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김도윤
  • 조회 수 1961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7년 3월 12일 13시 35분 등록
‘미완의 시대’를 읽으며 에릭 홉스봄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역사의 파노라마를 정신없이 따라가는 동시에, 두가지 주제가 끊임없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그것이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한 몸뚱아리의 뱀인지 혹은 그냥 서로 다른 두 마리가 엉켜져 있는 것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하나씩 풀어내기로 한다. 하나는 “개인의 시대”에 대한 생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딛고 서 있는 공동체의 “기반”에 대한 생각이었다.

----------------------------

하나. 자신만의 행성을 찾아라.

“여행자는 정의상으로 자신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이다.” – 에릭 홉스봄

언젠가 읽었던 밀란 쿤테라의 책에서 그는 “‘앞으로의 시대는 바다나 우주가 아닌 인간의 무한한 마음 속을 탐험하는 오딧세이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타임지는 2006년의 올해의 인물로 ‘You’를 선정했다. 굳이 유튜브(youtube.com)의 놀랄만한 성공을 예로 들 필요도 없이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나서는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완의 시대>가 묘사한 20세기가 집단과 광기, 극단과 불연속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개인과 창조, 진화와 발견의 시대가 될 것 같다. 존 나이스비츠는 <마인드 세트>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지난 20세기가 이룩한 혁명적 변혁의 수혜자이다. 앞으로 다가올 반세기는 이러한 위대한 변혁을 받아들여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완성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뒤 장기간의 소화 과정을 거치며 영양분을 얻는 것처럼 혁명기에 나타난 수많은 발명은 혁신의 영혼을 살찌울 것이다.”

이미 곳곳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창조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놓여있는 20세기의 결과물들을 하나로 잘 꿰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길 기다리다가는 눈 앞에서 바로 엄청난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음을 활짝 열어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되 그곳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홉스봄이 말했듯이 “참나무나 삼나무가 아니라 지구의 절반을 누비고 다니면서 극지방에서도 열대지방에서도 잘 사는 철새”가 되어야 한다.

애플과 버진, 나이키와 스타벅스, 구글과 유투브 등 이 시대가 대표하는 기업 혹은 브랜드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개인의 영혼을 존중하고, 자아를 표현해 줄 수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세상은 돌아갈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영혼을 표현해 주는 한마디는 무엇인가? 21세기는 오직 자신의 행성을 찾는 자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당신만의 반짝이는 별을 찾아라.


둘.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그 약한 것들

“아무쪼록 기억하라 / 우리가 헤치고 나온 / 그 캄캄한 시대를” – 베르톨트 베르히트

작년 여름, 강원도에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가 나고, 산사태로 도로가 유실되고 끊어졌던 바로 그 때, 나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 있었다. 버스는 고속도로가 산사태로 막혀서 두 시간 째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아직 모든 길이 끊어지기 전이라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중앙선의 가드 레일을 넘어 반대편에서 오는 같은 회사의 버스를 갈아타고, 강원도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돌아나와 출발한 지 거의 열 한 시간이 지나서야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때 버스가 멈춰있던 두시간 동안 나는 읽고 있던 소설책 한 귀퉁이에 이런 문장을 하나 적었다. “우리가 굳건하다고 믿으며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기반은 사실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가?” 평소에는 잊고 살지만 우리가 당연한 듯 여기는 체제와 진리나 법칙으로 알고 있는 것들, 혹은 생활 속의 전기나 교통의 편리함은 이렇듯 작은 사고 하나만으로도 쉽게 무너지거나 부서질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 우리 팀의 부장님께서 다음과 같은 넋두리를 하셨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웠던 걸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만사를 제쳐두고, 맨날 투쟁한다고 목이 터져라 고함지르고, 아등바등 싸우고, 최루탄 가스를 마시면서 도망을 다녔던 걸까? 그렇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아는 한 친구 녀석은 계속 도망만 다니다 인생도 망쳐버리고……” 그 때는 무심코 흘려 들었던 말들이 홉스봄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 되살아났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웠던 것일까? 무엇을 바꾸기 위해 그렇게 피를 흘리고 인생을 허비했던 것일까? 우리는 지금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평화마저 생각해보면 얼마나 얇은 얼음판 위에 놓여 있는 것인가. 우리는 아직 분단 중에 있고, 우리가 당연한 듯이 누리고 있는 자유 또한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흘린 피와 땀이 오늘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잊지 말자. 역사가 말해주듯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약한 기반임을. 그리고 감사하자. 비록 그들의 혁명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성배가 아니라 성배를 찾아 나선” 그 소중한 마음이니깐. 자유와 정의를 위해 젊음과 목숨을 바친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은 오늘이 아닌 어제였을지도 모른다.

