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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6일 09시 14분 등록
나는 장구잡이였다.
교회청년들로 꾸려진 농활대에서 풍물패를 꾸렸는데, 나는 거기의 장구잡이였다. 풍물은 농활을 들어가는 마을 주민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으로 선정된 것이다. 농활이 끝나갈 무렵쯤해서 농활대와 마을주민 전체와 어울리는 자리를 마련하는 데 풍물놀이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우리의 음과 양의 어울림, 농사에 꼭 필요한 비를 부르는 자연의 소리, 흥겨움을 녹여낸 우리의 소리로, 여럿이 참여할 수 있는 것 중에 풍물만한 것이 있을까.

풍물에서 악기는 각각이 내는 소리만큼이나 하는 역할이 다르고, 각각 제 소리를 내어 하나의 장단을 연주해낸다. 모두다 타악기로 둥글둥글한 소리와 ‘음’의 소리와 비교적 카랑카랑한 짧은 ‘양’의 소리가 합해져 장단을 이룬다.
상쇠가 손을 들어 머리 높이에서 가락을 쳐서 다른 악기들을 불러 모으면, 그 소리에 다른 악기들이 화답해서 판이 시작된다. 느린 장단에서 시작해 어느덧 ‘덩따쿵 쿵따쿵 쿵따쿵 쿵따, 덩-따 쿵따쿵 쿵따쿵 쿵따’의 세마치 장단으로 옮아가고, 흥이 고조되어 감에 따라 점점 더 빠른 장단으로 옮겨단다. 서양의 3박자, 4박자, 8분의 6박자 하는 호흡에 맞춘 것과는 달리, 우리의 장단은 9박자, 12박자 등 심장의 박동에 맞춘 것이다. 점점 빠른 장단으로 바뀌는 것에 맞춰 심장이 빨라지고 흥이 고조되는 것이다.

장단이 연주되는 중에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휘모리를 하는 중에 ‘짝드림’으로부터 이어지는 부분이다. 상쇠가 쇠에 손가락을 댄채 막고 치는 ‘딱딱딱딱’ 소리를 내면 일제히 쇠(꽹과리)들은 조용해 지고, 둥글둥글 감싸는 소리가 주가 되는 장고와 북이 변형시키는 기교를 넣지 않은 ‘덩덩 쿵따쿵’ 만을 계속 쳐 상쇠를 기다린다. 이윽고, 상쇠의 ‘캥’하는 소리에 화답하는 다른 쇠들의 ‘메켕’하는 소리가 이어지면서 짝드림이 시작된다. 장고의 ‘덩덩’ 소리 부분에는 맑고 카랑카랑한 소리는 내는 상쇠가 ‘켕’ 혹은 ‘메켕’ 소리를 내고, ‘쿵따쿵’ 부분에서는 다른 쇠들이 ‘메켕’ 소리를 낸다. 부름과 화답의 소리인 ‘캥 메켕, 메켕 메켕, 캥 메켕, 메켕 메켕’ 하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진다. 그 후에는 상쇠는 머리만큼 위로 손을 올려 쇠를 치면서 ‘허이’하는 소리를 신호를 보내고, 일제히 쇠들이 휘모리의 변형되지 않은 장단으로 돌아간다. 이 때부터는 말그대로의 휘 몰아가는 점점 더 빨라져 가는 휘모리가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빨아질 수 없을 때까지 빨라졌을 때, ‘어어어어’하는 저절로 토해낸 사람의 목소리가 더해지고 폭발한다. 그리고 고요해지고, 잠시 후 느린 장단으로 다시 시작된다.

내게 북을 가르친 선배는 쇠, 북, 장고, 징의 4개의 악기로 하는 놀이라는 사물놀이 대신에 풍물놀이라는 호칭을 강조했다. 4개의 악기 말고 다른 하나의 중요한 악기가 빠졌다고 그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가장 중요한 소리를 내는 것을 물었었다. 선배는 그것은 사람의 소리라고 역설했다. 각각의 악기를 치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야 하는 데, 이때 상쇠가 머리 위로 들어올려 치는 것 말고도 목소리도 같이 내어 알리는 것이다. 단순히 알림만을 말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악기가 될 수 없다. 부리는 소리, 대답하는 소리, 흥에 겨움을 나타내는 소리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소리로 꼽힌다.


