1968년 31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이 사고로 3도 화상을 입고 30차례가 넘는 성형수술 끝에 한쪽 눈을 잃고 손가락까지 오그라든 몸으로 살아남는다. 여기서 그의 인생은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분은 그렇지 않았다. 육체적 위축이 그의 정신마저 주눅 들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청십자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간질환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모임인 ‘장미회’를 만들어 의료 복지운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사회공헌활동 중 강의장에서 그 분을 만났던 것이다.
아마 그 분의 강의 제목은 삶의 희망에 대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지금은 너무나 먼 날의 강의였기에 자세한 내용을 알지는 못하지만 나의 가슴에 와 닿는 사항은 세 가지쯤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정신이 육체보다 고결하다는 점이다. 육체의 불구(不具)에도 불구하고 이에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의 높은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비범함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명강의였다.
둘째는 배움의 중요성이다. 그 분은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나 6.25 때 홀몸으로 서울에 왔으며 수많은 어려움에도 대학졸업과 유학을 거쳐 의사의 몸으로 교편을 잡은 분이다. 이 과정에서 배움의 소중함을 느꼈단다. 만일 배움이 없었다면 이 같은 대형사고에 자신을 추스리지 못했을 것이다. 배움을 남들에게 전수코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에 그 분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셋째는 바로 깨달음이다. 남들이 바라는 영화(榮華)를 뒤로하고 복지운동에 임했음에도 그에게 닥친 불행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분은 이를 깨달음으로 극복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한 것이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다른 역할이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라는 깨달음이 오늘의 그 분을 있게 한 것이다.
언젠가 그 분의 높은 뜻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장소에서 한번 뵙기를 원했다. 일상의 굴레에 젖어 그 분을 망각하고 지냈던 평범한 시절이 아쉽다. 이제 그 분은 이름만을 남긴 채 우리들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한 순간의 짧은 강의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그 분에게도 통했다. 그 분은 “우리 사는 데 ‘F’가 두 개 필요해. ‘Forget(잊어버려라), Forgive(용서하라).’ 사고 난 뒤 그 고통 잊지 않았으면 나 지금처럼 못 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 누구 잘못이 어디 있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 받는 거야.”라는 아름다운 말도 우리에게 남겼다.
길지 않은 인생을 활활 태우다가 훨훨 하늘로 날아가신 그 분. 그는 아이들에게 그래서 E.T.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다. 이미 타버린 할아버지라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주신 고인께 삼가 명복을 빕니다.
IP *.57.36.34
“…저기가 어디야,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E.T. 할아버지 채규철씨가 운명했다는 보도다. 이 보도를 접한 나는 불현듯 그 분이 생각이 났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 분은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국가유공자 자녀 교육프로그램에 강사로 초빙되었던 분이었다. 지금은 이름이 분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보도 내용을 읽어본 순간 그 분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의 장에 들어선 그 분의 모습은 처연했다. 그 분의 얼굴을 본 순간 수강생 전원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얼굴 형체는 그저 둥근 원일뿐이었다. 굴곡이 없었다. 입도 코도 눈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쪽 눈만 어렴프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남은 한쪽 눈은 의안(義眼)이었다.
그 분은 의사로서 남들과 같은 부귀영화를 던지고 풀무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장 기려 박사와 함께 복지운동 중 1968년 31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이 사고로 3도 화상을 입고 30차례가 넘는 성형수술 끝에 한쪽 눈을 잃고 손가락까지 오그라든 몸으로 살아남는다. 여기서 그의 인생은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분은 그렇지 않았다. 육체적 위축이 그의 정신마저 주눅 들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청십자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간질환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모임인 ‘장미회’를 만들어 의료 복지운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사회공헌활동 중 강의장에서 그 분을 만났던 것이다.
아마 그 분의 강의 제목은 삶의 희망에 대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지금은 너무나 먼 날의 강의였기에 자세한 내용을 알지는 못하지만 나의 가슴에 와 닿는 사항은 세 가지쯤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정신이 육체보다 고결하다는 점이다. 육체의 불구(不具)에도 불구하고 이에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의 높은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비범함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명강의였다.
