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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3일 10시 22분 등록
광주에서의 한달-39

오늘로 꼭 광주에서 근무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처음 이 곳에 발령받았을 때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설마 내가 이토록 먼 곳으로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늘 나는 수도권에 머물렀다. 늘 나는 가족과 함께 했다. 그런 삶에 익숙해 언제나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했던 발령으로 오늘 내가 광주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광주의 첫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다. 오기 싫은 걸음걸이가 가벼울 리 없었다. 승용차로 내달린 거리만도 300㎞, 이 거리면 그동안 오고가는 출퇴근길의 20배가 넘었다. 시간만도 3시간이 족히 들어갔다. 그래서 달려온 빛고을 광주는 수도권의 활달한 몸놀림에 비해 매우 느리고 거북해 보였다.

부동산을 다루는 직장이다 보니 이곳 부동산 동향이 어떤가를 먼저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달아오를 때로 달아오른 수도권 부동산 흐름과는 달리 이곳은 침체할 때로 침체되어 있었다. 물론 지역마다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수도권 부동산 가격, 특히 아파트가격은 우리 고장과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부동산도 다양한 상품이 존재한다. 나는 항상 이것을 7가지로 분류하여 정리하곤 한다. 토지, 단독주택, 아파트, 주상복합, 오피스텔, 오피스, 상가가 그것이다. 아직 정확한 동향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부분에서 수도권과 차이가 뚜렷했다. 투자가치가 없다는 얘기다. 지역경제 활성화가 앞으로 지방발전의 관건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정부는 이를 위해 혁신도시니 행정복합도시니 모든 것을 쏟아 붓지만 지역 활성화는 요원해 보인다. 왜 그런지는 앞으로 내가 분석해야할 또 하나의 과제다.

내가 맡은 업무는 도시정비업무다. 아마 이 업무가 무슨 일인지를 밝히는 것은 다소 지면을 요하기에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달동네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개선지구를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하여 당해지구주민의 주거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서울의 신림, 봉천동의 달동네를 연상하면 되겠다. 이런 지구를 오늘날 산뜻한 아파트촌으로 바꾸어 새롭게 단장하는 일 대부분을 우리 공사가 맡고 있다. 그 업무의 일선 책임자가 된 것이다.

지난날 차장시절 이 업무를 인천에서 2년 동안 수행한 경험이 오늘 나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이다. 이런 지구가 광주에 13개와 목포에 1개 지구가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지구부터 막바지에 이르는 지구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지구가 평균적으로 5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업무이기에 내가 근무하는 동안 마무리되는 지구는 얼마 되지 않을 듯싶다.

업무를 떠나 광주의 또 다른 재미는 무엇일까? 나는 광주에 오는 첫날 이곳에 근무하면서 무엇을 갖고 즐길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 결과 세 가지를 갖고 즐기기로 결심했다. 정, 맛, 멋이 그것이다. 정을 통해 빛고을의 인적네트워크를 확고히 다지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의 인원은 나를 포함하여 총 154명이다. 모두를 알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내가 누구인지를 각인시키는 일에 열중할 것이며 그들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일을 분명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빛고을의 최대 강점의 하나가 바로 정임을 알았고, 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리아니티가 담긴 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평야와 넓은 대지를 가지고 있는 전라도는 맛의 고장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이 누구보다도 맛에 대해 갈구하고 이를 펼쳐 보였던 지역이 바로 전라도며, 광주는 맛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한정식이 그랬고, 낙지가 그랬으며, 국밥이 그랬다. 맛깔나는 음식이 침샘을 자극했다. 그곳을 찾아 맛의 향기를 담으려한다. 한 달 동안 맛있는 음식점을 정리했고 그들을 찾기로 했다.

멋과 풍광도 제법 봄직하다. 산과 절과 강과 그리고 섬이 나를 기다린다. 20개를 골랐다. 호남의 5대 명산(내장산, 지리산, 월출산, 천관산, 능가산)과 5개의 절(백운사, 송광사, 화엄사, 대흥사, 백양사)과 5개의 강(섬진강, 영산강, 황룡강, 동진강, 보성강) 그리고 5개의 섬(완도, 진도, 홍도, 소록도, 보길도)를 택했다. 이 모두를 돌 것이다.

전라도는 이조 5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유배지로 활용되었다. 그 분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정 약용선생이 계셨던 다산초당을 찾고 싶다. 정조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다산이 정조가 승하하자 1801년부터 강진으로 유배된다. 다산은 그곳에 다산초당을 짓고 18년 동안 머물면서 500권에 달하는 책을 남긴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걸작들이 모두 거기서 나왔다. 아마 그곳의 정기(精氣)를 받으면 나의 소박한 꿈 하나가 이루어 질 것 같은 충동이 든다.

