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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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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5일 00시 38분 등록
1.

나의 견해로 전술적 사고를 전달하는 것은 마치 주역의 괘를 해석하는 법을 전달하는 것과 같다. 거기에는 정답이 없으며 해답을 찾는 개인의 태도만이 존재한다. 선수가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판단과 선택을 결정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선수나 지도자들에게 난이도 높은 전술을 전함에 있어 사고와 판단의 중요성과 함께 항상 가치라는 것을 부여하게 됐다. 대부분은 펜싱과 전혀 관계가 없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전술적 사고를 전달했는데 그것은 전술을 이해시키고 자기만의 이해와 수용을 가져 올 뿐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개인적 수양에도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나의 방법이 옳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후일에도 선수들이 이야기들이 주는 교훈을 잊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2.

서머셋 모옴의 개미와 배짱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는 라퐁텐느의 우화를 몇 개 암기하도록 강요받았는데, 그 각각의 교훈은 나에게 주의 깊게 설명되어졌다. 그렇게 배운 우화 가운데 '개미와 베짱이'라는 게 있었다. 그 이야기는 불완전한 세상에서는 근면하면 보상을 받지만 게으르면 벌을 받는다는 유익한 교훈을 아이들에게 심어 주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누구든지 비록 정확하지는 못하나마 알고 있다고 예의상 이야기한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이 감탄할 만한 우화란 이러한 내용이다. 개미가 여름동안 부지런히 일하여 겨울 먹이를 저장하고 있는 데 반하여, 베짱이란 놈은 풀잎 위에 앉아서 태양을 향하여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겨울이 오자, 개미는 안락하게 지내고 있었건만 베짱이의 곳간은 텅 비어있었다: 베짱이는 개미에게 가서 먹을 것을 좀 달라고 간청했다 : 그때 개미는 베짱이에게 전형적인 대답을 한다
"자넨 여름 동안 뭘 하고 있었나?"
"자네 앞에서 이런 얘기하긴 힘들지만, 난 노래를 불렀네. 난 매일
밤낮으로 노래 만 하고 있었다네."
"맞아, 노래를 불렀었지. 그럼, 가서 춤이나 추렴"

언젠가 한 레스토랑에서 조지 람제이씨가 혼자서 점심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우화를 생각해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사람만큼 정말 우울한 표정을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물끄러미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의 짐을 자기 혼자 도맡아 걸머지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가 가엾어졌다.:또 저 불운한 사람의 동생이 또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고 대뜸 생각했다. 나는 조지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물었다.
"전 기분이 유쾌하지 않아요." 하고 그는 대답했다.
'"또 톰이 문제인가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 또 그 녀석 때문입니다."
'"왜 그를 포기하지 않으세요? 당신은 지금까지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 오셨잖아요. 그는 정말 희망이 없다는 걸 이젠
당신도 깨달으셔야죠."

어느 가정이든 간에 하나씩은 골칫덩어리가 있는 법이다. 톰은 20년 동안 이 가족에게 큰 걱정거리였지만 처음에는 제법 남부럽지 않게 출발했던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두었었다. 람제이 가는 매우 훌륭한 가문이었으므로, 톰 람제이가 장차 쓸모 있는 훌륭한 인물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톰은 일이 싫어지고, 자기는 결혼 생활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선언해 버렸다. 자기 자신의 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떠한 충고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를 버리고 직장도 뛰쳐나왔다. 돈이 조금 있어서 2년쯤은 유럽의 몇몇 수도에서 즐거운 세월을 보냈다. 때때로 그의 행적에 관한 소문이 일가친척의 귀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는 정말 호화판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친척들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돈을 다 썼을 때에는 도대체 어찌될 것인가 하고 걱정하곤 했다. 이윽고 그들은 알게 되고 말았다. : 톰이 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파렴치했지만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만큼 돈을 꾸어 달라는 것을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을 결코 만난 적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친구들로부터 수입을 만들었는데, 그런 친구들이 쉽게 생겨났던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필요에 쫓기어 쓰는 돈 따위는 재미없다고 그는 항상 말하는 것이었다.; 써서 신바람이 나는 것은 사치스런 것에 쓴 돈이라고 하였다. 이것 때문에 그는 형인 조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지는 진지한 사람이어서 그런 유혹에는 무감각했던 것이다. 조지는 근엄한 인간이었다. 한두 번 톰이 생활 태도를 고친다는 약속에 넘어가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라면 하고 상당한 금액을 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돈을 가지고 톰은 자동차라든가 멋들어진 보석을 사 버리고 했다. 동생이 정신을 차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주위의 사정으로 알아채고, 조지 람제이 씨는 동생인 톰과 손을 딱 끊고 말았다. 그랬더니 뻔뻔스럽게도 톰은 형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존경을 받을 만한 법률가인 조지로서는 자기 단골 레스토랑 카운터 뒤에서 자기 아우가 칵테일을 만들고 있거나, 자기가 다니는 클럽 밖에서 택시 운전대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거나 하는 꼴을 본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톰은 술집에서 일하는 것이라든지 택시를 운전하는 것은 전혀 몹쓸 직업은 아니지만 만약 형이 2백 파운드의 돈만 준다면 가문의 명예를 위하여 그 따위 직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지는 돈을 내주었다.

