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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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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2일 22시 49분 등록


연구원 미팅을 전후해서 일주일 정도 서울에서 놀고 있다. 교보문고와 청계천, 파주 헤이리를 거쳐 내일은 아들 애가 추천하는 페이퍼테이너에 가려고 한다. 구의동 어린이 대공원앞에 묵고 있어 공원으로 몇 번 산책을 가게 되었다.


근 이십 년 만에 온 것같다. 놀이기구와 팔각정에 아련한 기억이 피어오른다. 구세대 놀이공원이라 그런가 입장료가 없어 산책하는 동네사람들이 많다. 대지가 넓고 건물배치가 야박스럽지 않아 아주 보기좋다. 눈썰매장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고, 과자달라고 소리질러대는 원숭이의 괴성이 귀를 찢는다. 입장료가 없을 뿐아니라, 그악스러운 상업주의가 끼어들지 않은 평화로운 공간이다.

이만한 산책코스가 있는 동네가 흔하겠는가. 부럽고 뿌듯한 마음으로 걷는다. 갈대숲에서 아이의 사진을 찍는 젊은 부모들, 완전무장하고 빠른 걸음으로 산책하는 노인들, 왁자하게 날아가는 새떼 소리... 오랜만에 느껴보는 충만함 속에서 걷는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이렇게 무진장한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상상의 나래에 빠져들었다. 딱 이 정도의 인프라가 구축된 공간을 노인문제와 연결하는 상상이다. 대중적인 시니어타운과 놀이공원을 연결시키면 막강한 시너지효과가 있을 수 있겠다. 발상의 전환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아파트 형식의 주거공간 서 너채를 지어 고령층을 입주시킨다. 65세에서 75세 정도의 노동능력이 있는 연령 대상이다. 개인공간은 간단하고 검소하다. 체력단련실과 찜질방, 도서관, 보건소같은 공동공간이 있다.


이 곳의 특징은 입주자들이 하루 서너시간의 노동을 통해 관리비를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입주자들은 놀이공간에서 필요한 노동력의 상당부분을 담당한다. 매점과 식당, 청소와 경비는 물론 텃밭에서 간단한 농사를 지어 구내식당에서 소비한다. 정기적으로 입주자의 가족들이 찾아오게 되므로, 놀이공원의 사업은 점점 활성화된다. 일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젊은이와 어린이를 접할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입주자들은 노동을 통해 자긍심을 되찾고, 같은 세대끼리 동질의 문화를 향유하며 행복하다.


가족들도 한결 부담이 덜하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더 이상 부모의 돌봄이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여전히 자식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있었다. 아직도 서너살 짜리 아이들인 양 모든 것을 챙겨주시고, 걱정하신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부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말이 많아졌다. 한 말을 또 하고 또 한다. 간단한 일에 대해 물어보기라도 할라치면, 앞뒤로 장광설이 길어서 말을 시키기가 겁난다. 부모를 존중하고 효도하고 싶지만, 말상대를 해 드리고 같이 놀아드리기가 어려워진다. 부모가 줄 수 있는 정보는 이제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가끔은 짜증도 난다. 분명히 나쁜 의도는 없는데, 화제가 없어진다. 우두커니 정물이 되어가는 부모가 안쓰럽지만, 별다른 노력을 할 도리가 없다. 무심한 침묵이 흐른다. 그렇게 고령층은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이제 커다란 부담없이 공동주택에 입주한 부모는 할 일이 생겨서 활기를 되찾았다. 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소통의 욕구를 채운다. 한 달에 한 번 찾아뵙는 자리에 다시 웃음소리가 찾아왔다. 때로 자식보다 동년배의 커뮤니티가 낫다. 더욱이 수명연장의 시대에는 자식에게서 부양받기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은퇴 이후의 시기가 30년 이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고령사회에서는 복지의 수준이 더욱 중요해진다. 복지가 잘 된 지역을 찾아 인구가 이동하는 복지유민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요즘 각 지자체에서 실버컴플렉스를 개발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중요하다.


산책 중의 느닷없는 환상을 실현시킬 방법이 없는 처지이지만, 물만난 고기처럼 갑자기 피의 흐름이 빨라진다. 상상만으로 행복하다. 투명인간이 되어 서서히 죽어가는 노인들의 삶에 존엄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 그러고보니 나의 측은지심은 타고난 것인가보다. 이제 방향이 정해졌으니,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이리라. 세계제일의 고령사회인 일본에 가서 1-2년 정도 공부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 째 책이 팔리든지, 학원 건물이 팔리든지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상상은 이내 다른 쪽으로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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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1.23 13:46:01 *.218.201.204
간절히 원하기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진실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꼭 맞는 기회가 나타나는 것은 사실인것 같아요. 그게 참 신기하죠?

얼마전에 '신과 나눈 이야기'를 읽었는데
거기 참 와닿는 구절이 있었어요.
구함(want)의 기도와 감사의 기도.. 세상엔 적어도 두 가지의 기도가 존재하는데, 구함의 기도를 하지 말라더군요.
구함은 곧 신의 존재와 능력을 믿지 않는것이죠.
구한다(want)는 것은 부족하다(wanting)를 인정해버리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러므로 진실로 구하지 말라. 감사하라."는 구절이 참 와 닿았어요

우리가 우리 앞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영상에 대해 '미리' 감사할때,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믿어요. 그것이 우리가 10대 풍광을 기억해 내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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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7.01.23 22:27:57 *.6.26.122
나는 종교가 없지만, 정말 간절하면 기도하는 마음이 되는 것은 알고 있지요. 아직 '미리' 감사할 정도로 순수하지는 못하지만^^
내게 남아있는 최소의 알갱이를 빛이 나도록
닦아볼 생각은 있지요.
그나저나, 옹박 굉장히 성숙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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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1.23 22:55:43 *.178.233.6
옹박, 날개 달았어. 뒤돌아 보지 말고 당분간 계속 뛰어.
미탄 누님은 자주 좀 봤으면 좋겠네.
난 당분간 쉬고 싶은데 마리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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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간디™오성민
2007.01.26 16:02:32 *.200.97.235
한선생님 제주도에 시니어 타운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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