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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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뭐냐?”
“엄마,이건 설문진데 꼭 답해 줘야 해요.”
큰딸이 큰 책을 옆에다가 펼쳐두고는 뭔가를 열심히 베껴 적고 있었는데, 그것도 이건가 보다. 딸 것을 얼핏보니, 짤막하게 단답형으로 적어 두었다. 큰애가 내민 종이에는 질문이 가득하다. 옆에 있던 막내에게도 하나 써 달라고 조른다.
“넌 꼭 이상한거 가져와서 하라 그러더라. 내건 그냥 언니가 대신 써.” 나도 막내 딸네미랑 같은 생각이다.
“이거 꼭 자기가 답해야 하거든. 동사무소나 병원이나 어디 가서 서류 떼면 나오는 거 물어보는 거 아니야. 꼭 그 사람이 답해야 알 수 있는 거라서 그래. 그러니까 내가 물어볼 테니까 네가 답해. 그럼 내가 받아 적을께. 엄마두.”
“그래. 어디 보자.”
“이건 이 책을 쓴 사람이 자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고,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하는대, 이모의 일기장에서 당시에 유행했던 신상의 질문과 답변을 모아놓은 고백수첩이란 것을, 이걸 보고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버지 인생이 어땠는지 생각해 봤대. 그리고, 이 책 쓴 사람은 이것 보면서, 아버지를 나타내는 일종의 묘비명도 될 수 있겠다 했지 뭐야. 그래서 나도..... 난 그냥 우리 가족들을 더 잘 알고 싶어서...... 언제 우리가 이런 거 얘기 해봤어야 말이지. 한번쯤 심심풀이로 해본다고 생각하고......”
심심풀이로 하기엔 큰애가 너무 열심히 졸랐다. 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엔 그래도 설렁설렁 대충 답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리고, 이건 꼭 나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고 하고, 묘비 어쩌고 하니 그냥하기엔 좀 무겁다. 좋아하는 것을 묻는 것 몇 개는 쓰겠는대, 몇 가지는 답하기 어렵다. 쓰다보니, 질문들이 내가 본 나라는 사람을 묻는 것들이다. 미덕? 남성관? 여성관, 그리고, 행복에 대해서. 내가 본 내 장단점, 기질들.
“언니, ‘어떻게 사는가?’라는 질문에 언닌 ‘쓸데없이 심각하게’라고 써.”
맞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큰 애는 너무 진지한 게 탈이다.
책 속의 이 아저씨는 참 많이도 답했다. 이사람은 가족들을 소중히 했겠고, 권투를 좋아했고,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 기회를 잘 놓치는 좀 안풀리는 사람이었나 보다. 또, 먹고 살기는 힘들었고.
에구, 월간지에 심심풀이로 나온 걸 읽다가 답했다면 그냥 수월하게 답했을 것을. 정말이지 쓸데없이 심각한 딸네미 덕에 진지해진다.
휴우~ 조른 김에 한번 내게 묻고 답해보자. 내 생각과 인생을 묻는 질문들에.
======================================================================
남자의 미덕: 강인한 체력.
여자의 미덕: 정절.
내가 생각하는 행복: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는 것.
내가 생각하는 불행: 불운
내가 제일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기회를 놓치는 것, 기회를 움켜쥐는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학문: 없음
같이 어울리고 싶은 모임은: 가족
가장 싫어하는 것은: 현대사회
좋아하는 작가/음악가: -
좋아하는 책과 악기: 피아노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이나 역사상의 인물: 워릭 백작
좋아하는 색깔과 꽃: 장미
좋아하는 음식과 술: -
좋아하는 이름: -
좋아하는 운동: 권투
좋아하는 놀이: 브리지
어떻게 사는가?: 조용히
나의 기질과 성향: 빗나간 이상주의자, 몽상가
좌우명: 오늘 먹을 것이 있으면 충분하다. 조금 더 있으면 더 좋겠고.
<미완의 시대> 저자(에릭 홉스봄)의 아버지에 관한 부분을 옮겨 적은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거기에 맞춰 내 답도 단답형으로 했었다. 모두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읽었을 때, 문제들의 무게가 느껴졌다. 앞에서 밝혔듯이 때로는 재미삼아 한 것에도 자신의 생각이 묻어나기도 한다.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거기에 진지함을 더해 다른 질문들을 만들어 대체했다. 단답형이 아닌 질문들이다. 에릭 홉스봄의 이야기대로 죽음과 인생을 연결지어서 ‘자신의 묘비를 미리 써 둔다면?’이라는 아직은 답하고 싶지 않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싶은 질문과, 거기에서 출발한 조금은 짓궂은 다른 질문 ‘자신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질문은?’이다.
가족들의 생각을 더 잘 알고 싶다.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을,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 알고 싶다. 이들에겐 가볍게 재미삼아 하는 것으로 해서 묻고 싶다. 내게 한 질문이 아닌 좀더 가볍고 재미나게 질문을 바꾸어서 꿈에 대한 것도 하나 포함하고 싶다. ‘지금은 하지 못하는 데, 로또에 당첨된다면(경제적인 것이 제약이 안된다면) 꼭 하고 싶은 것은?’ ‘자신에게 꼭 물어봐 줬으면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니, 앞의 20개의 질문은 각 분야에 걸친 정말 좋은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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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건 설문진데 꼭 답해 줘야 해요.”