광주에 머문 한 달 동안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아픔이기도 했지만 이 내 새로운 변화가 또 다른 시원한 청량제로 다가온다. 그동안 1년여 가까이 연구원생활을 하다보니 변화에 익숙한가보다.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한 달은 정리기다. 업무도 정리해야 하고, 해야할 일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 머문 동안 내가 할 일에 대한 의지도 다져야 한다. 실행에 옮겨야 한다. 어느 날 이 자리를 뜨는 순간 나는 아름다운 흔적을 남긴 한 사람으로 남는다는 확신을 갖고 말이다.
IP *.57.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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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2.23 17:56:17 *.152.82.31
다산초당을 다녀 오실 생각이시군요.
저도 그 곳을 다녀온 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천일각에서 구강포를 바라보면서 아홉개의 강이 모여 어떻게 하나의 바다를 이루는가를 생각케 하였고, 다산과 혜장선사가 걸었음직한 백련사 길을 따라 밟으며 나의 미래를 고민했었습니다.
무엇보다 강진은 '한정식'이 유명한 곳입니다.
좋은 시간 되시길 바라며 나중에 뵐 때 좋은 음식점에 관한 정보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건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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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2.23 18:19:06 *.166.64.18
호남의 강과 산 그리고 섬을 구경하면 호남인 다정 다감한 인정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서편재의 限을 느켜보세요. 그러나 여잘 만나고 연애는 금기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은 만들진 몰라도 여인의 눈물을 보아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잘못하면 현모요 양처인 서울댁에 상처를 줄지 모르는일이지요. <농입니다>

섬은 보길도가 좋습니다. 보길도는 옆에 노화도 또옆에 소안도가 있습니다. 소안도는 일정때 학교로써 제일 먼저 독립운동에 관련된 곳입니다. 그것이 "소안학교"입니다. 이젠 흔적도 없고 완도를 고향으로 둔 사람도 모르니 세월의 무정함입니다. 봄의 보길도가 정말 좋습니다. 노화도를 카페리로 가서 섬을 관통하여 다시 보길도로 가십시시요.
아마 지리산은 20회 이상 가보셔야 지리산의 매력을 알 것입니다.
마량에 가서 약산도를 건너가 보십시요. 한국 최고의 보약 "혀가 검은 흑염소"를 가을에는 서울에서 남도로 부인을 초대하여 같이 드세요. 10년은 젊어 질 것입니다.

"부럽다, 부럽다. 광주에 사시는 남도의 냄샐 맞는 곡인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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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2.23 19:04:05 *.70.72.121
저도 보길도와 흑염소 생각했는데요. 초아샘이랑 사부님이랑 모시고 꿈벗하고 함께 가야지.. 언제가 되려나...

맛, 멋, 마실(사랑방)은 천안의 마실장에게 드린 표어였는데
제가 꿈꾸는 집에도 맛, 멋, 마실의 정겨움을 컨셉으로 삼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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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2.23 23:46:35 *.152.82.31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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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객
2007.02.24 03:27:08 *.32.140.3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이조'라는 표현은 일제가 조선을 폄하하여 '이씨조선'이라는 뜻으로 낮추어 부르던 말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조선 - 아침朝, 고울鮮'- 을 건국했지, 이조를 건국한 것이 아니니 '조선 5백년'으로 고치는 것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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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2.24 08:14:39 *.72.153.164
광주에서 1년 넘게 근무하시길... 그래야 광주를 제대로 알것 같아서요.
광주의 무등경기장에서 하는 야구는 꼭 보러가세요. 지금은 예전과 다르겠지만, 野의 세력이 강했던 광주인 만큼, 광주사람들의 야구관람은 집회 비슷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안그러지만요.
5월이 되면 5.18관련된 행사가 많아요. 그리고, 5.18 묘지도 가보시구요. 광주비엔날레라고 하는 설치미술이 주가 되는 현대미술전이 열리는데 그것도 둘러보시고.
그리고, 담양의 한여름의 소쇄원의 맑고 한가한 기운도 맛보시길 바라구요.
광주인들에게는 서울의 남산과 같은... 무등산을 자주 찾으셨으면 합니다. 등산 후 보리밥집도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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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7.02.24 17:36:29 *.18.196.41
자로님 다산초당은 3월중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좋은 음식점 정리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초아선생님 여자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었어요. 당신은 술과 여자만 조심하면 된다나
상투적인 이 말은 아마 영원한 남자의 숙제일 것입니다.

써니님 남도의 그윽한 장소를 찾은 후 선생님과 연구원들을
초빙할 생각입니다. 그 때 오실 수 있을런지....

정화님 3.1일 민족의 정기를 한 몸에 받고 무등산을
등정할 계획입니다. 민족혼을 받는 순간 저의 역사는
새롭게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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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옥균
2007.02.28 16:19:54 *.223.223.199
저희가 남해에서 싱그런 바다를 뒤로 하고 담벼락에 기대어 소장님의 수업을 들은지가 벌써 일년이 다 되어 가네요. 잘 지내시죠? 그간 님의 글을 읽어보니 그 동안도 그렇고, 앞으로도 잘 지내실것 같네요. 벌써 광주로 가신 지 한달이 되셨나요? 이미 광주를 떠날때의 뒷모습까지 그려 두셨기 때문에 선생님 글 처럼만 지내신다면 광주에서 머무는 동안은 어쩌면 인생에 있어 정말 좋은 업적(?)을 남기는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보기 좋습니다. 세월의 연륜도 느껴지구요.늘 건강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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