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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5일 17시 29분 등록
사상 좌파, 생활 우파

검색을 하다 우연찮게 웃고 넘기기엔 머리를 찡하게 만드는 구절 하나를 찾았다. ‘대한민국 50대의 힘’이란 책에서 저자인 탁석산 교수가 제시한 ‘사상은 좌파 생활은 우파’라는 것이었다. 탁 교수는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시하면서 그것은 바로 50대가 이뤄내야 할 사명쯤으로 결론내고 있다는데 방법론이 위의 구절로 제시하였다는 내용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신뢰가 바탕인 사회,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우리의 바람직한 미래상이 되기 위해서는 사상과 생활에서의 자각과 결단을 말한다. 즉, 사상에서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고 본다면 좌파,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면 우파이다 반면 생활에선 검약과 정직에 충실하면 좌파, 내 돈 내 맘대로 쓴다면 우파다. 사상에서는 미사여구가 가득하지만 생활에서는 졸부 흉내를 내는 사상 좌파 생활 우파가 최악이라고 탁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어떨까? 입으로는 무조건 좌파다. 최소한 민노당을 지지하고 표에서는 우리당 수준이상의 우파는 찍어보지 못했다. 아마 죽기 전까지는 이 마지노선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술자리에서는 이미 빛이 바랜 십 수 년 전의 노동현장을 마치 어제 일처럼 떠벌리고 나선다. 아마 말 빨로는 어떤 투사보다 못하지 않다. 알량한 과거가 지금의 머리만 좌파를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몸과 생활은 어떤가? 부르조아에 투항한 전형적인 회색군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말하지만 한 사람의 열 걸음을 머릿속에 먼저 생각하는 이건희류에 다름아니다. 조직의 집단적 힘을 중요시하고 같이 고생하는 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는 뛰어난 한 명의 조직가를 원하고 고독한 CEO의 선봉을 갈망하는 개인주의자에 불과할 뿐이다. 검약과 정직에 충실하지도 못하고 푼돈에 몸 추스르는 서투른 아마추어 우파인 것이다.

몇 년 전 B급 좌파란 책을 보고 치기어린 생각에 발끝으로 어디 구석으로 차버린 기억이 새삼 선연하다.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이영희 선생의 믿음처럼 과연 나는 언제나 내 앞에 주어진 현실을 묵인하거나 회피하지 않았을까?

97년, 2002년 그토록 원했던 정권교체와 지키기에 성공한 이후 허약한 지식인으로서보다 실천하는 자유주의자로서 나의 사회적 책임과 시대적 소임을 다한 것으로 자임한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힘 있는 자는 힘으로, 노래하는 자는 노래로, 돈 있는 자는 돈으로 애국하자는 명분으로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시대적 변혁운동의 전면에서 물러서 비겁하게 사상 좌파, 생활 우파로 변절하지는 않았을까?

사상 좌파 행동 우파의 사이에서 유일하게 나를 빠져들게 하는 것은 자신과 삶과 일에 대한 열정이다. 사상적 빈곤과 행동적 풍요로움 사이에 존재하는 열정만이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주는 자기혁명의 씨앗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경계인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날의 행태에서 주류의 역할모델을 찾아 분주히 돌아다니는 꼬락서니로 바뀐 서글픔을 위로해준다.

어쩌면 나는 좌파와 우파의 유전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편에 가서도 부담스럽지 않다. 아마 나의 이런 행동은 타고난 유전자의 덕일 수도 있겠지만 유리한 쪽에 한 발 걸치려는 사악한 뱀과 같은 존재는 아닐지.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내가 바로 뱀띠네.

살아남은 자의 한계라고 불리웠던 6월의 광장을 딛고 현장으로의 이전을 통한 삶과 행동의 문양같은 단세포를 분할해 지금의 생활로 옮겨간 지난 10여년의 숨막혔던 죄의식이 머리만 좌파를 만든 것만 같다. 그러나 사상과 생활의 근본적 통일성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두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 진면목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짐 콜린스가 말한 “외부에서 보는 전환은 극적이고 혁명이나 다름없이 비쳐지지만 내부에서 본 전환은 오히려 유기체의 발달 과정에 가까운” 것처럼 말이다.