큰딸이 큰 책을 옆에다가 펼쳐두고는 뭔가를 열심히 베껴 적고 있었는데, 그것도 이건가 보다. 딸 것을 얼핏보니, 짤막하게 단답형으로 적어 두었다. 큰애가 내민 종이에는 질문이 가득하다. 옆에 있던 막내에게도 하나 써 달라고 조른다.
“넌 꼭 이상한거 가져와서 하라 그러더라. 내건 그냥 언니가 대신 써.” 나도 막내 딸네미랑 같은 생각이다.
“이거 꼭 자기가 답해야 하거든. 동사무소나 병원이나 어디 가서 서류 떼면 나오는 거 물어보는 거 아니야. 꼭 그 사람이 답해야 알 수 있는 거라서 그래. 그러니까 내가 물어볼 테니까 네가 답해. 그럼 내가 받아 적을께. 엄마두.”
“그래. 어디 보자.”
“이건 이 책을 쓴 사람이 자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고,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하는대, 이모의 일기장에서 당시에 유행했던 신상의 질문과 답변을 모아놓은 고백수첩이란 것을, 이걸 보고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버지 인생이 어땠는지 생각해 봤대. 그리고, 이 책 쓴 사람은 이것 보면서, 아버지를 나타내는 일종의 묘비명도 될 수 있겠다 했지 뭐야. 그래서 나도..... 난 그냥 우리 가족들을 더 잘 알고 싶어서...... 언제 우리가 이런 거 얘기 해봤어야 말이지. 한번쯤 심심풀이로 해본다고 생각하고......”
심심풀이로 하기엔 큰애가 너무 열심히 졸랐다. 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엔 그래도 설렁설렁 대충 답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리고, 이건 꼭 나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고 하고, 묘비 어쩌고 하니 그냥하기엔 좀 무겁다. 좋아하는 것을 묻는 것 몇 개는 쓰겠는대, 몇 가지는 답하기 어렵다. 쓰다보니, 질문들이 내가 본 나라는 사람을 묻는 것들이다. 미덕? 남성관? 여성관, 그리고, 행복에 대해서. 내가 본 내 장단점, 기질들.
“언니, ‘어떻게 사는가?’라는 질문에 언닌 ‘쓸데없이 심각하게’라고 써.”
맞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큰 애는 너무 진지한 게 탈이다.
책 속의 이 아저씨는 참 많이도 답했다. 이사람은 가족들을 소중히 했겠고, 권투를 좋아했고,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 기회를 잘 놓치는 좀 안풀리는 사람이었나 보다. 또, 먹고 살기는 힘들었고.
에구, 월간지에 심심풀이로 나온 걸 읽다가 답했다면 그냥 수월하게 답했을 것을. 정말이지 쓸데없이 심각한 딸네미 덕에 진지해진다.
휴우~ 조른 김에 한번 내게 묻고 답해보자. 내 생각과 인생을 묻는 질문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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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미덕: 강인한 체력.
여자의 미덕: 정절.
내가 생각하는 행복: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는 것.
내가 생각하는 불행: 불운
내가 제일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기회를 놓치는 것, 기회를 움켜쥐는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학문: 없음
같이 어울리고 싶은 모임은: 가족
가장 싫어하는 것은: 현대사회
좋아하는 작가/음악가: -
좋아하는 책과 악기: 피아노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이나 역사상의 인물: 워릭 백작
좋아하는 색깔과 꽃: 장미
좋아하는 음식과 술: -
좋아하는 이름: -
좋아하는 운동: 권투
좋아하는 놀이: 브리지
어떻게 사는가?: 조용히
나의 기질과 성향: 빗나간 이상주의자, 몽상가
좌우명: 오늘 먹을 것이 있으면 충분하다. 조금 더 있으면 더 좋겠고.
<미완의 시대> 저자(에릭 홉스봄)의 아버지에 관한 부분을 옮겨 적은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거기에 맞춰 내 답도 단답형으로 했었다. 모두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읽었을 때, 문제들의 무게가 느껴졌다. 앞에서 밝혔듯이 때로는 재미삼아 한 것에도 자신의 생각이 묻어나기도 한다.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거기에 진지함을 더해 다른 질문들을 만들어 대체했다. 단답형이 아닌 질문들이다. 에릭 홉스봄의 이야기대로 죽음과 인생을 연결지어서 ‘자신의 묘비를 미리 써 둔다면?’이라는 아직은 답하고 싶지 않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싶은 질문과, 거기에서 출발한 조금은 짓궂은 다른 질문 ‘자신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질문은?’이다.
가족들의 생각을 더 잘 알고 싶다.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을,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 알고 싶다. 이들에겐 가볍게 재미삼아 하는 것으로 해서 묻고 싶다. 내게 한 질문이 아닌 좀더 가볍고 재미나게 질문을 바꾸어서 꿈에 대한 것도 하나 포함하고 싶다. ‘지금은 하지 못하는 데, 로또에 당첨된다면(경제적인 것이 제약이 안된다면) 꼭 하고 싶은 것은?’ ‘자신에게 꼭 물어봐 줬으면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니, 앞의 20개의 질문은 각 분야에 걸친 정말 좋은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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