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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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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7일 08시 49분 등록
한가지 수줍은 고백을 하고자 한다.

올해 신춘문예를 지원했었다. 결론을 미리 이야기 하자면, 낙방. 신춘문예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와 친한 친구가 기라성 같은 신예들을 물리치고 고 2 때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을 보고 나는 그만 기겁을 하고 말은 적이 있다. 비록 지방의 한 일간지였지만, XX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이라는 그 친구의 프로필은 그 해 문단의 커다란 이슈거리였다. 그 후 문예장학생으로 대학을 입학한 친구는 대학시절 한번 보았는데, 그는 산에 들어가 수염을 기른 도인이 되어있었다. 지금 소설을 쓰는지, 아니면 시를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친구가 그 빛나던 글을 다시 한번 휘엉청 날려주기를 희망한다.

그 후, 몇 번 응모를 했었지만, 실제로 당선을 생각해서 응모를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응모를 계기로 시도 한번 써보고, 소설도 한번 써 보다는 의미에서 지원했던 것이었다. 뭐랄까. 단기적인 목적의식을 가지기 위함이었다고나 할까. 당시 신춘문예를 지원한 것만으로도 커다란 영광이라고 생각을 했고, 나와는 먼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내가 변화경영 연구원의 연구원 자격으로 글을 쓰면서 책 출간을 상정해 놓고 보니 아무래도 글을 쓰기 위한 하나의 타이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쓰고자 하는 책은 나의 전공과는 무관한 전혀 동떨어진 나라의 이야기인지라 나에게는 그 타이틀이 더욱더 달콤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암튼 열심히 준비했다. 내 특유의 투지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클래스를 찾아 수강을 했고, 이미 등단한 사람을 찾아 자문을 구했다. 현재 박사과정에 있는 수업 중 몇 과목을 더 수강하면서 나의 열정을 불살랐고, 미국과 유럽 출장 중에도 머릿속에는 온통 공모전에 응모할 원고 생각이었다. 아직도 원고가 내 손을 떠나가던 날이 생각난다. 우편으로 부치기 전날, 새벽까지 원고를 마감하느라 부산거렸던 기억이 난다. 머릿속에는 온통 텍스트가 되었던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커다란 시험을 앞두고 있는 아내에게 혹시나 나의 준비로 인해 신경쓰일까 이야기 하지 않기로 결심해, 가끔씩은 힘든 일이 있어도 입이 근질거린채 말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원고를 보내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리라 생각되었건만, 실은 그때부터가 진정으로 사람의 피를 바싹 마르게 하던 시기였다. 1월1일 신문지상에 발표가 되기 때문에 미리 연락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혹시나 핸드폰을 통해 연락이 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혹시 모르는 전화라도 핸드폰 액정에 뜨면 최대한 목소리를 점잖게 해서 받았던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수상소감을 미리 쓰기도 했다. 써놓고 보니 글보다 수상소감이 더 멋진 것도 같았다. 그 수상소감을 쓰면서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연말 영화제 시상식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왜 그리도 눈물을 쏟아내는지 대리 만족도 느껴보았다. 성탄절 미사를 참여하면서도 혹시나 신문사에서 전화 오지 않을까 핸드폰을 보면서 미사를 드렸다면, 내가 너무 집착한 것일까.

