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정재엽
  • 조회 수 185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7년 2월 20일 20시 19분 등록
1.

"저는 국문과를 나와서 이런 비평의 글들을 4년 내내 공부를 했는데, 이 글은 하나하나 꼬집기 힘들 정도로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이 글은 재미가 없습니다. 끝까지 읽다가 몇 번이나 졸았는지 모릅니다.”

“글 중에 영어 번역투가 간간히 보이고,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서 객관적인 이론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이론을 내세워 전개해 나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거 참-. 너무 문제점이 많은 글이라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대로 쓸데없는 단어를 끌어다 쓴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인 것 같고, 이런 식의 전개라면 이 글에서 말한 존재의 위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요. 참. 답답해서-”

내가 쓴 영화 평론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글의 전개가 너무 지루하다는 평가에서부터, ‘생각 없이’ 단어들을 마음대로 끌어다 썼다는 의견, 도대체 이런 식의 글을 보면 화가 난다는 말까지. 내 글에 대한 평가는 바로 한마디로 요약된다.

“이 글은 쓰레기니까 당장 휴지통에 넣어버려!”


2.
사실 올해 초 나는 글쓰기 수업을 듣기로 마음을 먹은 후, 나의 글에 대한 평가가 이정도 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평가을 받은 그 글은 올해 신춘문예 영화평론에 응모했었던 글이다. 신춘문예라는 것은 글 하나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 글 하나만 잘 쓰면 당선이 된다는 비합리적인 면이 있긴 하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도, 하다못해 대학 때 영화 수업을 들은 적도 없는 나 같은 경우에는 글 하나로 당선작을 결정한다는 그러한 선정기준은 사실 군침 도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평론의 대상이 되는 영화를 선정 한 후, 그 영화에 대한 왠만한 평론은 모조리 읽어 내려갔다. 아무래도 기존의 평론에 부합되는 글은 애초에 제외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문학적인 이론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인문학적인 이론도 부족하지만, 어설프게 차용했다가 나의 얄팍한 지식이 드러날까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응모 전, 친분이 있는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로부터 교열도 받았고, 요즘 잘 나간다는 영화 평론가에게도 미리 그 글을 보여 일종의 피드백을 받은 터였다.
그 글을 읽어 본 한 영화 평론가는 이런 평가를 했다.

“이 글은 영화 평론 같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군. 심사위원의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 평론은 이래야 한다’라고 일정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부합되는 글을 찾는 식의 기준을 가진 심사위원이 아니라면, 당선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본심에는 오르지 않을까 싶네.”

그러한 자신만만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의 글은 당선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당선된 작품에도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 되었다. 당선자는 이미 모 메이저 신문사의 신춘문예 문학평론부분 기 당선자였고, 현재 국어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것은 올해 신춘문예 심사위원과 함께 이미 영화에 관한 책을 함께 저술한 ‘공동저자’였던 것이었다. 한마디로 공동저자끼리 심사하고 심사 받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었다.

사실 그러한 의혹은 오히려 나의 글에 대한 자부심을 더 키우는 꼴이 되었다.
‘그래. 이번 심사는 공정하지 못했어.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내 글이 당선되었을 거야.’ 라는.

2007년의 첫 번째 신문을 화려하게 장식하겠다는 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나는 문득 글쓰기 훈련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내가 듣기에 가장 ‘만만해 보이는’ 글쓰기 과정을 수강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나의 글쓰기 과정 수강의 목표는 명확했다.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분 당선’


3.

내가 수모를 당한 그 글쓰기 수업은 사실 좀 독특한 면이 있다. 격주로 실시되는 이 수업은 국어 수업처럼 일정한 교재를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해 나가는 것도 아니요, 소설, 시, 수필 등으로 장르별로 나누어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각 수강생들이 장르에 상관없이 글을 미리 써서 인터넷 카페에 올리면, 수강생들은 각자 다운을 받아서 읽어 온 후 그 글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간단히 말하고, 최종적으로 담당 강사가 그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에 들어가는 철저히 평가위주의 수업인 것이다.

그런데 첫 수업을 위해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다른 수강생들의 글을 읽어보았을 때 솔직히 너무나도 아마추어 냄새가 나는 글들에 일종의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뭐. 이 정도 수준 쯤이야…… ’ 라고 자신감에 젖어 다음번 수업 때 평가를 받을 사람을 정하는 데 번쩍, 하고 손을 들어 자청했던 것이다.

