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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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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12일 01시 12분 등록
그랬다. 삶이 너무나 답답할 때가 있었다.
펄펄 뛰겠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 헤매다가 보다못한 지인의 소개로 한의원에 갔었다. 의사는 처방보다 나를 먼저 안심시켰다. 그가 침을 몇 군데 놓자 기가 트인 것인지 통곡을 하며 침을 맞았었다. 의사는 내게 따스한 불빛을 비추며 "우세요, 실컷 우세요, 많이 울으라"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한참 후에 의사가 돌아와 말을 했다. 이토록 신경을 써서 화가 여기까지 뻗치면 이게 머리로 올라가 터지는 겁니다. 바로 직전까지 와 있습니다. 큰일 납니다. 의사는 혀를 껄껄 찼다. 몸의 여기 저기를 누르는 족족이 너무 아파서 자지러졌고 그럴 때마다 서러움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가슴은 바위덩어리가
짖누르듯 했으며 목구멍은 뜨거운 감자 그것 이었다. 화병 말기였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책을 읽지 말라고 했다. 책 속에 길이 있지 않다고 했다. 그냥 편하게 마음을 비우라고 했다. (아마 확인 하려 들지 말라는 뜻이었으리라.) 양심적인 고마운 분이셨다. 후에 감사했다는 말을 미쳐 전하지도 못했는데 그분은 얼마후 세상을 하직하셨다.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가 마흔에 이르러 다시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사가 되신분이었다. 그분의 인생도 고단했을까? 아들을 양의로 만들었음에도 당신은 정작 간암으로 졸지에 세상을 뜨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절에 나가신다. 어려서 우리를 유아세례까지 받아주셨지만 아버지를 따라 이리저리 정근 다니시며 세파에 찌들리며 새로이 친구를 사귀시면서 바뀌게 되신 것 같다. 서울에 오셔서는 어언 30여 년간 절에 가신다. 그저 우리 잘 되라고 절을 하시는 것 같다. 당신은 늘 열심한 신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리고 더러는 용한집을 찾아가 부적도 해다가 부치곤 하신다. 영천의 어딘가에 가면 할머니가 보시는 곳이 있는데 내가 알기에도 수십년간 단돈 1000원만 받고 부적을 해 주시거나 궁금증을 일러주신단다. 어머니는 그 할머니야말로 부처라고 하신다. 늘 나쁘다 좋다라는 말이 없이 묵묵히 듣고는 부적을 적어 주시고 그것을 해다가 부치면 대게의 경우 효과가 있다고 믿으신다.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흐르고 곁에서 할머니를 돕는 공양주라는 분들이 때로는 더 설쳐도 꿈쩍 안하시며 돈을 더 내도 반드시 돌려주신다고 한다. 어머니는 간혹 그 할머니가 돌아가실까봐 걱정을 하신다.

늘 자식걱정에 애가 끓는 어머니는 답답한 일이 있을 때 훌쩍 어딘가에 다녀오시곤 하는데 철학관이거나 용하다는 점장이를 찾아 다녀오실 때가 더러있다. 그래도 굿을 하거나 큰돈을 가져다가 바치거나 하시지는 않지만 그렇게 한소리를 들음으로서 위안이 되거나 위로를 삼으실 경우가 종종 있으시다. 어머니께서 확신하듯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실 때면 점괘에서 운수가 좋게 나온 것이고 체념한듯 말씀하시면 운세가 사납게 나온 것이다. 나도 눈치밥이 벌써 얼마인가? '척하면 앱니다'이다.

나도 어머니의 말씀을 흘깃흘깃 들어오며 세월을 보내왔다. 솔직하게 말하면 많이 속아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을 그렇게 쉽게 살 수 있다면 누가 발에 흙을 묻히고 살겠냐 답답하니 가는거지" 하시며 애써 탓을 하지 않으시고 무해무덕 또 하루가 가는 것에 내심 감사하는 눈치다.

털 갖은 짐승 가운데 사람처럼 간사한 것이 없다는 말을 가끔씩 들어봤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 보아도 참 인간이 이리 간사한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온통 제 편한 것만 찾는다. 더웠다가 추웠다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웃었다가 울었다가 요지경속이다.

어머니가 점을 치고 오시는 날엔 허구헛날 시집갈 수에 득남수가 많았다. 늘 강에 가지 말아야 했고 밤길을 조심해야 하며 낯선사람을 경계해야 했다. 때로는
있지도 않은 남정내가 생기기도하고, 사람도 없는데 반드시 결혼을 하며, 배지 않은 아이를 낳기도 하고, 경쟁이 센 시험에 붙기도 하며, 기껏해야 점심 한그릇 얻어 먹는데 운수대통에 천우신조의 운이 깃들기도 한다.

