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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14일 23시 02분 등록

< 프롤로그 >

다섯번째 인터뷰 주인공인 윌 헌팅은 현재까지는 최연소 출연자가 될 것 같다. 이제 갓 서른살을 넘긴 이 수학천재는 인터뷰 요청메일을 보내자마자 오케이 사인을 보낼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이어서 원잭을 기쁘게 했다.

특히 지난 인터뷰 주인공인 존 키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던 숀 맥과이어 교수가 많이 떠올랐다며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존 키팅과 숀 맥과이어는 외모뿐만 아니라 가슴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믿음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그가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노을진 하늘을 배경으로 보스턴을 떠난 후 10년만에 이루어지는 이번 인터뷰는 그가 어떻게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의 인생2막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따뜻하게 음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역시나 생각으로 나누는 대화방식이 적용되었다)


[윌 헌팅에 대하여]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고아로 태어나 여러번의 입양과 강제파양(가정학대로 인해 법률상으로 강제된 입양파기)을 겪으며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은채 보스턴 빈민가에서 노동자계층 친구들과 근근히 살아간다.

MIT 공대건물에서 청소부 일을 하던 그는 우연히 칠판에 남겨진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어내면서 제랄드 램보 교수의 눈에 띄게 되고 그의 놀라운 수학적 천재성을 확인한 램보교수는 그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인 심리학 교수 숀 맥과이어에게 도움을 청한다.

숀과의 만남을 통해 굳게 닫혀있던 윌의 마음은 서서히 열리고 결국 20년동안 그를 구속했던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친구의 바램대로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미래를 찾아 캘리포니아를 향해 떠난다.


< 인터뷰 전문 - 윌 헌팅 >

이기찬(이하 원잭) :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타이밍이 좋았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열정재능연구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윌헌팅(이하 윌리) : 이런 인터뷰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 드리구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기존에 인터뷰하셨던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특히 존 키팅 선생님은 꼭 만나고 싶군요.

원잭 : 그렇지 않아도 몇가지 공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분들 중에 몇 분을 초청해서 토론회를 진행할까 구상중에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토론회 참석에 응해주신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죠?

윌리 :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기 전에 세번째 '생각하는 여행'에서 돌아온 숀 맥과이어 교수님을 오랫만에 만나고 왔습니다. 여전히 수염을 기르시고 따뜻한 미소로 절 안아 주시더군요. 하루종일 그 분과 얘기를 나누었답니다.

원잭 : 숀 맥과이어 교수님도 함께 모시는 것도 의미가 있었겠지만 당신에게 직접 묻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인터뷰 예행연습은 충분히 하신 셈이니 워밍업도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바로 첫 질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당신의 천부적인 수학적 재능과 더불어 박학다식함을 여러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엄청난 독서광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습니까?

윌리 : 독서광이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공식적인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저에게 독서는 단지 취미일 수 만은 없었습니다. 책은 제게 친구이고 조언자이자 안내자였습니다. 책은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필요하고 궁금해 하던 것을 대부분 제공해 주었죠.

원잭 : 거의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독서를 즐기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특별히 애정이 간다거나 관심있는 분야는 있을 것도 같은데요?

윌리 : 사실 취향이 잡식성이다라는 표현보다는 살아가다 보면 알아두어야 할 것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습관이 된거 같구요. 솔직히 수학은 제일 재미없는 분야이구요. 제가 몇번 사고를 쳤을 때 제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법률서적을 한참 들여다 볼 때가 있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는 구석이 많더군요.

특히 다양한 판례가 실려있는 책을 좋아했는데, 어찌나 영화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는지 놀라게 되는 경우도 많고 판결자체도 엉뚱한게 많아서 읽는 재미가 솔찮죠. 지금도 가끔씩 기분전환할 때면 손이 간답니다.

원잭 : 뜻밖이로군요. 저도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이제 램보 교수와의 인연이 만들어졌던 시절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해볼까요? 절친했던 친구 처키도 당신에게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MIT 공대 청소부가 된 것은 단지 우연이었나요 아니면?

윌리 : 제가 사실 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그냥 우연히 일자리가 그곳에 생긴거 뿐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처키의 얘기를 듣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제 마음속 어딘가에 수재들이 모여있다는 MIT에 있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거 같아요.

원잭 : 일종의 무의식적인 반응과 같은 것이었나 보군요. 칠판에 남겨져 있는 수학문제를 풀게된 것도 의도적인 행동이라기 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이끌린게 아닌가 싶은데..

윌리 : 정확히 보셨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 문제를 보는 순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분필을 들었는데 어느 순간 칠판에 해답이 채워져 있더군요. 그 당시 저에게는 일을 하다가 잠깐동안의 퍼즐게임을 즐긴 셈이었지요.

