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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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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3일 21시 44분 등록

우리 집에서만 통하는 유머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원가’이고, 다른 것은 ‘옥상만가’이다. 예닐곱살 쯤 되었을까, 아들이 자랑스레 말한 적이 있다.
“나 ‘원가’가 무슨 말인지 안다”
“무슨 뜻인데?”
“차 안에 깔아놓는 방석같은거야”
“...... ? ”
영문을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우리는 이내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낮에 거리에서 운전석에 놓는 대나무 방석을 진열해놓은 것을 보았다. 거기에 크게 ‘원가판매’라고 쓰여있어서, 그 방석이 ‘원가’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오래전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옥상만가’라는 꼭지가 있었다. 하류인생들이 옥상에 쭈구리고앉아 이바구하는 내용이었다. 아마 輓歌였을텐데, 아이들이 ‘옥상에만 가다’라는 뜻으로 알고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빨래를 널러 옥상에 가는 나에게 아이들이 “엄마는 매일 옥상만 가”라고 말했던 것이다.


요즘 날씨가 추워서 멀리는 못가고, 옥상에 올라 걷곤 한다. 그야말로 ‘옥상만 가’는 처지인 셈이다. 며칠간 게으르게 꼼짝도 않고 뒹굴거리다가 바깥공기를 쐬니 시원하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까지의 시간. 하늘은 아직 밝은 색인데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먹구름이 흩어졌다 모이고, 모였다간 다른 모양으로 흩어지면서 쇼를 연출하고 있었다.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불빛이 아름다웠다. 비행기가 긴 줄을 그으며 날아갔다. 사방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산의 실루엣이 지워졌다.


옥상에서 보이는 사면이 모두 볼만하다. 두부모처럼 반듯하게 정렬한 구세대 아파트, 독특한 모양으로 포즈를 취한 신세대 아파트, 백월산 밑으로 정다운 불빛들, 크고 작은 집이 모여있는 읍내 주택가를 골고루 쳐다본다. 그러다 깨닫는다. 저 중 어느 곳에도 둥지를 틀고 싶지 않다고.


아직은 어느 곳에도 정착할 생각이 없다. 나는 아마 정착한다는 것을 고착과 동일시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편안하고 안락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 없는가보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하지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요즘은 시니어 전문 카페 생각에 골몰해있다. 가정과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으로서 언제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요, 문학과 철학, 예술을 공부함으로써 새로운 안목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곳...


공예나 사진 같은 기능에 대한 코스는 많은 편이므로, 인문학 위주의 강좌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인문학이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경비를 충당할 정도의 회원구조가 문제이다. 저렴한 양질의 식사는 기본인데, 자로님 왈 밥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주춤한다.


사실 바지런하거나 성실한 편이 못되기 때문이다. 소나기 일이라고나 할까, 일할 때 몰아쳐서 일하고 쉬는 것을 좋아하지, 꾸준히 반복적인 일에 약하다. 또 지속적으로 사람을 접해야 한다는 것도 걸린다. 일 주일에 나흘만 일해도 된다면 할 수 있는데... 그런데 하고싶은 일은 그 뿐이니 걱정이다. 시니어비즈니스의 한 귀퉁이에 있고 싶은데, 내가 실버타운을 짓겠는가, 제조업을 하겠는가. 평소관심과 시니어가 맞물린 평생교육, 자기실현, 커뮤니티... 분야에 눈길이 갈수밖에.


이제 완연히 어두워졌다. 아무런 해답없이 또 하루가 저물었다. 이 정도 관심을 가지고, 공간탐방도 다니고, 웹써핑도 부지런히 하자. 오늘은 일단 옥상에서 내려가자. ^^


IP *.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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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2.05 11:32:16 *.218.201.204
옥상만가. ㅎㅎ 아이가 무지 귀여운데요?

글을 읽으면서 제 옛날 생각이 하나 떠올랐어요.
부모님이 공부잘하는 형한테만 너무 잘해주는 것 같아서 눈물 찔끔 나오고, 버럭 소리를 질렀죠. 오랫동안 쌓여왔던 한탄(!)이었는데
"엄마! 형한테만 잘해주지 마!
형이랑 '대우차별'하지 마!!"
무지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아뿔싸, 삑사리. ㅋㅋ
엄마가 너무 크게 웃었어요.
요즘도 '차별대우도 몰랐던 네가 글을 쓴다니' 하고 놀립니다.

쓰고 보니 글이랑 별 관계 없는듯. 이런 제가 글을쓰겠다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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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02.05 21:20:56 *.105.190.181
옥상만가, 대우차별 !
둘 다 사자성어 구만 왜 관계가 없겠어요?

~~그랬던 꼬마가 글을 쓰겠다니, '어쭈구리'요
옹박의 큰 키와 부리부리한 눈으로
상대를 제압하니, '기선제압'이요,
훤칠한 미남이니, '십점만점'이요,
언제고 I - brand를 가지고 돌아오겠노라 외치니,
'아윌비백' 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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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2.11 12:07:07 *.145.231.168
시니어전문카페라는 아이디어의 씨앗이 좀 더 깊이있게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그 자체만으로 수익구조가 발생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북카페가 더 빠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과연 그런 유사한 형태가 옳은지 ...
혹은 수유 + 너머 와 같은 고민의 시니어적 맹아는 아닌지...

저라면 수익적 과정은 과감히 제외하겠다는 생각입니다.
현상유지라는 희망도 처음부터 잊어버려야 한다는 말이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에서 시니어들의 자기만족과 희망의 새로움을 찾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잡다한 과정을 모으는 것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희망을 만드는데 주력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비즈니스가 아닌 것이 필요할 겁니다.
생각의 씨앗이 싹을 튀우려면 좀 더 다양화된 논의가 자주 나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같이 듭니다.

천당이나 극락이 있건 없건,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인간이 태어난 생명을 누리며 살지 않을 수 없는-살 수밖에 없는-삶의 현실을 가장 슬기롭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길잡이의 역할을 '가정과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으로서 언제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요, 문학과 철학, 예술을 공부함으로써 새로운 안목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공간이라고 보여집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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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옥균
2007.02.11 23:03:26 *.62.200.201
오랫만에 연락 드리네요. 한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제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 역시 '시니어비지니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 막 프랑크 쉬르마허의 '고령사회 2018' 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앞으로의 사회는 "노화를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는 종교나 문화를 가진 사회가 가장 성공할 것이다"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분명히 늘어나는 건강하고, 지적인 능력을 가진, 경제력이 있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이들을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면 그 사회와 국가는 경쟁력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선생님의과 비슷한 생각을 해보곤 한답니다. 앞으로도 좋은 아이디어를 집적적으로 공유하고 실천해 나가는데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와 닿는 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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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7.02.12 19:25:59 *.152.142.111
자로님,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신기하네요
내가 생각하는 일은 수익구조와는 자유롭게 활동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리라는 것, 돈의 위력은 돈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준다는 것.

옥균님, 비슷한 관심사를 가졌다는 건, 비슷한 기질을 가졌다는 얘기도 될 것같아요. 언제고 연구소에서 만난 작은 동질성들이 모여 의미있는 흐름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흐뭇한 상상을 해봅니다.
번개에 오실 의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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