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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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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0일 12시 25분 등록

어제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녀왔다.
리키 드 생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일요일까지 전시를 하기 때문에 서둘렀다. 같이 가기로한 사람이 약속이 생기고해서 하루 앞당겨서 갔다. 금요일은 토요일보다 사람들이 많지않아 붐비지 않을 것이므로 맘껏 그림을 즐기며 휴식하고 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림은, 조각은 나를 쉬게 하지 않았다.

작가가 작품을 제작한 순으로 방을 나누어서 전시를 했는데, 첫번째 방은 무서운 방이었다. 맘에 드는 작품은 가까이서 보고 만지고 싶어지는 데, 리키의 작품은 그렇지가 않았다. 만지면 다칠 것 같다. 괴물들이다. 화면에 가득 붙은 철조각, 깨진 그릇, 모형 배, 작은 총, 부서진 사람들, 아기 인형, 그것도 몸통과 팔다리가 분리된 것들이다. 구부러지고 녹슨 철사들. 백색의 석회(석고)를 발라서 온통 백면에 붙여버리고는 그 위에 검은 물감을 흩 뿌려서 마치 어두움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와 세상을 덮게 하는 듯한 모양이었다. 한마디로 괴물들이었다. 그 괴물들은 만지고 싶지 않았다. 무서웠다. 다칠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나는 리키를 안아주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보는 리키는 위로받아야 했다. 리키는 분노하고 있고, 그리고 마음이 아프다.
그림을 보는 동안 나는 리키에게 질문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하나의 작품을 하고 나면 잠을 이룰 수 있어? 마음이 편해져?

두번째 방에서 만난 리키의 작품은 좀전보다 화사하다. '나나'라는 애칭을 가진 여성이다. 몸집이 비대하다. 팔다리가 굵고 엉덩이가 큰 흑인 여성이다. 나나의 의상은 가우디의 작품 '도마뱀'과 닮았다. 의상에는 원색으로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그거도 혼란을 품고 있다. 나나 외의 다른 작품에선 치맛단의 땡땡이무늬나 하트무늬처럼 해골들이 무늬로 들어가 있다. 기둥들은 옹이가 많은 나무를 닮았다. 옹이는 마음의 상처를 나태낸다는 미술 치료사의 말을 빌린다면 그녀의 상처는 깊고 많다. 그녀의 작품에는 상처받은 여성, 악마와 힘과 분노가 닮겨 있다. 니키가 여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작품을 봤다고 해도, 작품에서는 작가가 여성임이 드러난다. 그만큼 강렬하다. 초기의 괴물보다는 순해져 있지만 역시 괴물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리키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작가의 연대를 보았다.
1930년대 출생해서 1950년초에 결혼했다. 아버지는 은행원이었고, 어렸을적 집이 망해서 10년정도 외가에 보내져서 자랐다. 종교학교인 수녀원 비슷한 데서 특이행동으로 퇴학당했다. 젊었을 때 모델일을 잠깐했다. 그림은 정신병원 치료를 통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작가 소개 글 중에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났고, 그것이 나와 아버지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사랑이었던 모든 것이 증오로 변했다. 나는 살해당했다고 느겼다.' 대체 무슨 일인지 찾아보았다. 11살에 아버지에게 당한 성폭행 경험이 그녀의 상처였다.

그녀는 그것을 풀어내는 데 20년이 걸렸다. 거친, 파괴성이 순화되어 후기 작품에는 공격성이 밑으로 가라앉아있다.

잔인하다. 그렇게 오랜시간이 걸려야 하다니...
니키의 삶이 너무 아파서, 그녀를 보고 있는 나도 아프다. 그리고 화가 난다.

자신을 나타내는 작품이 되어버린 그녀가 가진 칼을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경험은 양날검과 같다. 니키의 것은 크고 무거운 칼이다. 들기에도 버거운 칼이다. 결코 원해서 가진 것이 아닌... 니키의 양날검은 자신을 해치는 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자신을 나타내는 칼이 되었다. 그녀는 그 칼을 갖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럴까? 그녀는 그 칼을 자신과 세계의 파괴가 아닌 일에 쓸 수 있을까? 그렇다. 이미 그러하다.

니키의 작품은 나를 혼란 속으로 끌고 들어가서는 내팽개쳐 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내 몫이다.

니키를 만나면서 다시 나를 만났다. 니키의 분노 속에서 같이 세상에 화내고, 부수었다.
이제는 니키 속에서 나 자신을 보고 화내는 것은 그만하고, 그녀처럼 화해하자.
원하건 원하지 않았건 이미 나와는 뗄 수 없는 것들이라면 그것의 올바른 사용법을 익히자. 화내고, 욕하고, 부수고 하는 것들, 할만큼 했으면 이제 일어서서 그속에서 걸어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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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고, 그 느낌을 말하고 싶어서, 미술관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니키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내 이야기를 했다.
20년이 걸쳐서 풀어낸 니키를 보고는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잔인한 거라면 일찍 풀어버리고 싶다고. 자신에게 무거우면 풀어라고 말하며, 친구는 한마디 더 붙였다. 풀어야 한다는 것이 족쇄가 되질 않길 바란다고.

어둡고, 외롭고, 쓸쓸한 그림들, 무서운 작품들을 많이 보아 오면서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늘 외쳤었다. 그림을 원하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는 변명거리로 삼아왔다. 그러나 니키로 부터 위로 받으면서 그래도 그리는 것이 더 낫다라고 느꼈다.
니키는 영화<서편제>의 송화와 닮았다. 아버지 유봉이 심은 한과 화해하고 살아가는 송화. 누구나 다 그런거 한두가지쯤은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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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위:숫팅기법(물감을 쏘아서 칠하는)으로 작품(감브리누스의 기이한 죽음)을 하고 있는 리키.
아래:니키의 작품 'the Devil'
IP *.72.153.164

프로필 이미지
초아
2007.01.20 16:04:35 *.167.24.19
어느 철학자가 세상에 모든 이는 작든 크든 모두 정신병을 앓고 있다 하였다. 사실 일까, 하는 의문 속에 살다가 정화양의 사진과 글을 보고 세로운 세계가 나의 눈앞에 펼쳐짐을 보았다. 새로운 발견은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모양이다. 그건 아름다운 것일까? 아님 흉폭한 것일까? 작가는 신세상을 인도하고는 스스로 삶을 펴쳐보라는 듯 아무대답이 없다. 일생 공허속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살다간 모양이다.

"臀无膚 其行次且 여 无大咎"
<맘과 몸이 모두 가난하여 나아감도 없고 멈출수도 없다. 그런중에도 순수함을 읽지 않으니 어려워도 흠이 없으리다.>

리키는 일생 과거에 사로 잡혀서 괴로운 세상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자신을 예술로 승화 시킨 작품인것 같다.

정화양!
괴로움을 보고 더 큰 웅지를 찾으라는 것이 리키가 보내는 메세지라 생각한다. 이를 보고 염세, 허무가 생기면 리키를 실망시키는 일일 것이다.

"賁如 파如 白馬翰如 匪寇 婚구"
<힌머리 휘날리며 백마를 탄 멋진 님이 그댈 맞이하리다.>
행복한 시절이 꼭 올것을 기대하면서 평화롭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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