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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19일 14시 12분 등록
새로운 부임지를 맞으면서-34

오늘 드디어 새로운 출발이 시작됐습니다. 바로 부장이란 이름으로 하루를 시작한 것입니다. 지난날 회사 MVP로 특별승진의 영예를 안았지만 발령이 보류된 채 7개월 동안 대기 중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풀려 중간관리자로서 신년 초를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승진하여 맞은 새로운 부임지는 제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 곳은 직장생활 20 여 년 동안 한 번도 근무한 적이 없고, 연고나 고향과도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승진이라는 기쁨보다는 앞으로의 일이 걱정됩니다.

지난날 한 여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지만 그녀는 우리만의 조촐한 보금자리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를 모셔야 되는 필연적인 상황이 늘 저를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매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생활을 가지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결혼생활 대부분을 부모님과 함께 했기에 남 같은 달콤한 신혼생활이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잡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혼 초기 우리 가정은 할머님, 부모님 그리고 3명의 제 여동생으로 인해 아내와 어른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 그리고 여동생과의 의견충돌이 행복을 주기에 많은 장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녀린 아내는 이를 헤쳐 나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세월은 흘러 행복이 조금씩 가정을 에워쌀 때 어른 한 분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이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이 장성하여 멋진 세상을 보겠다던 바람을 뒤로 한 채 불치의 병으로 그만 감기 어려운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한 명 한 명 여동생들도 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하나 둘 생기는 동안 그녀들도 하나하나 반쪽을 얻어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백수(白壽)를 누리며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했던 할머님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할머님을 모시는 일은 아내에게 힘든 일이었지만 이를 잘도 헤쳐 왔습니다.

이제 아내는 저와 두 아이 그리고 아버님을 모시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0년이 넘는 결혼 생활동안 항상 3세대 내지 4세대가 같이했음에도 화목으로 뭉치며 행복을 가꿨습니다. 부모를 모시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생활에 도움을 적지 않게 주었음에도 모시는 일은 아내에게 벅찬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가정을 이룬데 아내가 일등공신이었다고 추켜세웁니다.

이런 생활은 서로를 가깝게 해주었습니다. 결혼 초 사랑으로 뜨겁게 만나지는 못했지만 깊어진 정은 우리를 끈으로 단단히 묶게 해주었습니다. 시간의 누적이 서로가 보탬이 되는 사람임을 알게 만들었습니다. 상호 지탱해줄 나무가 되었음을 절실히 느낄 쯤 우리에게 하나의 시련이 닥친 것입니다.

바로 오늘 나타난 새로운 부임지가 그것입니다. 새로운 부임지는 멀기도 먼 전남 광주였습니다. 조금 더 가족과 가까이하려는 노력도 냉혹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승진은 기쁜 일이나 조직은 초임자를 멀리 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같은 풍토가 가정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현상이라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앞으로 아버님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처음 겪는 이별이라 마음의 허전함과 공허감이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편으로 또 다른 세계와 조우하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또 다른 업무와의 부딪힘이 저를 기다리지만 이들을 아우르는 것은 그리 대단치 않습니다.

정말 아쉬운 것은 헤어짐으로 인해 아내가 힘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집안을 지키지 못해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하지만 조속한 시일 내에 가족과 편안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합쳐지는 날만 기다리겠습니다. 지난날 선현들은 어렵고 힘들 때 시나 시조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저도 이 시조를 읊조리며 ‘새로운 부임지를 맞으면서’를 닫을까 합니다.

이 몸은 간다간다 저 멀리 타향으로
정든 곳 등지노니 애간장 녹는다만
임 향한 마음으로 멍든 가슴 쓸어내네
IP *.57.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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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7.01.19 14:36:48 *.248.117.3
구구절절 안타깝고 애끓는 심정이 녹아 있네요.
저도 예전에 지방에서 2년간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참 힘들더군요.
무엇보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모님에게 각별한 마음 잘 전해주십시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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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1.19 19:51:11 *.145.231.168
저도 신혼 초 40여일을 직장때문에 따로 떨어져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장소도 광주였지요.
한 겨울을 나면서 다시는 떨어져 살지 않겠다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
요즘은 가끔 떨어져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좋은 날 오겠지요.
새로운 출발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다들 광주로 함 놀러가야겠네요.
여유 나시면 불러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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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01.19 20:10:25 *.6.26.122
명수님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겼군요.
언제 광주로 부임하게 되나요?
성실할뿐만 아니라 은근히 지독한 ^^ 명수님은 , 어떤 상황도 긍정적인 자기계발의 기회로 활용할 것같습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요.
연구원 2년차의 과제는 물론 어학공부까지,
느끈히 해내시리라 믿습니다.

사모님 부담이 늘어나고, 사모님께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도
심지어 잠시 떨어져 지내보는 것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두 분 사이를 더 애틋하게 만들수도 있겠지요.

크고작은 문제가 없지 않겠지만,
잘 해 내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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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간디™오성민
2007.01.20 10:49:19 *.200.97.235
도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회를 만드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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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1.21 22:17:14 *.70.72.121
영전을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생각이납니다. 공직에 계셨고 아름다운 정년퇴직에 이르실 때까지 소신을 다해 당신 임무를 성실하게 완수해내셨습니다. 잦은 정근에 저힌 아버지와 함께 살 때에도 아버지는 바람결에 잠시 스치는 봄향기처럼 짧게 바쁘게 사시는 것에 항상 익숙할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딸인 제게 아버지 같은 짝을 만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저힌 아버지가 집에 안 계셔도 항상 당당하고 즐거웠습니다. 아버지가 당신 임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임하셨기에 저희 가족 모두 그러했습니다. 한편 어머니는 더욱 강해지셨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언젠가 홀로 남을 때도 생각해 볼 수 있고, 몸 떨어진 것이 마음마저 멀어지게 하지 않음을 여러 방법으로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오직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만이 관건 아니겠는지요?

가족이 더 화목해 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혼자서 지키고 보호막이 되시느라 애쓰신 점 더 많으셨겠지만 자연스레 동생분들께 피치못한 상황에 대해 협조를 구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올캐의 노고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들이기에 오빠를 생각해서라도 예전보다 더욱 사랑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주 오시기보다 먼저 가족들도 초청해서 타지에서 만나시게 되면 더욱 새로운 정이 피어날 수도 있습니다. 새롭고 낯설은 그러나 그곳 역시 사람 사는 곳 아니겠는지요.

많은 사람들이 미처 닿아보지 못한 곳, 어려운 승진을 값지게, 외로움과 적적함을 수고와 능력으로 보여주실 것에 대한 기대로 벌써부터 남도기행에서 올라오게 될 도샘의 글이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홀로서기? 한번 해보시지요. 가족 염려만큼 열심히 열심히!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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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7.01.22 14:40:30 *.102.138.196
도선생님은 어딜가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잘해내실거에요..
늘 아내를 생각하는 도선생님의 마음이 참 아름다워요~^^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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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자
2007.01.25 12:03:42 *.84.23.224
결혼 20년차의 이별.. 아마 신혼의 애틋함이 되살아 올 겁니다.
더 사랑하는 부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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