먼저 나의 글은 다른 수강생들과 약간의 차별은 있었다. 이제껏 소설, 시, 수필 위주였던 수업에서 이례적으로 ‘영화평론’을 하겠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담당 강사인 소설가 이만교 선생도 영화평론이 이 수업에서는 처음이라며 이 강좌의 특징인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 수업’ 방침에 부합되는 것이라며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바램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나의 첫 평가는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힌 것이었다.

아직도 그 수업시간의 평가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잔뜩 기대를 한 수업에서 무참히 짓밟혔을 때의 그 난감함. 그 오만한 자신감을 교실에도 있지 않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 할 때 감내해야 하는 그 수모와 멸시는 오랫동안 지워지기 어려운 것이다.

4.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침실 방 천장이 높게 보였다. 나 자신이 방바닥을 파고 들어가 웅크리며 잠들었던 듯 했다. 천정은 내가 도달하지 못할 멀고 먼 글쓰기의 길. 자신감의 상실. 아. 삶의 무게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울컥해졌다. 옆에서는 두 살 된 딸아이가 젓을 달라며 울고 있었다. 글쓰기 수업에서 수모와 멸시를 당할 정도로 못난 아빠를 둔 너도 울고 있구나, 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아빠로서 늘 자랑스럽고 싶은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깟 글쓰기 수업이 뭐 대수냐,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심 기대했던 칭찬과는 완전히 빗나가 그동안 잘 썼다고 생각한 나만의 오만함이 더욱더 비참하게 여겨진다.

그날 오후에는 가족 모두가 딸을 위해 미리 예약한 공연, 오즈의 마법사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공연에 괜히 전날 평가를 받아 기분 나쁘게 공연을 관람하러 간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표를 되물릴 수 있으면 되물리고 싶었다. 그러나 최근에 중요한 시험을 치른 아내가 시험을 치르기 두 달 전부터 예약을 해 놓은 탓에 예약을 취소한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도마 위에 오를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극중, 주인공인 도로시는 태풍을 만나면서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야 다시 켄터키의 집으로 돌아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오즈의 마법사를 찾으러 가는 도중, 무언가 한 가지씩 부족한 길거리의 친구들을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즉,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자, 심장을 필요로 하는 깡통, 그리고 두뇌를 필요로 하는 허수아비가 바로 그들이다.

음악과 춤, 그리고 실제 연주하는 타악기가 곁들어 흥미진진한 공연을 보고 있는 도중, 나 또한 무대 위의 주인공들처럼 그들이 심장과, 용기와 두뇌,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원이 있었던 것처럼 ‘글쓰기 능력’을 찾아 오즈의 마법사를 찾고 싶었다. 주인공은 소원을 빌며 귀에 익은 노래를 부른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저기 어딘가에, 무지개 너머에, 저 높은 곳에

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
자장가에 가끔 나오는 나라가 있다고 들었어

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
저기 어딘가에, 무지개 너머에, 푸른 하늘에

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
네가 감히 꿈꿔왔던 일들이 정말 현실이 되는 나라.

One(some) day I'll wish upon a star
어느날 나는 별에게 소원을 빌었어

And wake up where the clouds are far behind me.
그리고 구름 저 건너에 일어났지

Where troubles melt like lemon drops
걱정은 마치 레몬즙처럼 녹아버리고

Away above the chimney tops
굴뚝 저 높이에

That's where you'll find me.
그곳이 바로 네가 나를 찾을 곳이야.

Somewhere over the rainbow, blue birds fly,
무지개 저 너머 어딘가에, 파랑새는 날아다니고,

Birds fly over the rainbow,
새들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데

Why, oh why can't I?
왜.. 왜 나는 날아갈 수 없을까?

if happy little blue birds fly
행복한 작은 파랑새는

beyond the rainbow
무지개 너머로 날아갈 수 있는데

why, oh why can't I?
왜, 왜 나는 날아갈 수 없을까?


노래가 나오는 도중, 바로 저 무지개 너머, 행복한 파랑새를 찾아서, 감히 꿈꾸던 것이 현실이 되는, 그런 글쓰기의 능력을, 나는 빌었다. 딸아이는 그 노래가 나오자 마치 자기가 부르는 냥 두 손을 꼭 쥐고는 객석 앞 공간으로 나가 아장아장 걷는다. 마지막 도로시가 신고 있던 신발의 뒷굽을 톡톡 건드려 고향인 켄터키로 돌아갔듯이, 나도 몰래 뒷굽을 톡톡 건드려본다. 혹시나 나에게도 글쓰기의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싶어.


