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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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31일
12월 31일에 생각나는 일은 이렇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학원강사 생활을 전전하는 나를 보며 한심해 하시던 아버지. 교직도 이수하지 않았고... 공무원 시험을 치라고 해도 말도 안 듣고 ..
뒷바라지를 계속 해 주실 수 있는 형편은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강사생활을 치우고 수능시험을 다시 보아서 약대를 가라고 하셨다.
그것까지 안 한다고 하는 딸래미. 고3시절 대입원서 쓰는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긴장이 몇 달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신입공고를 보았다.
극작과에 지망을 하리라.
호흡을 아주 깊게 가다듬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앞에 신문에 난 공고를 보여드리며 말을 꺼냈다. 아버지는 “붙으면 가거라”고 하셨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그 전해에 처음 음악원이 생겼고 그 해에 연극원이 생겼다. 모든 것이 막 시작되는 시기였다. 연극에 대해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마음만 약간 가지고 시험을 보러 갔다.
배우 장동건이 그 해에 연극원 연기과에 시험을 쳤다고 했다.
다행히 1차 시험에 합격을 했다.
2차는 면접시험이었다. 겨울이었다. 면접을 보러 가는 날 지독한 감기 몸살에 부산서 첫 기차를 타고( KTX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겨우 시간에 맞추어 도착을 했다.
워낙에 유명한 분들이라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던 희곡작가선생님들이 면접관으로 앉아계셨다. 기억나는 질문은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다. 아니 그 질문밖에 안 하셨나... 모르겠다. 내 대답은 참 요령도 없는 것이었다. 재능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재능은 있는 이들이 열정이 없는 것을 보았다. 재능은 없으나 열정은 있다... 뭐 그런 대답이었다.
떨어졌다.
그 합격자 발표가 바로 12월 31일이었다.
나름대로 크게 낙담하였다.
면접시험을 보러 기차를 타러 가는 새벽, 아버지는 내가 입고 나서는 옷이 맘에 안 든다고 하셨다. 나는 그래도 이게 젤 따뜻하다고 입고 갔다.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그러게 왜 그 옷을 입고 갔냐고 그럴줄 알았다고 하셨다.
낙심하고 있는 딸에게 위로는 못해주나 ... 하고 속상해했고 친구집에 가서 잤다.
그때 일이 가끔 생각난다. 12월 31일에.
그래 맞다. 나는 재능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은 열정도 없었다.
영화... 드라마 .. 영상매체에 대한 우리세대의 열정의 분위기와 흐름에 그저 따라다닌 것 뿐이었다. 그 후로 얼마동안 시나리오와 드라마 쓰기를 기웃거리긴 했지만 나는 그곳에 어떤 내 열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컴퓨터가 고장나서 몇주동안 사용하지 못했다.
아주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간간히 노트에 쓰기도 하고 메모도 했다.
글쓰기에 대한 재능이 있거나 없거나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업작가들이 아주 부러웠던 적은 많았지만 그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아주 고마운 일이다.
작가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글쓰기를 그만 두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 것도 참 기쁜 일이다.
대학 입학 원서를 쓰던 고3 때 다들 내가 국문학과를 지원하지 않는 것을 의아해했던 때가 있었다. 그랬다. 글을 쓰려고 국문과를 가는 건 웃기는 일이다. 글을 쓰려면 역사를 알아야 하고... 세상을 알아야 하고... 웃겼다. 고3이었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사학과를 갔다.
20년이 지났다. 지금 다시 그때 생각이 난다.
여전히 나 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을 더욱 잘 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그 일을 글로 써야 겠다.
스물 몇 살 때 나는 글을 쓰려는 마음에 밤잠을 설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 글쓰기 때문에 설레여 잠을 깬다.
삶이 참 사랑스럽다
12월 31일 이 내일이다.
IP *.175.134.84
12월 31일에 생각나는 일은 이렇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학원강사 생활을 전전하는 나를 보며 한심해 하시던 아버지. 교직도 이수하지 않았고... 공무원 시험을 치라고 해도 말도 안 듣고 ..
뒷바라지를 계속 해 주실 수 있는 형편은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강사생활을 치우고 수능시험을 다시 보아서 약대를 가라고 하셨다.
그것까지 안 한다고 하는 딸래미. 고3시절 대입원서 쓰는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긴장이 몇 달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신입공고를 보았다.
극작과에 지망을 하리라.
호흡을 아주 깊게 가다듬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앞에 신문에 난 공고를 보여드리며 말을 꺼냈다. 아버지는 “붙으면 가거라”고 하셨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그 전해에 처음 음악원이 생겼고 그 해에 연극원이 생겼다. 모든 것이 막 시작되는 시기였다. 연극에 대해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마음만 약간 가지고 시험을 보러 갔다.
배우 장동건이 그 해에 연극원 연기과에 시험을 쳤다고 했다.
다행히 1차 시험에 합격을 했다.
2차는 면접시험이었다. 겨울이었다. 면접을 보러 가는 날 지독한 감기 몸살에 부산서 첫 기차를 타고( KTX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겨우 시간에 맞추어 도착을 했다.
워낙에 유명한 분들이라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던 희곡작가선생님들이 면접관으로 앉아계셨다. 기억나는 질문은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다. 아니 그 질문밖에 안 하셨나... 모르겠다. 내 대답은 참 요령도 없는 것이었다. 재능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재능은 있는 이들이 열정이 없는 것을 보았다. 재능은 없으나 열정은 있다... 뭐 그런 대답이었다.
떨어졌다.
그 합격자 발표가 바로 12월 31일이었다.
나름대로 크게 낙담하였다.
면접시험을 보러 기차를 타러 가는 새벽, 아버지는 내가 입고 나서는 옷이 맘에 안 든다고 하셨다. 나는 그래도 이게 젤 따뜻하다고 입고 갔다.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그러게 왜 그 옷을 입고 갔냐고 그럴줄 알았다고 하셨다.
낙심하고 있는 딸에게 위로는 못해주나 ... 하고 속상해했고 친구집에 가서 잤다.
그때 일이 가끔 생각난다. 12월 31일에.
그래 맞다. 나는 재능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은 열정도 없었다.
영화... 드라마 .. 영상매체에 대한 우리세대의 열정의 분위기와 흐름에 그저 따라다닌 것 뿐이었다. 그 후로 얼마동안 시나리오와 드라마 쓰기를 기웃거리긴 했지만 나는 그곳에 어떤 내 열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컴퓨터가 고장나서 몇주동안 사용하지 못했다.
아주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간간히 노트에 쓰기도 하고 메모도 했다.
글쓰기에 대한 재능이 있거나 없거나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업작가들이 아주 부러웠던 적은 많았지만 그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아주 고마운 일이다.
작가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글쓰기를 그만 두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 것도 참 기쁜 일이다.
대학 입학 원서를 쓰던 고3 때 다들 내가 국문학과를 지원하지 않는 것을 의아해했던 때가 있었다. 그랬다. 글을 쓰려고 국문과를 가는 건 웃기는 일이다. 글을 쓰려면 역사를 알아야 하고... 세상을 알아야 하고... 웃겼다. 고3이었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사학과를 갔다.
20년이 지났다. 지금 다시 그때 생각이 난다.
여전히 나 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을 더욱 잘 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그 일을 글로 써야 겠다.
스물 몇 살 때 나는 글을 쓰려는 마음에 밤잠을 설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 글쓰기 때문에 설레여 잠을 깬다.
삶이 참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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