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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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방법 중에 “설명하지 말고 묘사를 하라”는 것이 있다. 나는 내식대로 이 부분을 이해하고 있다. 보통 자신이 겪은 일을 사실적으로 나열한다. 그 다음에는 미주알고주알 설명한다. 설명하지 말고, 그 상황으로 손을 잡고 데리고 가라. 풍덩 빠져들게 하라. 아, 그랬겠구나 싶으면서 그림이 떠오르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글의 분량하고도 관계가 있다. 설명을 하다보면, 글을 길게 끌고갈 수가 없다. 읽는 사람에게는 일정부분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읽으며 동기부여를 받고, 감정이입이 되고, 다시 자기에게로 되쏘아보려면 어느 정도 분량이 필요하다. 전달하고 스며들 여지가 필요하다. 물론 감동을 이끌어내면 그 중 좋겠지.
묘사를 하기 위해서는 관찰력이 필요하다. 외부의 풍경과, 내 안의 마음짓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외부의 어떤 자극과 부딪쳐서 내 안에 어떤 파문이 이는지를 써 나가면 된다.
어제 천안에 가서 놀다왔다. 하는 일도 없이 집안에만 있다보니 심심했다. 그래서 사람구경을 하러 간 것이다. 천안에서 점심을 먹다가 이상한 경험을 했다. 글로 써야지 하던 차에 ‘설명과 묘사’에 대해 말 할 필요가 생겼다. 자연스레 두 가지가 연결이 되었다. 어제 점심 먹으면서 느낀 것을 설명과 묘사의 두 부분으로 써 보겠다. 내 글이 예시문이 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리얼하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고 싶어서이다.
설명;
딸과 함께 야우리백화점에 갔다. 점심을 먹으러 5층 음식코너로 갔다. 여기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우리는 바베큐정식을 먹었다. 맛이 하나도 없었다.
묘사;
춥다고 산책도 안하고 집에서만 뒹굴었더니, 드디어 참을 수 없을만큼 답답해졌다. 그래서 딸애와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다음 주에 서울에 갈 일이 있으므로, 오늘은 천안이다. 천안에 가야 백화점 나들이밖에 더 있나. 딸애 손지갑이나 하나 사 줘야지.
점심을 먹으러 5층 음식코너로 갔다. 메뉴판 앞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엉겨있다. 나들이의 맛은 먹거리 맛인 만큼 우리는 인파에 끼여 오랜 시간 메뉴를 골랐다. 나는 참 못말린다. 뱃속에서 편한 음식은 국밥이나 칼국수같은 전통음식인데, 입에서는 경양식만 좋단다. 그래서 오늘도 고른 음식은 ‘바베큐 정식’!
이름이 거창하지만, 돈까스와 비슷하다. 아마 돈까스는 튀긴 데 비해, 바비큐는 구운 것이 아닌가 싶다. 종류가 조금 달라서 내 것에는 스파게티가 곁들여있고, 딸 애 것에는 닭야채조림이 곁들여 있다. 점심 때가 지나 배가 고팠는데도, 음식이 조금 어정쩡했다. 한국 것도 아니고 서양 것도 아닌 정체불명의 맛, 그래서 퓨전인가. 음식을 먹으면서 기분좋게 포만감이 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왔다. 요즘 아이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약식으로 만들다보니 그렇게 되었나보다. 일반적인 경양식보다 좀 더 느글거리고, 좀 더 인공적인 맛이 났다.
구웠는지 튀겼는지 손바닥만한 돼지고기 토막하나에 스파게티, 양배추에 마요네즈를 얹은 것 약간에 오이피클이 몇 개, 감자튀김이 몇 개. 깍두기라도 있었으면 아니 단무지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을 것이다. 물론 깍두기를 달라고 했으면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깍두기가 필요할 것같지는 않다. 김치가 실종된 것이다.
그 실례로 우리 옆에 앉은 젊은 커플은 김치와 단무지를 전혀 먹지 않고 있었다. 해물칼국수로 보이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놀랍게도 그들은 김치에 손을 대지 않았다. 느글거리는 음식을 먹으며, 옆 좌석에 그대로 남아있는 김치를 곁눈질하며 나는 점점 기이한 심정으로 빠져들었다. 음식이 달라지고, 식성이 달라지고, 인간이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겁고 칼칼한 육개장이나, 정갈한 나물의 자리를 정체불명, 국적불명의 조합이 대체하고 있다. 김치없이는 못 산다는 사람도 점점 희귀종이 되어 가고 있다.
내친 김에 물을 마시면서 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나야 시간이 넘쳐나는 백수 아닌가. ^^
넓고도 긴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모두 그런 음식을 먹고 있었다. 퓨전양식은 물론 잡채밥이나 철판볶음밥까지도 내가 알고있는 음식과 달라보였다. 반쯤은 플라스틱 같았다면 내 기분이 전달될까. 푹 익혀지고 고아져서 고소한 맛이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슬쩍 덜 익은 재료들이 곤두선 밥알과 섞여있는듯한 모습, 따로따로 간식으로 먹어야 할 것들을 한 접시에 모아놓은 기묘한 조합.
음식을 정성껏 아이 입에 넣어주는 엄마를 보았다. 저 아이는 그 음식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클 것 아닌가. 나이지긋한 어른들도 다들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만 다른 행성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막막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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