그러던 오늘. 나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다. 무작정 투고한 일간지에 전화를 걸어 정재엽 답게 씩씩하게 물어보았다. 처음에 머뭇머뭇하던 편집부 기자로 들리던 전화 받은 남자분도 나의 집요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는지, 결국엔 당선자들에게 개별 통보가 갔다는 고백을 해버린 것이다. 순간. 아찔했지만, 내가 당선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울음이 와락 하고 쏟아졌다. 오히려 당황해하는 직장동료의 목소리가 내 목덜미 뒤로 가늘게 울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러나 아무래도 한 학기 동안 내 모든 것을 던지면서 매달렸던 것 만큼 아쉬움도 분명 남는 것을. 내 특유의 승부근성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지만, 이 상처가 더 강인한 피부를 만든 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래도 내 주어진 상황에서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음에 후회는 없다. 후회가 없기에 아쉬움이 더 남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음이 더 무서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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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6.12.26 18:09:35 *.70.72.121
우후~ 멋저요. 최고에요. 진짜 진짜 멋지다. 게다가 용감물상함까지...
이담에 뵙게되면 아기 장난감 선물해 드릴께요. 안주인님의 너무너무 중요한 시험도 좋은 결과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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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6.12.26 21:50:05 *.57.36.34
재엽씨 좋은 결실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진정한 승리는
쓰러지지 않을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때마다 일어나는 것이거든요.

일어나면 됩니다. 그것도 벌떡일어나세요.
아직 시간이 철철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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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12.27 04:02:37 *.75.166.98
낭만적이시군요...
시합에 져도 멋진 사람이 있습니다.
실패는 패배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내 후년 1월 1일엔 꼭 신문을 사서 봐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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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6.12.27 05:45:09 *.183.226.121
형, 힘내요. 담엔 꼭 될꺼야. 한번에 되면 너무 거만해지잖아.^^

근데 글이 되게 말랑말랑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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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
2006.12.27 07:40:12 *.81.93.180
책읽기에서 쟁여놓은 희열은, 글쓰기에 제대로 풀어놓았을 때 더욱 배가됩디다. 그런데 누군가 내 글을 정확하게 읽어주었을 때 -내가 의도한 것은 물론, 슬쩍 흘려놓거나 차마 드러내지 못한 행간을 읽어주었을 때의 기쁨은 거의 오르가즘에 버금가던데요. ^^
글이나 책은 누군가에게 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어요.

재엽씨의 수다와 공감능력은 탁월한 경쟁력이지요.
혁재 춤을 신청해서 볼 것을 아쉬워요. 정말 딱인데!

재엽씨의 수다에는 무조건적인 인정과, 밝고 커다란 웃음과, 즉각 화제를 이끌어나가는 방대한 데이터가 있지요. 이것은 상대방과 좌중을 즐겁게 해 주고 싶다는 학예회 킹의 자세이지요.

그런데 글에서는 엘리트의식이 풀풀 넘쳐, 아무리 읽으려고 해도 눈에서 뱅글뱅글 돌기만 한다면,
더구나 전공도 아닌 영화평론이고, 대중성과 재미가 최대의 화두인 이 시대에?

신영복 선생님이 말하셨듯, '깊어지지 않으면 쉬워질 수 없다'는 측면에 분명히 일리가 있지요.

논문과 실험의 학문세계가 아닌 이상, 머리로 하는 분석, 이론적인 우위성에 감복할 독자는 별로 없을 거에요.

재엽씨가 수다와 여흥으로 우리를 웃게하듯, 글로도 우리를 가지고 놀 수 있다면, 그건 대박이지요.

아직 젊고 게다가 무지무지하게 탐구열이 높으니까, 언젠가는 재엽씨의 스타일을 창조해내리라 믿어요. 벌써 접근가능한 글이 나오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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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06.12.27 08:42:18 *.244.218.8
코오~ 아쉽군요!!!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시니까~ 곧 신나는 무엇을 다시 시작하실 듯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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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6.12.27 15:31:16 *.72.157.137
Good try! You are a uniqu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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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6.12.27 16:08:01 *.102.140.7
승완오ㅃㅏ 요새 영어공부한대더니, 티내는구나.
이런데서 영어를 써먹다니, you're Good boy! ㅎㅎ

그나저나,
나도글 쓸땐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들어가는데
이것도 거만한건가??ㅡ.ㅡ

암튼 재엽님의 글이 말랑말랑해지니,
조회수가 장난아니게 오르고 있어. ㅎㅎ 재밌다.
이게 원래의 재엽님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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