20년 동안 톰은 경마며 도박을 했고, 제일 멋진 여자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춤을 추거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옷치장만 하면서 지냈다. 언제 보아도 옷상자에서 갓 나온 듯한 말쑥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마흔 여섯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른 다섯 이상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정말 재미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알다시피 그가 보잘것없긴 하였지만 그와의 교제는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의기양양하여 언제나 명랑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력 있었다. 그래서 그가 생활필수품을 산다고 꼬박꼬박 내게 돈을 빌러 와도 나는 선뜻 돈을 건네 주었다. 내가 50파운드의 돈을 빌려 주었을 때도, 오히려 내가 그에게 빚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톰 람제이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또한 톰 람제이를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에게 반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엾게도 조지는 이 말썽꾸러기 동생과 단 한 살 차이였지만 예순 살이나 되어 보였다. 25년 동안, 그는 1년에 2주일 이상 휴가를 가진 적이 없었다. 매일 아침 아홉 시 반에는 사무실에 나가 있었고, 저녁에는 여섯 시를 넘지 않으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넷이나 되는 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아버지였다. 그는 수입의 3분의 1은 세상없어도 꼬박꼬박 저금을 하기로 하였고, 쉰 다섯살이 되면 은퇴하여 시골에 아늑한 집을 구하여 정원을 가꾸기도 하고 골프를 즐기기도 하리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의 생활은 나무랄 데 없었다. 조지는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하고 바랐다. 왜냐하면 톰도 따라서 나이를 먹기 때문이었다.: 그는 손을 비비면서 이렇게 말했다.

"톰이 젊고 얼굴이 반반한 동안은 좋겠지만, 그는 나보다 꼭 한 살 어릴 뿐이란 말입니다. 이제 4년만 있으면 그도 50이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만사가 그렇게 쉽게 되진 않는다는 걸 알 테지요 나로선 50이 될 때까진 3천 파운드의 돈이 모일 테고, 지난 25년 동안, 나는 톰은 밑바닥 인생으로 생을 마칠 것이라고 말해왔지요. 그때 가서 그가 그것을 얼마나 좋아할지 두고 봅시다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일하는 것과 게으른 것 중 어느 편이 정말 이득을 볼 것인지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가엾은 조지여! 나는 그를 동정하고 있었다. 나는 조지 옆에 앉아서 톰이 어떤 수치스러운 짓을 저질렀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조지가 몹시 화가 난 게 분명했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하고 그는 내게 물었다.

나는 물론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톰이 경찰의 손에 잡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조지는 쉽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당신은 내가 부지런하고, 점잖고, 남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삶을 살아 왔다는 걸 부정하지 않으시겠지요. 노후에는 우량유가증권에서 들어오는 적은 수입을 목표로 은퇴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하느님의 뜻을 만족시켜 드리는, 내 신분에 있어서 내게 부과된 의무를 꾸준히 다해 왔단 말입니다. "
"물론이죠."
"그리고 톰이 게으르고 아무 쓸모없고, 방탕하며 파렴치한 건달이
란 것도 당신은 부인하지 않으실 겁니다. '인과응보라는 게 있다고 하면 그는 감화원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입니다."
조지는 점점 얼굴을 붉어졌다.
"몇 주일 전 톰은 자기 어머니뻘 되는 부인과 결혼했답니다. 그런
데 지금은 그 여인이 죽어서 그녀가 갖고 있던 재산이 몽땅 그의 손
에 굴러 들어오지 않았겠어요? 돈이 50만 파운드, 요트 한 척, 런던
에 있는 저택, 게다가 시골의 별장까지

