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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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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2일 03시 41분 등록

하얀거탑 장준혁 애도주간을 시작하며..


10주동안 원잭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쥐락펴락했던 그 장준혁이 오늘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예상대로 올블로그에는 수많은 블로거들이 자신만의 특별한 시선으로 이 입체적인 캐릭터의 최후에 대해 다양한 느낌을 적어주셔서 원없이 하얀거탑 종영의 여운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매드카우님의 글을 읽다가 하얀거탑 OST 음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 김아중의 음성이 깔렸있던 블로그에 네곡을 깔았습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이 음악을 들을때마다 장준혁을 떠올리게 되겠지요. 그만큼 인상적인 캐릭터로 가득찬 드라마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 것 같습니다.


원잭속으로 들어온 하얀거탑의 캐릭터들..


가장 안쓰러운 캐릭터 - 이주완 전 외과과장

누군가의 지적처럼 이주완을 자극한 것은 장준혁의 지나친 '잘남'이다. 장준혁이 그저 자기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외과의였다면 또는 장준혁의 '잘남'이 최소한의 겸손이라는 미덕으로 포장만 되어 있었다면 그는 퇴임후에도 '영국신사'라는 자랑스런 닉네임을 훼손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진정 남에게 보이고 싶어했던 것처럼 고매한 인격자이며 존경받는 스승이었다면 장준혁의 천재성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는 진정한 조언을 해줄 수 있었겠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제자에게 쓴맛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기서부터 이주완 과장의 오욕과 굴욕의 길은 시작되었다.

후배인 노민국 교수에게 무릎을 꿇는 장면을 아내에게 보이고, 훨씬 더 정치적인 학회장으로부터 실패에 대한 추궁을 당하고, 사랑하는 딸에게 비난당하고, 영국신사라 불리었던 이 남자는 술에 취해 애꿎은 대리운전기사에게 억눌러 왔던 분노를 토해낸다.

그는 프로 악인이 아니다. 장준혁의 날카로운 반격에, 부원장과 학회장의 배신에, 딸의 이유있는 원망과 반항에 쉴새없이 휘청거리고 흔들리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는 끝까지 교활하지도 냉정하지도 못한 안쓰러운 사람이다. 장준혁의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그가 내민 화해의 손길은 그래서 진심일 가능성이 높다. 그의 말년이 더이상 추해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그릇된 애정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 - 민충식 원장

민충식은 장준혁의 장인이지만 영락없는 아버지다. 그것도 귀하디 귀한 삼대독자에게 모든걸 다 해주고 싶은 그런 맹목적인 아버지다. 장준혁은 무조건적인 힘이 되어주는 아버지를 동시에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아버지가 저지른 모든 더러운 뒷처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댓가를 치르게 된다.

민충식에게 장준혁은 남이 아니다. 바로 자신이며, 더 나아가 자신 이상이다. 그래서 그의 그릇된 애정은 차고 넘친다. 적어도 장준혁에 대한 그의 애정은 진심이다. 그에게 누군가에게 굽신거리거나 돈을 먹이거나 위협을 가하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일 뿐이며, 그의 또 다른 자아인 장준혁이 빛나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서있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떤 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 그도 암에 발목을 잡힌 장준혁을 구원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거의 처음으로 진심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건 장준혁에 대한 애도이기 이전에 자신의 희망이 쓰러져 가는걸 마냥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함에 대한 눈물이지 않았을까. 또 다른 자아를 잃은 그가 앞으로 남은 생을 제대로 살아갈지 의문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쿨함속에 비극을 내포한 캐릭터 - 강희재

아마 대부분의 남성들은 강희재라는 쿨하고 세련된 여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장준혁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강희재는 남성들이 꿈꾸는 진정한 여성상으로 불리우기에 손색이 없다. 도덕이나 윤리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비난받을 소지가 많겠지만 드라마속에서의 그녀는 첩보원이 되기도 하고, 냉정한 조언자이자 편안한 안식을 제공하는 어머니로 종횡무진 변신하며 한껏 매력을 뽐낸다.

그러나 그녀는 장준혁에게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역시 잘 알고 있는 슬픈 여인이기도 하다. 말없이 찾아와 또 말없이 떠나가기를 반복하는 장준혁에게 그녀는 또래의 보통 여자들이라면 한번쯤은 가질만한 섭섭함이나 불만족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것이 곧 그들의 관계를 끝장낼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쿨함과 세련됨이라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인물일 수 밖에 없다.

장준혁의 죽음을 알게된 상황에서도 그녀는 끝내 쿨함을 유지하는 믿을 수 없는 인내력을 보이지만 장준혁과의 마지막 전화통화앞에서 결국 자신의 비극적인 사랑앞에 오열하며 무너지고 만다. 왜 그녀는 장준혁을 찾아가지 못했을까. 자신의 연인이 그것을 바라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녀 역시 민충식과 더불어 장준혁의 존재감을 메울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원잭은 그녀가 정말 안쓰럽다.


결코 동정할 수 없는 캐릭터 - 우용길 부원장

우용길이야말로 현실에서는 결코 인연을 맺고 싶지 않은 그런 교활하고 잔인한 캐릭터이다. 또한 인간적으로 애써 이해하고 동정할만한 구석이 거의 없는 계산으로 똘똘 뭉친 자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으며 자신도 그렇게 대접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캐릭터다.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프로 악인인 셈이다.

장준혁의 죽음앞에서조차 그는 유일하게(사실 그게 더 이상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그에게 암에 걸린 장준혁은 병원운영에 타격을 주고 결국 자신의 이익에 악영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골치꺼리일 뿐이다. 의도적으로 티를 내지 않아도 그의 시니컬한 표정과 불쾌함이 묻어난 목소리가 모든 것을 대신 말해준다.

장준혁의 죽음은 그에게 여러가지로 쓸모가 많았던(자신에게 약점도 많이 잡힌) 수단이 하나 없어지는 안타까움을 주는 일 정도로 여겨질 것이고, 그에게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또 다른 말 잘 듣고 원장되는데 도움이 될만한 그럴싸한 후임 외과과장을 찾는 일이 아닐까.


장준혁이 우리에게 던지고 간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스스로가 장준혁을 비롯한 하얀거탑에 등장했던 주요 인물들에게 주어졌던 비슷한 선택의 귀로에 섰을때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과정에서 완벽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원잭은 영화, 드라마, 만화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속에 담긴 인생에 대한 메시지에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가 주는 강력한 여운과 에너지는 나 역시 자기다움이 물씬 풍기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큰 힘이 되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하얀거탑을 통해 장준혁이 던진 메시지는 꽤 오랜 시간동안 내 삶에 투영되게 될 것이다. 고맙고 즐거웠고 아쉽다. 잘가라 나의 친구 장준혁이여~
IP *.140.14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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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3.14 05:38:55 *.70.72.121
여자가 쿨하다는게 왜? 왜? 남자를 기다려야 한다는 거에요? 장준혁이 떠날 걸 알기 때문에 잡지 못하는게 쿨하다면 그건 더이상 쿨하다고 할 수 없죠. 그건 가면우울증일 뿐이에요. 꿈 벗이라면 안 그래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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