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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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
푸른 대숲과 서리가 내린 아침, 산 밑까지 이어진 들길, 평온한 물벽의 저수지, 길게 우는 황소의 울음소리, 늙은 감나무와 너른 흙마당, 뒤란에 오종종하게 앉은 장독들, 조리로 싸락싸락 쌀을 이는 소리와 밥 익는 냄새···. 이런 단어들이 명절을 맞는 동네의 그림이고 어릴 적 시골의 정취라고 시인 문태준은 말한다.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거기다 설에는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뒤덮은 기억을 더하면 정말 그대로의 고향을 생각게 한다.
중학교를 마지막으로 고향에서 장시간 머물러있었던 기억이 없다. 산골 오지마을에서 대처로 유학을 나온 이후 다시는 시골마을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가끔 고향에 가는 갈 때는 방학이나 명절이 고작이었다.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기쁨보다는 용돈을 타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더 솔직한 느낌이었을 듯하다.
올 해 명절은 시골을 가지 못했다. 홀로 계신 아버님께서 편찮으셔서 천안에 모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형수님과 아내는 차례상을 준비하기 위한 시장을 보고 우리 식구는 아버님과 형님네가 사시는 큰 집으로 가서 음식을 만들었다. 서 너 시간 동안 전을 굽고 고기를 삶고 조기를 찌고 과일을 다듬는 등 수 백년간 조선유교의 전통방식을 따라 조상님을 위한 의식을 준비하였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될 무렵 형님내외분과 나와 아내는 맥주를 마시면서 옛날을 회상하였다. 그러니까 어머님께서 살아계실 때에는 명절과 휴가 때는 꼭 부모님이 계신 시골을 찾아가 뵈었다. 우리 아이들이 너 댓살 무렵이었으니 가는 길 오는 길이 쉽지 않았을 때다. 그래도 아장 아장 걷는 것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 안기는 모습까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를 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하였을지 헤아려보지 않아도 눈에 선할 정도다.
시골집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어 있다. 안채는 주로 나의 할머님께서 거취하셨으나 돌아가신 후로는 부모님께서 사용하고 있고 사랑채는 우리 같은 손들이 찾아오면 필요한 제 역할을 한다. 명절이 되면 온 집안이 난리법석이 날 정도로 시끌벅적했었는데 할머니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지금은 명절에도 조용한 나머지 찾아오는 이조차 없다.
당시 어머님의 말씀이 지금도 가끔씩 형제들이 모이면 회자되곤 한다. 4남매와 손주들까지 20여명에 달하는 대식구가 고향집에 떠들썩하게 지내다 가면 온 몸의 진이 다 빠진다고 하셨다. 어느 자식 하나 빼놓지 않고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것도 부족해서 안방, 사랑채 할 것 없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치우느라 우리들이 다녀간 뒤에는 꼬박 하루나 이틀을 뒤치다꺼리를 하고 하셨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였다.
허리가 휘도록 차례 준비하랴 자식들 챙겨주랴 어머니 당신도 ‘명절 증후군’이 어찌 없었겠는가. 자식 손자들과 함께 시끌벅적한 명절을 보낸 후 다시 텅 빈 고향집에 남아있던 내 어머니의 아쉬운 눈길을 기억한다. 거북이등 같은 당신의 손등을 잡을라치면 사내인 나보다 더 거친 억셈에 갓 철든 막내의 눈샘이 젖어옴을 이제야 고백한다.
차창 너머 손 흔드시는 연로한 아이들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배웅이 동구 밖 내 어머니의 자식사랑 같은 아련함을 느낀다. 당신들도 같은 생각이실 것이다. 친손주, 외손주 가릴 것 없이 시끌벅적하다 다 떠난 후 적막한 빈 공간을 대신 채울 텔레비전소리의 덧 없음을 생각하니 나도 벌써 늙어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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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박노진씨는 효자입니다. 효자는 하늘이 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효를 행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언이 있는데 정말이지 진실한 말입니다.
몇년전에 나에게 당뇨가 왔는데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마음에 고통이 있었으나, 그 병으로 인하여 나이들어 쓸데없이 오래 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이지 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장수를 오복 중 으뜸으로 생각했지만 현대는 과연 그를 까요?
옛에는 효경사상이 온 누리에 있었지만 지금은 노인이 갈 때가 없습니다. 노진군이나 우린 이점을 준비 해야 겠지요.
그래도 합천 같은 명산을 고향으로 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보존하고 살아야지요.
방금 손녀와 딸애가 설을 지내고 떠났습니다. 정말 오니 반갑고 가고난후에 더욱 편안함을 느낌니다.
*올해는 사업도 번창하시고, 같이 여행도, 그리고 좋은 글을 남기시길*
몇년전에 나에게 당뇨가 왔는데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마음에 고통이 있었으나, 그 병으로 인하여 나이들어 쓸데없이 오래 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이지 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장수를 오복 중 으뜸으로 생각했지만 현대는 과연 그를 까요?
옛에는 효경사상이 온 누리에 있었지만 지금은 노인이 갈 때가 없습니다. 노진군이나 우린 이점을 준비 해야 겠지요.
그래도 합천 같은 명산을 고향으로 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보존하고 살아야지요.
방금 손녀와 딸애가 설을 지내고 떠났습니다. 정말 오니 반갑고 가고난후에 더욱 편안함을 느낌니다.
*올해는 사업도 번창하시고, 같이 여행도, 그리고 좋은 글을 남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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