조지 람제이는 불끈 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이건 공평치 못해, 공평치 못하단 말이야. 제기랄, 이건 정말 공평
치 못하다니깐."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조지의 화가 난 시뻘건 얼굴을 보고 큰 소리로 웃어댔다 의자에서 배꼽을 잡고 웃다가 하마터면 마룻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조지는 이런 나를 언제까지나 용서하지 않았다. 한편 톰은 멋진 만찬을 차려놓고, 메이페이에 있는 고풍스런 저택으로 때때로 나를 초대하곤 했다. 그가 설사 내게서 돈을 얼마 꾼다고 하면, 그것은 그저 지금까지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그 금액도 1파운드를 넘는 일은 결코 없었다.

3.

균형을 갖출 수 있는 힘은?

작가인 서머셋 모옴은 낭만주의의 단편소설작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에드가 알란 포우, 모파상, 오헨리 등과 함께 인물묘사에 뛰어난 작가이다.
이글은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규범적 삶과 일탈해서 부정적으로 비쳐지는 삶을 통해 사회적인 통념의 관점을 넘어 실재하는 삶의 모순을 재치 있게 그려내고 있다.
나는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삶이 꼭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옴이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톰람제이의 삶을 대비시켜서 과도하게 윤리적 규범과 가치를 비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선수란 성실하고 체계적인 기술만으로 완성되기 어렵지만 기술이 결여되어 있는 전술적 센스와 무모한 전략이 반드시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많은 선수들이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지나치게 실전적인 기술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장기적인 성장과 경쟁에서 결코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전술이란 기술적인 바탕위에서 그 성공에 대한 확신을 보장할 수 있다. 지나치게 시합에 노출되어 있는 선수들은 때때로 기발한 발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여 승리를 선점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경쟁에서는 반드시 유효한 것은 아니다. 시합수준이 높아질수록 전술적 사고의 비중이 높아지지만 그러한 전술적 사고를 실행할 수 있는 기술적 수준의 결여는 조잡한 경기운영과 운동상해를 초래한다. 나아가 장기적인 측면에서 선수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경쟁불안에 시달리게 되며 신체적 정신적인 피폐를 가져오게 된다.

실제로 통람제이의 삶은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면 남을 즐겁게 하거나 사치스런 생활을 하기위해서도 상당한 노력과 재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러한 생활이 돈 많고 일찍 죽을 수 있는 이혼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톰 람제이의 삶의 성공은 로또의 당첨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이나 엘리트 스포츠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톰 람제이처럼 대박을 꿈꾸며 삶에 대한 성실함과 근면함을 비하시키는 경향이 있다. 변칙적인 삶은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주 뇌물수수, 인맥동원, 거짓된 겸손과 무모한 경쟁, 선수폭력과 같은 편법과 비인간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조장하고 정당하게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창조적 지식경제의 이면에 숨어있는 단기적 효율성의 부정적인 얼굴을 상기하곤 한다. 사회전체의 관점이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이며 바람직한 삶은 성실한 삶과 창조적인 삶의 균형에 있다. 임기응변과 철저한 기본의 균형 잡힌 전술이 가치 있는 승리를 보장한다.
생존을 위한 직업과 존재의 의미를 위한 자유 사이에서 항상 갈등하는 것처럼 기술적인 신체능력과 상황판단에 따른 정신적인 능력사이에서 균형을 잡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술적인 행동들은 많은 연습량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한다. 반면에 안정되지 못한 전술적인 행동들은 통제력이 낮고 쉽게 대안이 없는 한계에 직면한다. 그것은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성실함이 답답하고 진부한 것과 같고 성실함이 없는 상상력과 도전은 희미한 확률의 도박성이 짙은 성공을 꿈꾸는 위험한 삶과 같은 이치다.