둘째는 배움의 중요성이다. 그 분은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나 6.25 때 홀몸으로 서울에 왔으며 수많은 어려움에도 대학졸업과 유학을 거쳐 의사의 몸으로 교편을 잡은 분이다. 이 과정에서 배움의 소중함을 느꼈단다. 만일 배움이 없었다면 이 같은 대형사고에 자신을 추스리지 못했을 것이다. 배움을 남들에게 전수코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에 그 분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셋째는 바로 깨달음이다. 남들이 바라는 영화(榮華)를 뒤로하고 복지운동에 임했음에도 그에게 닥친 불행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분은 이를 깨달음으로 극복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한 것이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다른 역할이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라는 깨달음이 오늘의 그 분을 있게 한 것이다.
언젠가 그 분의 높은 뜻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장소에서 한번 뵙기를 원했다. 일상의 굴레에 젖어 그 분을 망각하고 지냈던 평범한 시절이 아쉽다. 이제 그 분은 이름만을 남긴 채 우리들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한 순간의 짧은 강의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그 분에게도 통했다. 그 분은 “우리 사는 데 ‘F’가 두 개 필요해. ‘Forget(잊어버려라), Forgive(용서하라).’ 사고 난 뒤 그 고통 잊지 않았으면 나 지금처럼 못 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 누구 잘못이 어디 있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 받는 거야.”라는 아름다운 말도 우리에게 남겼다.
길지 않은 인생을 활활 태우다가 훨훨 하늘로 날아가신 그 분. 그는 아이들에게 그래서 E.T.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다. 이미 타버린 할아버지라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주신 고인께 삼가 명복을 빕니다.
댓글
4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309 | [3]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2] | 써니 | 2006.12.19 | 2940 |
1308 | 편지 | 김성렬 | 2006.12.19 | 2272 |
1307 | 한국의 스포츠 새역사를 쓰다-30 [1] | 도명수 | 2006.12.18 | 1986 |
1306 |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 김성렬 | 2006.12.18 | 2115 |
1305 | 미지의 벗(놈?)에게 드리는 편지 [3] | 써니 | 2006.12.18 | 2159 |
1304 | 영화 '그녀에게'를 보고- 사랑과 욕망에 대한 보고서 | 정재엽 | 2006.12.16 | 3012 |
1303 | 나의 직업 야그 좀 들어보실랍니까? [2] | 亨典 이기찬 | 2006.12.15 | 1976 |
1302 | 취업을 앞둔 사학년이 되어서... [3] | 김현철 | 2006.12.15 | 2041 |
1301 | [1] 늦은 가을에 [2] | 써니 | 2006.12.14 | 1885 |
» | E.T. 할아버지 세상을 뜨다 [4] | 도명수 | 2006.12.14 | 2155 |
1299 | 요즘엔 정말. [4] | 소정 | 2006.12.14 | 2781 |
1298 | 내 안의 너에게.. [1] [2] | 김성렬 | 2006.12.13 | 1891 |
1297 | 이기는 것과 더불어 사는 것 | 김성렬 | 2006.12.12 | 2105 |
1296 |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하고 싶다 [2] | 김종원 | 2006.12.12 | 2094 |
1295 | 복귀 [6] | 暻山경빈 | 2006.12.12 | 1872 |
1294 | 예민모드 [10] | 다뎀뵤 | 2006.12.10 | 2166 |
1293 | 지나온 삶, 앞으로의 삶 [3] | 김성렬 | 2006.12.08 | 1873 |
1292 | 여자의 서른 살을 위하여 [12] | 한명석 | 2006.12.07 | 2385 |
1291 | 예술의 문외한 에비타를 가다 [1] | 도명수 | 2006.12.06 | 2123 |
1290 | 12/5 [2] | 김성렬 | 2006.12.06 | 20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