---------------------------------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이상 사이의 갈등은 20세기에 일어났던 두 번의 굵직한 혁명에서도 나타난다. 1910년대의 공산당 운동은 공동체의 이상을 향한 혁명이었고, 1960년대의 학생 운동은 개인의 가치를 해방시키려는 노력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실험은 실패로 끝난 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그들의 치열한 희생 위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이제 21세기는 실패한 혁명과 실험으로 가득 찼던 미완의 20세기를 뒤로 한 채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시대로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이상에 대한 갈등은 또 언제, 어떤 형태로 불거져 나올지 모른다.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21세기에 우리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나의 미천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역사는 앞으로 전진하는 직선이나 제자리를 맴도는 원이 아니다. 뱀이 고개를 치켜든 채 똬리를 튼 것처럼, 어딘가를 향해가는 나선의 원이다. 때로는 제자리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오늘은 분명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날이라는 것이 개인적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인류의 인간성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한다.

에릭 홉스봄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우선 자신부터 바꾸어야 한다.

IP *.249.167.156

프로필 이미지
leeyon
2007.03.13 11:35:39 *.60.237.51
끊임없이 움직이는 나선의 원 위에 있는 나는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정재엽
2007.03.13 17:06:50 *.76.81.52
도윤님-

글 잘 읽었습니다.

질문있는데요, 도윤님께서 말씀하신것은 즉,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이상을 위해 자신부터 바꾸어야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공동체적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을 배제하고 자신만의 행성을 찾아야 된다는 말씀이신 것인가요?
프로필 이미지
김도윤
2007.03.13 22:38:06 *.60.237.51
질문 감사합니다^^ 저도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모순 때문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풀어냈던 같습니다. 개인적인 결론을 먼저 말씀 드리자면 둘 다 중요하지만 우선 ‘자신을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구본형 소장님께서도 ‘자신의 문제부터 풀어야 다른 사람의 문제도 풀 수 있다’고 말씀하셨죠.

다음 과제를 위해 구본형 소장님의 “코리아니티”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장님은 서로 모순되는 가치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코리아니티’의 핵심 속성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 부족한 글에서 던진 거창한 질문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동양인의 ‘and’의 문화, 그리고 한국인의 ‘코리아니티’에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는 길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좁은 길이 아닌, 진정한 영혼의 길이라면 그 길은 전체를 위한 더 큰 길로 연결될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믿음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79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 [5] 香仁 이은남 2007.03.16 5706
1478 내 안의 나를 찾아가 이야기하자 [2] 이은미 2007.03.16 1724
1477 (002)조화와 상생의 풍물판 [4] 한정화 2007.03.16 2108
1476 스페셜리스트의 종말 [1] 강인묵 2007.03.16 1619
1475 [칼럼02] 글쓰기경영 [1] 송창용 2007.03.16 1670
1474 예술의 사회성(홉스봄의 정신에 나타난) [4] 최정희 2007.03.15 2995
1473 3기 연구원 선정 평가 기준 [5] 구본형 2007.03.15 1872
1472 제대로 보기는 봐야하는데.... [1] 기원 2007.03.14 1663
1471 [23] 그래도 [1] 써니 2007.03.13 1546
1470 Reader는 Leader가 된다. [4] 이희석 2007.03.13 1615
1469 열심히 산다는 것은 - 詩 안도현 [2] Alice 2007.03.13 2485
1468 구본형 소장은 “ ” 다. “ ”에 들어가는 문구를 찾는다면 [8] 정양수 2007.03.12 1849
1467 홉스봄, 그의 유목민적인 삶 [2] 김지혜 2007.03.12 1657
» 개인의 삶 vs. 공동체의 이상 [3] 김도윤 2007.03.12 1961
1465 변절하지 않는 법에 대하여 [1] 엄승재 2007.03.12 1641
1464 분별지와 무분별지 : 학습에 대하여 [3] 옹박 2007.03.12 2459
1463 칼럼001 꿈을 위하여 [1] 양재우 2007.03.12 1544
1462 [1] &quot;맹호부대용사들&quot; 노래의 이면... [3] 정선이 2007.03.12 3733
1461 연구원을 지망하는 이들에게 [10] 초아 서대원 2007.03.12 1826
1460 하얀거탑 장준혁을 보내며..ㅜㅜ [1] 이기찬 2007.03.12 2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