갑자기 궁금해 진다. 그렇게 들어온 말 중에 득이 된 것과 실이 된 것이 얼마나 될까? 좋다고 했다가 안 맞춰봐야 그럭저럭인것 같지만 나쁘다고 하면 미리부터 김빠진 맥주라니.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꼭 가능할 줄 믿었다가 그렇지 않아도 손해요, 미리부터 안 되리라 맥이 빠져버리면 열심할 수 없어 또 손해다. 그러니 말하는 이보다 듣는 이의 귀가 더 중요할 수 있겠다.

화병을 앓은 것도 어찌보면 기분문제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리 심한 고통까지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는 반드시 이것 이어야만 하는 법칙이 그리 많지 않다. 더군다나 인간관계에서는. 전후좌우 사정을 따져보면 또 그럴 법하지 않던가?

나는 간혹 걱정을 싸메고 산다. 공연히 걱정을 하며 좋지도 않은 머리로 주판알을 튕귀며 계산하기에 바쁘다. 새해에는 이런 공연한 걱정들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면 따로 복을 더 갖지 않아도 넉넉해 질 수 있으리라. 사실 결과라는 것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다 살아보기 전까지는. 다만 예측은 할 수 있다. 누구 말처럼 내공이 쌓이면 쌓인 만큼 또는 아는 만큼 이해하게 되듯이 그럴 것이다.

새해에는 원하는 결과를 두려워하기 보다 그리면서 사랑하면서 결과에 다다를 수 있도록 오늘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야 하겠다. 오늘 또 하루 새롭게.
깨달음은 닿은 곳까지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주저하고 망설임에서 찾아질 수 없다. 오히려 계속적인 번민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있을 뿐. 그래서 계획하고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만큼 반드시 쌓아갈 것이기에.
IP *.70.7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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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7.01.10 15:37:35 *.67.52.176
저도 공부하다가 시험에 계속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스트레스에 눌려 산적이 있습니다. 써니님 심정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저도 허리가 너무 아파서 저의 경우엔 앉을 수 도 없어서 누워서 지낸적도 있습니다.
한의원에 갔는 데 한의사 선생님도 윗글과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병이란게 몸이 아픈 건 둘째고 마음이 아픈게 병의 근본 원인인 것 같더라구요.
저도 한의사 선생님이 여기저기 누르시는 데 굉장히 아프더라구요..
지금도 각종시험 공부하시는 분들은 이런 경험을 하실거예요...
그제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녀석은 허리복대를 차고 공부하더라구요. 참 마음이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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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
2007.01.11 08:21:37 *.166.80.24
써니의 진솔한 이야기가 당신의 글을 읽는 모두를 아름답게 설득할 것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그건 다 벗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아름다운 맘은 가지고 있지만 그 맘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휘장을 치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직위나 재산이 많으면 더욱 두꺼운 커텐으로 자신을 가리고 삽니다. 마치 그런 행위가 타인의 눈에 자기가 우월하다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번도 벗어버림의 행복을 모르고 사는 불상한 중생들입니다.

써니 양!
버리니 후련하지요? 최소한 작가는 자신의 삶을 거짓이나 위선의 탈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야 번민과 짝사랑으로 부터의 탈출입니다. 그런 진솔속에서 살아가고 수행하면 마음과 더불어 얼굴도 이쁘집니다. 이를 진언미(眞彦美)라 합니다. 그 향기를 찾아 진솔한 왕자가 찾을 겁니다. 그것 또한 아릅답지 않습니까?

*자신을 찾고, 제삼의 눈을 뜨니 그댄 인생이 달라 질 것입니다.*

이를 주역에서
"有孚惠心 勿問 元吉 有孚 惠我德"
<자신을 찾은 믿음속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얻으니, 정말 정말 길하다. 당신의 믿음이 헤아덕(惠我德)이라는 저 높은 곳으로 인도하리다.>

- 자신을 찾은 써니의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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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2007.01.11 13:39:21 *.77.91.92
길지 않은 인생역정 중 선택의 기로에 서서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 또는 궁금함... 세월이 흘러 흘러 50이 넘으니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그 길을 갔었다면 이러저러 했을텐데가 아니고 결국 모든 길은 만나게 된다는 것... 그래서 후회란 잘못 된 선택에 대한 책임전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눈꽃 만발한 숲을 보며 그냥 가슴에 화~한 감동을 느낄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믿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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