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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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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2일 17시 23분 등록


홉스봄의 자서전은 애써 관심 갖지 않으면 잊고 살기 쉬운 20세기 역사를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그의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내 안의 세상에, 나의 미래에 갇힌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는데, 쉽지 않은 책이지만 분명 이를 통해 나의 의식이 확장되고 역사와 시대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양차 세계대전의 참상들, 냉전시대의 살벌한 분위기를 겪어낸 그의 담담한 회상은 나의 인문학적 호기심을 자극했으며, 유럽과 나아가 세계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끊임없이 배우고 경험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시각이 좁아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여기서 배움과 경험은 책과 대중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것도 있지만, 직접 세상에 나가서 부딪혀 보는 것도 포함한다. 독일에 여행 갔을 때 내가 걸고 간 불교신자용 목걸이를 보고, 빨리 벗으라고 독일인 친구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독일에 나치에 대한 증오심이 그리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목걸이를 좌우로 뒤집으면 나치의 상징물이 된다). 또한 미국인들, 특히 뉴욕출신의 미국인들을 경멸하고 그들의 영어발음을 비웃는 프랑스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미국영어에 국한된 한국영어교육방식에 문제의식을 갖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은 대부분 해외로 돌아다니며 직접 체험해 보았을 때이다.


홉스봄이 그 어떤 역사학자보다도 객관적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학자적인 면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못지 않게 많은 국가를 돌아다니며 유목민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가 여러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는 것도 그가 보다 다양한 시각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소속감이라고는 느끼기 힘든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지만, 덕분에 그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할 수 있었고, 또 객관적으로 비교분석할 수 있었다. 밖에서 보면 안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객관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인에게 유목민적인 삶은 쉽지 않다. 일단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어 있거나 적어도 어딜 가도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전문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결혼을 했거나 자녀가 있다면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외국에서 겪을 문화적 충격, 의사소통의 어려움 또한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이해를 쌓고 관용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는 유목민으로써 한번 살아보아야 한다. 한국이 단일민족, 단일언어 국가이자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더 의도적인 노력은 필요하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 수가 날로 늘어가고 있고 한국인의 문화적/인권적 감수성의 부재로 인해 그들의 불만은 나날이 쌓여 가고 있다. 지난해 파리외곽에서 벌어진 아랍인들의 폭동처럼 한국내 이주노동자들의 불만이 사회문제로 폭발하는 것은 그리 먼 미래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다름을 우월 혹은 열등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한국인의 편협한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세상을 경험해보고 한국사회를 보다 냉철히 바라봄으로써, 갈등의 씨앗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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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7.03.13 16:57:05 *.76.81.52
지혜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럼 지혜님께서 말씀하신것 처럼, 결혼을 했거나 자녀가 있는 사람이 '세상에 대한 이해를 쌓고 관용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 유목민으로써 살아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단지, 위성방송을 보고, 해외 공중파 TV를 보고, 해외에 관련된 토픽등을 봄으로서 유목민으로 살 수 있을까요? 혹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의견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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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2007.03.15 09:38:15 *.187.238.121
정재엽님, 어렵지만 중요한 질문 감사드립니다.
제 글에서 적절한 대안제시없이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만 표현한 듯하여 반성이 되는군요 ^^;
질문하신 부분은 저도 항상 고민하는 부분입니다만,
저는 직접 보고 부딪히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이민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값비싼 돈 들여서 호화로운 여행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1년에 단 1주일이라도 다른 문화권의 향기를 맡는 것은
엄청난 돈도 대단한 의지도 필요 없는 일인데,
그저 아이들 때문에, 돈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아예 접어두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작년에 프랑스로 출장을 갔다가 파리 민박집에서
3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는 젊은 한국인 부부를 만났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까지 데리고 몇개월째 여행하는 그 부부가
아직도 대단히 용기있는 사람들로 간주되지만,
불과 5년 전에만 하더라도 상상도 해보기 어렵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다만 해외로 나갔다 오는게 정 불가능하다면
책, 영화, 대중매체를 통한 간접 체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름'에 대한 호기심이고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차이도 있지만 같은 것도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의 답변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구본형 소장님의 코리아니티를 읽으면서
연구원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그대로 책에 녹아있는 듯 했습니다.
함께 연구원이 되어 같이 고민해 볼수 있길 희망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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