5.
사실 나에게는 오즈의 마법사를 찾고 싶었던 어릴 적 기억이 있다. 어쩌면 내가 수업시간에 받았던 충격은 정작 내 글에 대한 다른 사람의 혹독한 비평이 아니라, 꺼내고 싶지 않았던 유년의 기억을 이 수업에서 다시 펴게 되어서 일지도 모른다.

나의 집은 아버지가 해외 공관에 계셨던 관계로 자주 이사를 해야 했다. 처음 해외로 나갔던 지역은 인도네시아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기억이 없는 곳이다. 내가 기억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 가족은 해외에서 시간을 보냈다. 2년, 때로는 3년 만에 그 나라에 정착이 될 만하면 다른 나라로 배정을 받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만 했다.

내가 한국이 아닌, 타국으로 기억하는 나라는 ‘이집트’이다. ‘이집트’ 하면 낙타와 피라미드를 생각하겠지만, 5살 꼬마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낙타도 아니고, 피라미드도 아니다. 그저 밤마다 울부짖는 고양이 울음소리와 동네 아이들이 늘 가지고 다녔던 쿠브즈, 라는 찢어먹는 떡 조각이다.

6살이 되자, 나는 아랍식 학교에 입학을 했다. 누나와 형은 영국인 학교와 프랑스 학교를 다녔는데, 유독 나만 아랍 학교를 가게 된 것이다. 이는 ‘셋만 낳아 잘 기르자’ 라는 국가적 모토에 따라 정부에서 해외 공관에 있는 자녀 세 명까지만 사립 교육을 지원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 도착 한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투른 아랍어에, 아랍식 학교에 자녀를 보냈다는 분을 만나지 못해서 많은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입학식 때 교장선생님은 그 학교 개교 이래 처음으로 외국에서 온 학생이 있다며 전 교생이 보는 앞에서 나를 소개했던 그 시간을. 6살 꼬마에게 전교생 앞에서 소개를 받기 위해 교단으로 올라가는 것은 차라리 고통에 가깝다. 언어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인사를 해야 한다는 그 사실이 괴로움보다 더 진했다는 것은 후에 교단을 내려 온 뒤 축축하게 젖어 있는 바지의 앞섬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한다. 쉬는 시간마다 나를 둘러쌓던 그 많은 아랍꼬마들의 신기해 하는 눈초리 들을.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면, 순식간에 모두들 나를 향해 돌리던 그 시선들을. 혹 화가 나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늘 문화적인 이해가 부족한 나의 책임이었다. 선생님들도 ‘인샤 알라’를 외치시며 나를 동물원의 희귀종 취급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것은 국어시간이었다. 국어시간은 경전인 꾸란을 중심으로 어렸을 적부터 철저히 교육을 받는데, 집에는 꾸란을 가르쳐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랍어를 도통 읽지 못하는 가운데 시험만 보면 당연히 꼴찌. 매일매일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분명히 한 학급에서 그들과 나에게는 커다란 경계선이 놓여있었고, 그 경계선 밖으로 나가기를 나는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 기억. 왜이리 아랍어를 못하느냐며 ‘너가 쓴 아랍어는 언어가 아니야’ 라고 소리지르던 선생님의 커다란 눈동자. 친구들에게 몰래 돈을 주어가며 숙제를 해 가면 다음날 담임선생님이 숙제장에 ‘이 친구가 돈을 우리에게 주고 숙제 해 달라고 했어요’ 라고 써있다고 말하는 상황. 나는 그만 그 교실을 탈출해 밤마다 울부짖는 카이로 거리의 고양이가 되고 싶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나의 글에 대해서 ‘너의 글은 쓰레기’라고 말하던 글쓰기 교실의 수강생의 모습과 내 주위를 둘러싸며 꾸란을 외웠는지 감시하는 같은 반 아이들의 모습. 단어 한 개가 틀릴 때 마다 발길질을 해대며 외우라고 다그쳤던 모습과 평가를 할 때 흥분에 떨며 어이없다는 표정의 이만교 선생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 아랍학교의 그 국어시간 때부터 나는 모국어를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쓰는 언어와 집에서 쓰는 언어, 그리고 형제끼리 대화가 각기 다른 언어로 쓰여지는 희한한 다중언어 환경에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늘 고민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글쓰기를 갈망했던 것은 아닐까. 혹 모국어로 글을 잘 쓴다는 칭찬에 메말랐던 것은 아닐까. 늘 우산 밖에서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우산 속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을 바라만 보아야 했던 나의 그 시절, 그 우산 속 욕망의 기억이 그 글쓰기 수업시간에 펼쳐졌다.


