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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여러분이

2007년 2월 1일 23시 10분 등록
어제 모임이 있었다.
낯가림을 하는 나는 사실 사교적 모임은 그다지 참석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번 모임은 여러 가지 인간관계도 있고 하여 오랜만에 얼굴을 내밀었다.
참석 결정을 내린 이면엔 또 다른 뜻한 바도 있지만 그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 곳에서 가슴 아프게 헤어진 옛날 내 남자를 다시 대면하며 일어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와는 한 삼 년을 꼬박 만났던 것 같다.
동갑이었던 우리는 첫눈에 필이 꼽힌다는 표현 그대로 그렇게 만나기 시작했고 다른 연인들이 그러하듯 사랑하고 다투다 화해하고 또 싸우는 그런 반복을 계속해 가며 연애를 했다.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싸우고 헤어지던 날,
"난 이런 치사한 사랑은 안 할 거야!"
신데렐라의 꿈을 꾸었던 그 시절의 나는 사랑에 서툴렀고 공주처럼 그에게 받아야만 한다고 투정을 부렸던 것 같다.

그의 성격은 나랑 비슷하면서도 달랐었고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언쟁을 하며 서로의 자존심에 흠집을 만들어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일조차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 땐 그렇게 이별의 구실을 만들어 담뿍 실연의 아픔에 젖고자 했던 이 십대의 철없는 연인들이었다.
지나간 남자는 절대 뒤돌아 보지 않는다는 나의 오만은 그리고 나서 그를 내 기억 속의 방에 잠가둔 채 거반 이 십 년의 세월을 속절없이 흘려 보냈다.

다시 모임 이야기로 돌아가자.
히끗히끗한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여자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그를 향하는 것이 이상하게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신경이 쓰이는 게 여간 자리가 불편한 게 아니다.
중년의 상징인 뱃살도 없고 무엇보다도 옛날 그 때의 궁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다.
환한 미소와 지적인 말투……
게다가 날렵한 스타일에 세련된 복장이 제법 그럴 듯 한 게 귀족적인 인상마저 풍기고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화장실로 뛰어가 오랜만에 화장을 정성껏 했다.
마스카라며 립스틱 등.. 최고의 조명발을 기대하며 덫 칠과 분 칠을……
기도하는 마음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윽고 그가 날 발견하곤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내게 와서 그 동안의 안부를 묻는데 반가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더 예뻐졌다고, 잘 살구 있냐구, 보구 싶었다는 등......
첨엔 인사말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닌 듯.
그의 눈 속에 액체 비슷한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 무언가 내 속에서도 울커덩 하는 엄청난 무게의 그간 꾹꾹 눌러 두었던 그리움에 나 역시 그와 동일한 현상을 보이고 만다.

말이 무슨 필요가 있으라.
정성 들여 말아 올린 마스카라에선 흑심 품었던 나를 비웃듯 구정물 같은 색깔을 쏟아내고 감정이 한층 더 에스칼레이트 되면서 우린 그 모임에서 더 이상 태연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근처 술집으로 들어갔다.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가 근사한 분위기의 바였다.
푹신한 소파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버본 엔 진져엘, 캄파리 소다, 스카치 소다......
내가 즐기는 칵테일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감동 먹게 하는 건 여전하구나."
'난 너에 대한 생각은 하나두 잊은 게 없어. 넌 내 인생에 너무 중요한 여자였기 땜에......"
추웠던 심장은 그렇게 따뜻하게 덥혀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우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해버린 듯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살아온 스토리,
내가 널, 니가 날 얼마나 그리워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우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화장실을 번갈아 왔다 갔다 몇 번.
그가 소파 내 옆자리로 왔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오랜만에 만난 그의 손과 입술은 우리를 또 다시 이 십대의 열정적인 연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적절한 술 기운과 현실과 이미 한참 떨어진 정신적 흥분상태.
깨끗한 침대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애정 어린 그의 눈길.
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다음 순서를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심장 뛰는 소리가 전해져 오며 머리가 아득한 느낌이……
아 이대로 영원히......

그의 손이 내 등에 닿았다.
그 짜릿함이란......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가는 간지러운 느낌.

갑자기 그의 움직임이 몹시 방정맞다고 느껴지며......

난,

그의 손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변해가는 모습을 몽롱한 의식 속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먼저 털북숭이 꼬리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노마의 수염이 근질근질.
아예 다리부터 등 짝으로 나를 질겅질겅 밟고 있지 않은가?
..................

김 새는 거.

말해 뭐하겠습니까?
여러분에 비하면 전 그 백배는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누군가를 기만하려는 것도 아니고 웃기려고 쓰는 글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오늘 조금 전에 일어났던 실.제.상.황.인 것입니다.
원통하구 절통하구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하여 이렇게 올려봅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오늘 저 녀석 기합 받고 저 쪽에서 쭈그리고 눈치만 힐끔힐끔 보구 있네요.
수컷이라고 질투했나 봅니다..