원잭 : 그럼 그 문제가 유명한 수학자들도 증명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난해한 문제라는 사실도 전혀 몰랐겠군요.

윌리 : 저에게는 약간 흥미로운 퍼즐이었을 뿐이지요. 수학은 저에게 그런 대상이니까요. 문제를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제 머리속에서 해답이 실타래처럼 술술 흘러나오는걸 옮겨 적는 것이니 어렵다고 느낄 이유가 없죠..^^

원잭 : 램보교수를 포함한 수학도들이 들으면 모두들 살리에르가 된 기분일 것 같군요. 하긴 실제로 램보교수는 인도의 천재적인 수학자 라마누잔이 다시 태어났다고 흥분한걸 보면 당신을 수학계의 모짜르트로 인정한건 분명한거 같은데요.

윌리 : 지금도 그 당시 램보교수님께 제가 했던 행동들을 떠올려 보면 부끄럽고 죄송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 분은 정말 수학을 사랑하셨고, 자랑스럽게 여긴 분이었는데 저는 분에 넘치는 수학적 재능만 믿고 오만하고 무책임하게 굴었었죠. 이 자리를 빌어서 램보 교수님을 비롯한 수학도들에게 정중히 사과드리고 싶군요.

원잭 : 그런 뜻으로 던진 질문은 아니었는데.. 분위기를 전환하는 의미에서 스카일라와의 첫만남 이야기를 좀 해보죠. 사실 그녀의 적극성이 없었다면 당신 스스로 그녀에게 먼저 다가서지는 않았을거 같은데요.

윌리 : 처키가 제법 그럴싸하게 작업을 걸고 있을때 그 어리버리한 하버드 찌질이가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스카일라에게 어필할 기회는 없었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친구들이나 그녀에게는 저의 속사포와 같은 잘난체가 통쾌했을지 모르지만 그 찌질이 친구보다 한술 더 떠서 잘난체를 했다는 측면에서는 훨씬 더 철없는 짓이었지요. 게다가 스카일라가 적어준 메모지를 그 녀석 면전에 대고 의기양양해서 소리까지 질러대는 제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정말 민망스럽군요.

물론 그녀를 처음보는 순간 끌렸지만, 그녀가 제 곁을 지나가며 45분동안 헛 기다림에 대한 실망감을 한방 날려주었을 때, 그녀의 솔직함과 위트에 홀딱 반해버렸죠. 저에게는 믿기 힘든 행운이었죠. 지금도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원잭 : 동서양을 막론하고 잘난체 하는 것만큼 유치하고 비난받는 일은 없는거 같습니다. 그래도 그때 상황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여전히 당신의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당신 손을 들어줄 것 같군요..^^

어쨌든 스카일라는 그 이후에도 당신의 여러번의 머뭇거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다시 기회를 주곤 했는데요. 그녀에게서 당신에 대한 모성애같은 것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요?

윌리 : 스카일라를 만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같은 것이 순식간에 풀려버리곤 했죠. 어머니 자궁속에 있는 태아가 된 것 같은 편안함이라고나 할까요. 그녀는 절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항상 유쾌한 수다와 농담으로 절 즐겁게 해주었죠.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도 알게 해주었어요. 모성애라는 표현이 딱 맞는거 같아요.

원잭 : 이제 숀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숀을 만나기전에 당신에게 골탕먹은 정신과 의사나 최면가, 그리고 상담전문가들이 다섯명 정도 되었지요 아마?

윌리 : 그랬죠. 그 당시에는 제가 그런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싶었고, 제 나름대로의 저항을 궁리한 셈인데. 그 분야에서 꽤 내노라하는 분들이 아킬레스건이 될만한 점을 몇가지 찔렀더니 의외로 쉽게 말려 들더군요.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쉽게 포기할 때(물론 심한 모욕을 느꼈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그저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을 뿐, 가슴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 아픔을 보듬어 주어야 하는 인격체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원잭 : 직업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분들에게서 당신의 마음이 열리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였겠지요. 숀과의 첫번째 만남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윌리 : 그 역시 다른 사람과 똑같은 부류일꺼라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그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시험하고 공격할 꺼리를 열심히 찾았고 그대로 했습니다. 그는 지적인 면에서 부족한 점이 없는 사람임을 곧 알게 됐어요. 그래서 아내 이야기를 꺼내며 성질을 긁어보기로 방향을 바꿨죠.

그런데 그가 진짜로 화를 냈어요. 아니, 분노라는 표현이 정확하겠군요. 갑자기 아무 생각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 순간의 그는 저를 상담하는 사람도 심리학 교수도 아닌 사랑하는 아내를 모욕하는데 분노하고 상처입은 그저 평범한 남자였죠.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 숀은 그전에 만났던 이들과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내 진짜 고민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섞인 기대를 처음으로 갖게 됐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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