천재와 바보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말하지만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
바보는 우연히 천재적인 발상을 하지만 천재는 자기의 의지대로 바보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박이나 일등은 우연히 이루어질 수 있지만 “일류”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합에서의 승리라는 결과는 같아도 그것이 장기적인 삶에 주는 의미와 가치 그리고 동기부여는 다르다. 별들의 왕국 같은 스포츠나 연예인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성공이란 근면한 삶이든, 요행을 기대하는 삶이든, 균형을 갖추고 나아가는 삶이든 그 끝에 이르기만 하면 모두 같다. 선수가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 화려하게 기술적인 난이도를 높이든, 변칙적으로 임기응변적인 대응을 익히든, 충실한 기본에 의해 적절한 기술적 다양성과 재치있는 상황판단을 하는 균형잡힌 전술을 가지고 있든 승리에 이르는 것은 모두 가능하다. 다만 알아야 할 것은 균형을 갖추지 않는 한 시간이 갈수록 노력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왜냐면 시합은 계속되고 이겨야할 상대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 내쉬평형(Nash equilibrium)의 죄수의 딜레마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근면한 삶을 택하고 특별한 재능을 통해 성공을 노리는 스포츠와 연예계 스타 같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모험적인 기회를 쫓을 것이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은 균형을 갖추고 창조적 발상을 통해 도약한다.
좁은 의미에서 선수의 성격과 신체적 조건을 고려하고 개성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제공하여야 한다. 어느 방법이 옳다고 말하지않는다. 하지만 균형을 갖추지 않는 한 대성하기 힘들다는 점에 대해서는 말할 수는 있다.

내가 배우고 지키려고 하며 강조하였던 것은 어떤 선택이든 그 끝에 이르는 데 필요한 것은 일관성과 인내심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입지전적인 인물 다큐에 나오는 인물이든 일관성과 인내심은 반드시 필요한 요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재능에 의존하는 선수이든 노력에 의존하는 선수이든 특별하지 않지만 두 요소를 갖춘 선수이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인이다.

기술과 전술은 일관성과 인내심을 통해 자신만의 검법 style이라는 완성을 통해 실현된다.
그렇게 됨으로서 다양성과 독창성은 강화될 수 있고 차별화되어 정상에 이를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고서에 그렇게 이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생각을 살린다(生念)고 하는 것은 한 평생 지킬 수 있는 하나의 생각(一念)을 한평생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 생각(念)은 빗나감이 없는 바른 생각(正念)이니, 보통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같지 아니하다. ”

크든 작든 어떤 형태의 꿈을 현실로 이루는 것은 사고와 행동이 일관성과 인내심을 통해서 자기만의 행동양식으로 완성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식은 자기만의 것으로, 실천은 지속적으로 개선될 수 있으며 그 결과 행동양식은 강화되어 꿈을 현실로 실현시킬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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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1.26 10:14:00 *.70.72.121
제대로 흘린 땀과 제대로 부르는 노래를 만나고 싶다.
승패와 우열사이의 경계에서 균형감이란 남과의 차이에서 누리는 혹은 나타난 외양이 전부일 수는 없다. 그 유혹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인정한다. 그렇게 규정하는 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개인은 나름대로 분명 노력을 했거나 각자의 고뇌를 통과해야만 했을 것이다. 기본과 그것을 넘어선 성취와 성장은 칭찬 받거나 비교우위의 섬에 있는 것이라기보다 자기를 다 태우기 위한 후련함과 더불어 감사함에 있어야하리라. 훈련은 차별적으로 강하게 결과는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하는 아름다움이어야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인성교육과 훈련이(성취가) 함께 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영웅되어 안일을 꽤한다면 선 밖의 사람들을 낙인하는 것 밖에는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분류가(차별이) 아니라 모두가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영역과 의지에로 나아감이며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돕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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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01.26 15:42:09 *.75.166.55
우여곡절 끝에 알게 된 사실이 '적당히' 였는데
그 '적당히'가 중간치기가 아니라 오르내림에 있어서 적당함이라니...
일관성과 인내심이 그것을 잡아 줄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게 '한 길'이 아닐까... 싶군요
왜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라는 말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적절한 인내심과 목표를 향한 패이스의 적절함을 가르쳐주듯이 말입니다.
항상 열심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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