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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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친 이후의 풍경은 상상하기도 싫다.
츠나미가 한바탕 지난 간 후의 폐허된 마을 풍경. 울부짖는 사람들과 부서진 가옥들. 그 자리에는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만 같은 허망함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복구 이후에 언제 또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이다. 이렇게 복구하면 뭘해, 또 쓸어져 버릴걸.. 이라는 비관적인 자세가 가장 커다란 문제인 것이다.
어제 결과를 안 후에 친구가 우연히 회사에 왔길래 오랜만에 한 잔 했다. 그 친구의 사정도 사실은 마찬가지라 내가 나의 준비를 그에게 시시콜콜히 다 이야기 하지 않았다. 친구는 유럽에서 박사까지 받고 왔지만, 우리나라 강단의 문턱이 너무도 높아 하루가 멀다하고 마음은 피폐해진채, 이 학교 저학교, 발품을 팔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의 상황을 더 잘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한마디 툭- 던지며 하는 말이,
"그래도 넌 그것을 준비하는동안 '목표'라는게 있었잖아."
그렇다. 솔직히 결과를 안 지금은 허탈하지만, 쓰는 동안 만큼은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 같다. 혼자 있어도 온통 원고마감 생각뿐이었음으로 외롭지 않았다. 화면 위로 쏟아져 내리는 무지막지한 이미지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나는 등단이라는 결과물 보다는 결과물을 얻어내려는 그 과정을 더 즐겼던 것도 같다.
한 잔 두 잔 오고 가는 술잔속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이 붉어짐을 감지했고, 한탄과 뒷담화(?)를 하느라 혀도 말랑말랑하게 꼬여갔다.
"그래. 이번 당선작 결과 나온것 봐서 수준 이하기만 해봐- 내가 그냥 부서버릴꺼여~"
"그래. 이번에 임용되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지만, 나보다 연구실적이 나쁘기만 해봐. 부서버릴꺼여~"
그러면서 한탄하고 푸념하는 중에 서로가 처한 현실이 웃기기도 하고, 한심하기도해서 꺄르르 웃다가도 다시 서글퍼 지기도 하는 참으로 웃지못할 자리였다.
내가 한가지 두려운 것은 나에게 더 이상의 기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에 관한 문제이다.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볼때, 이번과 같이 내 자신을 다 던져가며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츠나미 이후의 마을을 생각해 본다. 그럼, 이 상황에서 복구의 기회도 마련하지 못하고 그냥 마을을 떠날 것인가. 한편으로는 구호도 요청해야 하고, 도움도 청해야 하고, 그리고 내 힘으로 직접 고쳐나가면서 다음의 기회를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눈물을 참고, 또 참으면서 이를 악물고 또 악물면서 떠날 때 떠나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희망이 있었으니 행복했다, 라고 말하면서 툭툭-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서로 붉어진 얼굴에 맥주냄새가 나풀거리는 바람 사이로 그 친구와 헤어지며 서로의 승리를 기원했다. 그리고 누구랄것도 없이 먼저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무 스토리가 앞으로만 나가면 재미없잖아-. 나름 스릴도 있고, 하강도 있어야 클라이막스가 있는거 아니겠어?"
IP *.217.95.214
츠나미가 한바탕 지난 간 후의 폐허된 마을 풍경. 울부짖는 사람들과 부서진 가옥들. 그 자리에는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만 같은 허망함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복구 이후에 언제 또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이다. 이렇게 복구하면 뭘해, 또 쓸어져 버릴걸.. 이라는 비관적인 자세가 가장 커다란 문제인 것이다.
어제 결과를 안 후에 친구가 우연히 회사에 왔길래 오랜만에 한 잔 했다. 그 친구의 사정도 사실은 마찬가지라 내가 나의 준비를 그에게 시시콜콜히 다 이야기 하지 않았다. 친구는 유럽에서 박사까지 받고 왔지만, 우리나라 강단의 문턱이 너무도 높아 하루가 멀다하고 마음은 피폐해진채, 이 학교 저학교, 발품을 팔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의 상황을 더 잘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한마디 툭- 던지며 하는 말이,
"그래도 넌 그것을 준비하는동안 '목표'라는게 있었잖아."
그렇다. 솔직히 결과를 안 지금은 허탈하지만, 쓰는 동안 만큼은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 같다. 혼자 있어도 온통 원고마감 생각뿐이었음으로 외롭지 않았다. 화면 위로 쏟아져 내리는 무지막지한 이미지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나는 등단이라는 결과물 보다는 결과물을 얻어내려는 그 과정을 더 즐겼던 것도 같다.
한 잔 두 잔 오고 가는 술잔속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이 붉어짐을 감지했고, 한탄과 뒷담화(?)를 하느라 혀도 말랑말랑하게 꼬여갔다.
"그래. 이번 당선작 결과 나온것 봐서 수준 이하기만 해봐- 내가 그냥 부서버릴꺼여~"
"그래. 이번에 임용되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지만, 나보다 연구실적이 나쁘기만 해봐. 부서버릴꺼여~"
그러면서 한탄하고 푸념하는 중에 서로가 처한 현실이 웃기기도 하고, 한심하기도해서 꺄르르 웃다가도 다시 서글퍼 지기도 하는 참으로 웃지못할 자리였다.
내가 한가지 두려운 것은 나에게 더 이상의 기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에 관한 문제이다.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볼때, 이번과 같이 내 자신을 다 던져가며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츠나미 이후의 마을을 생각해 본다. 그럼, 이 상황에서 복구의 기회도 마련하지 못하고 그냥 마을을 떠날 것인가. 한편으로는 구호도 요청해야 하고, 도움도 청해야 하고, 그리고 내 힘으로 직접 고쳐나가면서 다음의 기회를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눈물을 참고, 또 참으면서 이를 악물고 또 악물면서 떠날 때 떠나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희망이 있었으니 행복했다, 라고 말하면서 툭툭-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서로 붉어진 얼굴에 맥주냄새가 나풀거리는 바람 사이로 그 친구와 헤어지며 서로의 승리를 기원했다. 그리고 누구랄것도 없이 먼저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무 스토리가 앞으로만 나가면 재미없잖아-. 나름 스릴도 있고, 하강도 있어야 클라이막스가 있는거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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