6.

수업을 받은 지 벌써 3주가 흘렀다.

중간에 한번 수업이 있었지만, 애써 다른 약속을 만들어 수업에 불참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바로 일어나 다시 파이팅을 외치며 글을 쓰고 싶지만, 타자를 치며 무언가를 쓰는 행위 자체에 두려움을 느껴 자판을 두드리지 못했다.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해 자진해서 들어간 수업에서, 소스라치게 놀라고 나서 거의 한 달 이상을 글을 못쓰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아직도 딸아이는 그날 공연을 보고 오면서 산 CD에서 Over the rainbow 노래만 나오면 꺄르르 하며 싱그러운 미소를 보내고, 아직도 연락을 하는 초등학교적 아랍친구들과 통화를 할 때면 그 시절 이야기는 서로가 불편한 듯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제는 ‘새해 복 많이 받게나. 4월에 있을 영화 평론상 준비 해야지?’ 라는 문자 메시지가 나에게 지도해 주었던 영화 평론가로부터 왔다. 이제 봄이 오고, 좀 있으면 여름이 올 것이다. 그때쯤이면 저 무지개 너머에 파랑새가 울고 그 세계로 날아갈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나의 글쓰기에도 새싹이 돋아나고 푸른 잎이 필는지-.





IP *.153.212.81

프로필 이미지
한명석
2007.02.20 22:38:19 *.81.22.228
재엽씨,
이 글을 보며, '사람을 키우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나도 누구못지않게 직설적이고, 솔직이라는 미명아래 숱하게 다른 사람을 단정하고 판단하고 생각나는대로 '내뱉은' 사람이지만,

재엽씨의 글을 평가한 그 사람들이 조금만 듣는 사람의 심정을
고려해서 완곡한 화법을 사용했더라도,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는 활력으로 작용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재엽씨의 경험이, 내게 아직도 남아있는 '판단하는 버릇'을 버리게 하는 계기가 될 것같군요. 결코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고, 로맨틱할 정도로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구소장님의 방법론 덕분에, 내가 자신감을 얻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것도 다시 한 번 고맙구요.

그러나,
재엽씨는 '가혹한 평가'를 넘어설 수 있을거예요.
보통 소설을 쓰려면 서른은 넘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최소한 그 정도의 인생체험은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생각해볼수도 있어요.
재엽씨는 어린 나이에 낯선 문화에 적응하느라, 가위눌릴 정도로 힘들었겠지만, 느끼기에 따라서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수도 있는거지요.
예전에 유행했던 유머처럼,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풀장이 너무 좁아'
하는 말처럼 들릴수도 있어요.

'글쓰기에 대한 혹독한 평가'가 어쩌면 재엽씨가 겪는 최초의 어려움일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소설이 아닌 영화평론을 쓰는데도 그 정도의 좌절이 필요할지도 모르지요. 그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소리를 했다면, 100%는 아니라도 최소한 10%는 맞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생각하고, 다시 수업에 참여해봐요.

과연 다른 글에는 어떤 평가가 내려지는지 독기를 품고 분석해봐요,
그들이 분별지에 사로잡혀 날뛰는 지적 편집증 환자인지,
아니면 표현의 문제는 있지만,
나름대로 수용할 부분이 있는지 판단해서 행동하면 될 것같네요.
내 글에 대해 '아름다운 환상'이 아닌 '참혹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면, 그 수업도 의의가 있는거겠고,

분위기나 화법이 도저히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툭툭 털어버리고 그만두면 되지요.

별 일 아니예요.
얼마나 오래, 얼마나 꾸준히
내 안의 욕구를 쫓아 써 나갈 수 있는지
그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기운내요 ^^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2.20 22:43:15 *.70.72.121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늘 너무 대단해서 남들이 주눅드는 거 알아요?
의욕 넘치죠. 성실하죠. 게다가 너무 열심인 것 보이고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아마 한 방 먹였을 거에요. 조금 담담해 지고 평온해 지라는 뜻에서.. 여러 모로 너무 대단해요. 가끔은 사부님처럼 여유~ 여유~

수업에 참관하셔요. 맛있는거 싸들고 가서 재미있게 수업하셔요. 더군다나 평론은 비평은 철면피처럼 두툼한 배짱으로 견뎌야 또 다른 글에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쓰실 것 아녜요? 사실 그 한마디가 뼈에 사무치도록 남아 오래 무기가 될 거에요. 귀한 선물이에요. 아자! 아자! 아자자자!!!!!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