사상 좌파, 행동 우파는 나의 현실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안을 이미 찾아 가고 있다는 미래주의의 누군가의 지적처럼 좌파와 우파를 구별하지 못하는 한심스럼움이 아니라 삶에서만이 유일하게 판단할 수 있게 해 주는 자신의 혁명만이 답해 줄지 모를 일이다. 지난 10년이 그랬듯이 앞으로 10년이 그럴 수 있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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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2007.02.05 19:42:40 *.230.199.144
근데 나 같은 사람은 어떠케 되나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니 사상은 우파인데, 생활은 (어쩔수 없는) 검약과 정직에 충실하니 좌파인 셈이군요...사상 우파 생활 좌파? 어째든 사상과 생활이 다른 건 사실인가 봅니다.
생각과 생활이 일치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있는 중인데... 생활쪽에 맞추어서... 그러니까 내 현실에 맞는 사상을 견지하도록 애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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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02.05 21:11:53 *.105.190.181
오~~~~ 자로~~~~~~~ 님!
내용의 진지함은 둘째치고, 간단명료한 문체에서 풍기는
파워가 장난이 아니네요.
조만간 -새끼-고수의 반열에 오를 기미가
보이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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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02.06 00:17:39 *.75.166.55
엄청난 자아비판이군...
누가 그러데,,, 그랜져는 낡아도 그랜져라고
극과 극은 통한다는데 저쪽 끝에서 이쪽끝으로
이번엔... 저쪽으로 꺽으면 너무 빨리 가지 마소...
그 세월이 질주보다는 느긋함을 가져다 주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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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2.06 00:45:08 *.70.72.121
좌파와 우파 그것은 대중의 선택 이전에 이미 존재한 것들로 인한 편견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삶은 이데오르기보다 훨씬 진솔하며 간단명료한 것 아닐까? 선택 이전에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고 그것에서 삶의 방향을 찾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극과 극이 통하는 것이라면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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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2.06 01:04:31 *.166.64.215
그러면 주역에서는 좌와 우가 있을까?
"不富利其隣"
<이웃과 부를(경제활동)을 같이 한다.>
는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구절이 등장하기도 하며,

"中孚 豚魚 吉"
<중부를 완성하는데는 복어를 다루듯이 하여야 길하다.>
좌부(左孚) 중부(中孚) 우부(右孚)
중부가 있으면 당연히 우부도 좌부도 있기마련이다. 그러나 주역은 중부, 중도의 도리를 중요하게 역설하고 있다.
자로님의 사상좌파 행동우파가 합쳐지면 중도의 도리가 아닐까?
일생좌파로, 또는 우파로하는 사상적인 확립은 중하겠지만 우리의 생각이 행동으로 인도하는 것이 사회와 봉합된 사상이 아닐까. 자연주의적 이념은 과연 좌일까, 우일까?

부르조아적 자본가,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착취지주들에게 맞서는 푸로리레타리아의 혁명, 정말 이들은 몇백년의 지배당하는 한이 봉기한 것이다. 정말이지 좌로님이 좌파적 성향이 있음은 이외의 일이다. 특히 식당업을 하는 사업가가, 이직업은 노동착취이며, 자유방임의 주류라하고 또 인민 해방의 적이라 하여 이북에서도 철저히 금하고 국가에서 경영하는 식당박에 없는데. 그리고 자로님의 행동함에는 자본주의적 냄새가 물신 풍기는데, 단지 다른점은 종업원을 끔찍히 위해주는 행동이 타와 다른 모습일 수 밖에, 그러나 그런 성향이 있고 그를 근본삼아 살아온 모습이 곧은 나무처럼 좋아보인다. 더욱 공부하여 우리 모두가 다 잘수 있는 세상으로 인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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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
2007.02.07 06:05:21 *.224.156.10
한명석님 글처럼 자로님은 벌써 새끼고수 2호가 되었습니다.
그럼 1호는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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