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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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을 등정하고-40
광주에 오면서 네 가지 글자를 갖고 즐기기로 했다. 하나는 산이요, 둘이 강이요, 셋이 섬이요, 마지막이 절이다. 이미 한 글자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우리 선조의 탁월한 글자에 탄복한다. 그들의 삶과 인생 깊은 곳에는 늘 한 글자가 따라다녔다. 이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광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우선 산을 등정하고 싶었다. 그것도 광주를 상징하는 무등산을 처음으로 대하고 싶었다. 의미있는 날을 선택하는 것이 감흥을 더해 주리라 믿고 3월 1일을 택했다. 3.1은 무슨 날인가.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함에 따라 일본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민족의 몸짓을 보였던 날이 아닌가. 그 중심에 유 관순이 있었고, 33인의 독립운동가가 있었으며, 님의 침묵의 한 용운이 있었다. 나는 그날을 기리고 싶었다. 그들과 같이 숨쉬고 싶었고 호흡을 맞추고 싶었다. 나의 몸에 민족의 정기(精氣)를 담고 싶었던 것이다.
이 날에 오른 무등산은 남달랐다. 무등산을 오르는 코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광주시내에서 오르는 코스와 무등산을 지나 화순 쪽에서 오르는 코스가 있었는데 나는 화순 코스를 택했다. 이 코스는 무등산을 절반이상 차량으로 오른 후 몇 백 미터만을 오르면 되는 쉬운 코스였다.
무등산(無等山)은 무슨 뜻인가. 너무나 아름다워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 하지 않는가. 그것이 무등산이라 한다. 좀 과장된 듯하여 수정해보면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산이 무등산이다. 사람에게 있어 계급과 직위의 차이가 없는 산이 무등산이다. 인류평등을 상징하는 산이 무등산이다. 자유와 독립 그리고 민주화를 외친 산이 무등산이다. 그 산은 어떤 사람도 받아들였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모두를 받아들인 산이었다. 그래서 무등산이다. 산이 자연을 상징하듯 무등산이 광주를 상징했다. 나는 드디어 그 산을 오른 것이다.
무등산의 정기(精氣)는 민족의 정기와 더불어 나의 가슴을 메웠다. 정상을 향한 나의 발걸음은 자연을 즐기기에 안성마춤이었다. 다소 발걸음을 무겁게 했던 돌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나와 같이 호흡했다. 내가 좋아하는 한 글자가 돌이었기 때문이다. 오르는 걸음 옆에 풀이 있었고, 숲이 있었으며,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있었다. 그들과 같이하며 중간 정상에 오른 곳이 장불재다.
장불재의 억새풀은 장관이었다. 갈대라 칭하는 억새풀은 어떤 의미인가. 민족의 저력이 담겨 있는 풀이다. 갈대는 절제없고 가려린 풀의 상징이다. 하지만 억새풀은 다르다. 갈대가 평원의 슾지에서 자란 풀이라면 억새는 산에서 인고를 견딘 강한 풀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억새다고 한다. 오천년을 지탱하며 수많은 외침을 견뎌낸 민족이다. 억새가 그것을 상징한다. 살을 에는 듯한 앙칼진 바람에도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풀이 억새다. 억새가 무등산의 중턱을 수놓은 모습은 광주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등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걸작을 보여준다. 입석대가 그것이다. 무등산의 정상인 천왕봉에 다다르기 전에 필연적으로 만나는 코스가 입석대다. 치어오른 돌의 용솟음이 사나이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용기와 기백을 상징한다. 그들이 우리내 가슴에 담아질 때 스스로의 모자람을 탓한다. 못할 일이 없음을 알게 된다. 무등산의 정기 모두를 담은 돌이 입석대다. 무등산의 경외감 전부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무등산 전체를 보았다고 외쳤다.