"얌마! 너 오늘 금식이야”



IP *.153.3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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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賢연미
2007.02.01 23:32:32 *.239.80.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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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7.02.01 23:48:55 *.81.19.85
내가 은남님 나이에 쓴 졸시를 하나 옮겨봅니다.
자장가 삼아 숙면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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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날의 호사

1
네가 보고싶은 날
전화는 못 걸고 꽃만 산다
연애는 못하고 꽃만 산다
꽃도 비싸지만
연애는 더 비싸지
단 한 번의 약속에 갇혀
모든 감정이 봉쇄되는
이상한 나라
외로울 때마다 사들인 화분들로
앞 뜰이 화사하다

2
천 권의 시집을 읽으려하네
천이라는 숫자의 완성감에 기대어
혹시 내 안에 뭐가 터질지도 몰라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초라한 나의 언어
시의 만물상 앞에
길잃기도 다반사
아무리 많은 길이 있어도
내가 가야 내 길이니

3
꽃과 시를 안고도
발이 푹푹 빠지는
그리움의 갯벌
나와 같은 세계에서
같은 말을 쓰는 너를 만나고 싶어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정겨운 몸짓 마음짓
눈먼 정열이여 오라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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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2.02 00:06:46 *.70.72.121
역시 앞 통수 확 쳤으니 요담엔 진짜루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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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7.02.02 04:24:25 *.102.142.177
으앙..진짜로 ㅁㅏ음아파하고 있어ㅆ는데...
오늘도 야옹이가 마무리 해주다니....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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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7.02.02 06:13:48 *.142.163.4
또 야옹일까 ... 하며 읽었는데.. 전, 왠지 안심이네요.

전동유축기로 수유하다 중단하고 미탄님의 시를 읽습니다.
자꾸 제 눈이 도돌이표를 찍게 만드는 구절에.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어 잠을 청할 수 있는 '시' 가슴에
품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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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2.02 08:34:07 *.145.79.74
향기롭다 못하여 여린 정열을 연인으로 향하여 쏘아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파, 누군가에게서 장미 백송이를 받고 싶어하는 향인의 마음이 보인다. 수많은 사람이보는 장르에 아름다다운 연시를 올려 놓으니 백마를 탄 왕자가 나타 날 꺼다.

그러나 사랑은 바보같고, 위험하고, 자신을 벗어버려야 성취한단다. 설령 타인이 이해하지 못할 남자를 만나도 행복은 그속에 있으니 말이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도꼬에서의 학창시절에서도, 좋은 직장을 가지고 외국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유창한 회화의 향기를 보여도 과연 열망의 남자는 없지 않던가?

평범속에서 사랑하고 보편속에서 인년을 만나시게!
그렇게 만난 사람을 같이 섬여행을 하면서 입큰 아구를 ?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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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2.02 10:14:29 *.180.48.237
향인님, 저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동물이 좋아요. 하하하.
손으로 잡았을 때 손끝으로 전해오는 그 따뜻함이란... 음. 말 안해도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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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2007.02.02 10:27:03 *.254.127.248
향기나는 사람은 다르게 보이나봐요^^*
은남님에게서는 다른누구보다도 사람다운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겨나요.
꼬리글 달려있는 것만봐도 알수있잖아요.
마음열고 사랑하고, 사랑타령할 수있는 대상이 있는 것 참 행복이 될 수있지요.
그 마음 열기가 참 어렵지요.
은남님은 마음 열어 환하게 하는 모습을 꿈벗모임 때 마다 편하고 좋아보였습니다.
열려있는 마음으로 살아가실때 사랑은 언제나 은남님과 함께 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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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2.03 06:53:54 *.152.82.31
글쎄...
백마탄 왕자는 없을 것 같고,
백묘는 만날 것 같은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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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2.03 19:08:36 *.153.35.109
하하 댓 글이 너무들 멋있어요.
미 탄님의 시 중에서
“같은 말을 쓰는 너를 만나고 싶어”
“눈 먼 정열이여 오라”. 이 부분에서 잠깐 숨 한번. 휴우~
저랑 비슷한 감성도 있으신 듯하여 무지 반갑다는.

연미님의 수줍은 미소, 써니 님의 박력 또한 즐겁네요.
귀자 씨와 윤섭엄마. 이제 야옹이 야그는 이걸 마지막으로.
한 번 더했다가는 돌 날라 오는 게 아닐지 불안하기도 하고. ㅋㅋ
정화님과는 이번 여행을 통해 좀 더 알게 돼서 기뻐요.
나이만 많았지 어리숙한 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에 좀 뭉클.

초아샘 말씀은 가슴에 보배로 간직하렵니다.
혹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만약 행복 타령하게 되면 그건 다 선생님 덕입니다.
매듭이 생기걸랑 잽싸게 선생님께 자문 구하러 갑니다.

기원님의 말씀에 아 부끄..
뵈면 뵐수록 진국인 기원님. 조만간 또 뵙게 되기를 기원..
자로님. 그래 참 현실적인 말씀이우.
그잖아도 나만 싱글이면 됐지 울 고양이까지 싱글일 이유가 있나 해서 녀석에게 백묘한마리 데려다 가정을 일궈줄까 생각 중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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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6 13:12:35 *.163.190.71
미탄님~ 詩가 너무 이뻐서 훔쳐(?) 갑니다.....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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