이렇게 장황하게 풍물의 한 부분을 묘사한 데는 이 신나는 놀이판의 특징을 다른 곳에서도 찾기 위함이다. 우선 내가 들어가고 싶어하는 모임과 비교해 보자. 그곳은 우리 한국인의 특징이 녹아있는 풍물판과 너무나 닮았다. 맑고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는 쇠에게 모든 것을 감싸는 징의 소리를 내라고 요구하지 않듯, 자기다움을 찾으라고 한다. 둥글둥글한 소리와 딱딱한 소리를 조합하여 낼 줄 하는 장구에게 ‘덩덩덩덩’하는 둥근 소리만을 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음과 양의 조화를 알고 상생을 아는 한국인의 특징대로, 다름을 받아들일 줄 안다. 각 사람은 풍물판의 악기가 제 소리로 그 안에서 어울어지듯 각각이 제가 가진 특성을 살려 자신의 소리를 내야한다. 하나하나가 장단을 제대로 연주해 내야 하듯, 하나하나가 자신의 몫을 성실히 해야함을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렇게 제 소리로 다른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 짝드림과 같이 제박자에 부르고 대답하는 것이 이어짐 같이, 묻고 답하는 것이 경쾌하게 어어져 나감을 요구받는다. 짝드림의 그 경쾌한 소리의 전달을 위해 징은 잠시 소리를 멈추고, 북과 장고는 단순한 장단을 연주해 줌과 같이 서로를 위해 때로는 조용한 배경이 되어줄 수도 있음을. 악기 뿐 아니라 사람 소리가 더해져 소리를 냄과 같이 일, 연구만이 아닌 가장 아름다운 소리인 흥을 돋우는 소리,서로를 격려하는 소리를 내야 한다. 휘몰아치듯 악기를 연주하듯, 자신의 힘을 모두 쏟아야 한다. 모두가 나서서 흥겨운 판을 짜야 한다. 풍물판의 흥은 악기를 두드리는 사람 뿐 아니라 소리를 듣는 사람까지 심장이 반응하게 하여 덩실덩실 어깨춤을 끌어낸다. 모임에서의 각각의 행위는 자신을 향함과 동시에 같이 하는 사람을 향하고, 또 전체의 어우러짐이 악기를 두드리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 다가가 심장을 자극한다. 그것은 세상으로 향한 두드림이고, 부름이고, 애정이다. 내가 속하고자 하는 거기에선, 모두 신나게 쏟아 붙는 휘몰아감같이 그렇게 제 몫을 내달려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남과 차별화시킴을 알고, 그것이 자신의 경쟁력이 됨을 안다.

나는 지금 풍물판의 흥겨움을 열망한다.
나는 열망한다.
이런 흥겨운 판 속에 내가 있기를 열망한다. 나는 다시 장구잡이가 되거나 쇠를 잡고 판속에서 놀고 싶다. 삼(麻)밭에 난 쑥은 붙들어 매주지 않아도 절로 곧고 크게 자라듯 내 소리를 내라고 요구하는 성장의 흥겨운 삼밭에 들어서길 열망한다.
나는 열망한다. 성장을 통해 자신의 소리로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감을 열망한다.

그리고, 나는 열망한다. 내가 속하고자 하는 모임을 만든, 사람을 귀하여 여겨 사람에게서 구하는 판으로 불러 모은 사람의 뜻을 복제하길 열망한다.
그것이 우리 한국인이 가진 경쟁력임, 그것이 모순과 추종을 넘어 선도의 자리로 이끄는 길임을 자신하는 그 뜻을 잇는 판을 짜길 열망한다.

나는 조화와 상생의 아름다운 풍물판이 많이 만들어지길 열망한다.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는 판이 많아지질 열망한다. 그룹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현장에, 프로젝트 수행에, 연구진들이 모임에, NGO의 활동에, 공동의 목표가 있는 모든 소규모의 그룹에서 실험되고, 목표를 이루기를 바란다. 판의 재미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멋진 판을 다시 짜는 사람들이 많아지질 열망한다.
IP *.72.1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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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16 12:48:26 *.145.76.216
정화가 자신을 찾고 보이지않는 눌림의 껍질을 벗은 모습이다. 그러니 옛날에는 부끄럽던일이 지금은 자랑스럽고 맥없이 흐느적그리던 용태가 바뀌어 열정으로 변하니 힘차고 멋있어 보인다. 지금은 코리아니티를 보면서 고민해야 하는데 자신을 표출하는 여유를 보이니 정화가 자랑스럽다.

그림과 글, 함께하는 바쁜 일정이 하얀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何天之衢 亨"
<하늘이 너에게 기회를 주니 너의 길을 힘차게 달리거라.>

한복입고 장구치는 모습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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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17 10:44:38 *.92.158.92
선생님 늘 감사합니다.
여기서 맺은 인연으로, 여기에 오면 여러분들 덕분에 매일 다시 태어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그러시죠?
선생님 아구 큰것으로 준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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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9 00:49:44 *.140.145.63
내용도 내용이지만 타악기의 소리를 글로 표현한 부분이 압권
이네요.. 특히 '메켕 메켕'은 생생함 그 자체네요.. 역시 소리조차
시각화하는 능력을 가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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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19 10:44:42 *.180.48.239
시각화라... ^^* 제가 바라던 바인데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기찬님 타악기 한번 배워 보실래요?
요렇게 가르쳐요.
전 장단을 무척 못외는 편이었는데, 우선은 소리를 제대로 구분 못해서이고, 그 다음으로는 제 입으로 그 소리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음으로 고저와 장단을 완벽히 구사하게되면 그때부터는 소리가 가슴을 치고, 몸전체를 타고 절도 나오지요. 그때 장단을 적어서 완벽히 외우게 하지요. 소리는 소리로 배워야 한다며.......
그땐 깝깝증나서 죽을 뻔 했는데, 그 덕을 지금와서 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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