마지막에 다다른 무등산의 정상은 입석대에 비하면 차라리 초라했다. 더 나은 곳을 향하는 장소로는 다소 왜소해 보였기 때문일까. 나는 이 초라함을 쓸어내기 위해 이렇게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무등산의 정기가 저 민족혼을 되찾으려는 우리 내 조상들의 뜨거운 외침과 교감(交感)하라고. 그리하여 무등산이 광주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상징하고 더 나아가 세계를 상징하는 산으로 우뚝 서길 바란다고. 그것이 내가 무등산을 오른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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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오면서 네 가지 글자를 갖고 즐기기로 했다. 하나는 산이요, 둘이 강이요, 셋이 섬이요, 마지막이 절이다. 이미 한 글자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우리 선조의 탁월한 글자에 탄복한다. 그들의 삶과 인생 깊은 곳에는 늘 한 글자가 따라다녔다. 이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광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우선 산을 등정하고 싶었다. 그것도 광주를 상징하는 무등산을 처음으로 대하고 싶었다. 의미있는 날을 선택하는 것이 감흥을 더해 주리라 믿고 3월 1일을 택했다. 3.1은 무슨 날인가.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함에 따라 일본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민족의 몸짓을 보였던 날이 아닌가. 그 중심에 유 관순이 있었고, 33인의 독립운동가가 있었으며, 님의 침묵의 한 용운이 있었다. 나는 그날을 기리고 싶었다. 그들과 같이 숨쉬고 싶었고 호흡을 맞추고 싶었다. 나의 몸에 민족의 정기(精氣)를 담고 싶었던 것이다.
이 날에 오른 무등산은 남달랐다. 무등산을 오르는 코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광주시내에서 오르는 코스와 무등산을 지나 화순 쪽에서 오르는 코스가 있었는데 나는 화순 코스를 택했다. 이 코스는 무등산을 절반이상 차량으로 오른 후 몇 백 미터만을 오르면 되는 쉬운 코스였다.
무등산(無等山)은 무슨 뜻인가. 너무나 아름다워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 하지 않는가. 그것이 무등산이라 한다. 좀 과장된 듯하여 수정해보면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산이 무등산이다. 사람에게 있어 계급과 직위의 차이가 없는 산이 무등산이다. 인류평등을 상징하는 산이 무등산이다. 자유와 독립 그리고 민주화를 외친 산이 무등산이다. 그 산은 어떤 사람도 받아들였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모두를 받아들인 산이었다. 그래서 무등산이다. 산이 자연을 상징하듯 무등산이 광주를 상징했다. 나는 드디어 그 산을 오른 것이다.
무등산의 정기(精氣)는 민족의 정기와 더불어 나의 가슴을 메웠다. 정상을 향한 나의 발걸음은 자연을 즐기기에 안성마춤이었다. 다소 발걸음을 무겁게 했던 돌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나와 같이 호흡했다. 내가 좋아하는 한 글자가 돌이었기 때문이다. 오르는 걸음 옆에 풀이 있었고, 숲이 있었으며,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있었다. 그들과 같이하며 중간 정상에 오른 곳이 장불재다.
장불재의 억새풀은 장관이었다. 갈대라 칭하는 억새풀은 어떤 의미인가. 민족의 저력이 담겨 있는 풀이다. 갈대는 절제없고 가려린 풀의 상징이다. 하지만 억새풀은 다르다. 갈대가 평원의 슾지에서 자란 풀이라면 억새는 산에서 인고를 견딘 강한 풀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억새다고 한다. 오천년을 지탱하며 수많은 외침을 견뎌낸 민족이다. 억새가 그것을 상징한다. 살을 에는 듯한 앙칼진 바람에도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풀이 억새다. 억새가 무등산의 중턱을 수놓은 모습은 광주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등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걸작을 보여준다. 입석대가 그것이다. 무등산의 정상인 천왕봉에 다다르기 전에 필연적으로 만나는 코스가 입석대다. 치어오른 돌의 용솟음이 사나이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용기와 기백을 상징한다. 그들이 우리내 가슴에 담아질 때 스스로의 모자람을 탓한다. 못할 일이 없음을 알게 된다. 무등산의 정기 모두를 담은 돌이 입석대다. 무등산의 경외감 전부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무등산 전체를 보았다고 외쳤다.
마지막에 다다른 무등산의 정상은 입석대에 비하면 차라리 초라했다. 더 나은 곳을 향하는 장소로는 다소 왜소해 보였기 때문일까. 나는 이 초라함을 쓸어내기 위해 이렇게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무등산의 정기가 저 민족혼을 되찾으려는 우리 내 조상들의 뜨거운 외침과 교감(交感)하라고. 그리하여 무등산이 광주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상징하고 더 나아가 세계를 상징하는 산으로 우뚝 서길 바란다고. 그것이 내가 무등산을 오른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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