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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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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9일 23시 02분 등록
마음을. 내려놓다.

새벽, 두 번째 책의 리뷰를 마무리하고 노트북을 접었습니다. 잠시 다음 과제인 연두색 책을 살짝 집어 들다 배시시, 웃음이 흘러 나옵니다. 책의 제목은 ‘일의 발견’입니다. 문득 제가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일인지, 놀이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분명 이건 생각보다 힘들기도 하고, 또 회사에서 일하는 만큼 열심히 하기도 하니깐 일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장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니 일이 아닌 것도 같습니다. 분명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니 놀이 같기도 한데, 과제를 하느라 책 속을 허우적대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지도 못하고, 봄은 오는데 맘껏 바람을 쐬러 돌아다니지도 못하니 놀이가 아닌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자, 마음을 잠시 내려놓자.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어깨의 힘을 빼자. 욕심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자. 바람도 쐬고 시도 한 편 읽고, 새로 나온 음반도 듣고, 주말에 결국 가지 못한 미술관에도 꼭 가자. 여기가 아닌 어디라도 다녀오자. 그리고 마음 편히 푹 자자. 그래 자자.

아마 다른 사람들과 글 만으로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모자란 글 솜씨로 제 생각을 풀어내고, 마음을 담아내야 하는 것이 어려웠나 봅니다. 사진 하나, 그림 하나 없이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답답하기도 했나 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무거운 마음을 살며시 내려놓습니다. 정신 없이 돌리던 쳇바퀴에서 내려와 물 한 모금 마시는 다람쥐처럼 멈춰섭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의 동굴 안,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 소리를 듣습니다. 투명하게 고인 물 웅덩이 위로 똑똑 떨어져 내린 물방울은 원 밖의 원을 그리며 사라집니다. 사라지는 물방울과 함께 마음도 사라집니다.



다시 첫 마음을 찾아야겠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과 오랜 두려움을 걷어내고 첫 발을 내딛던 꽉 앙다문 용기와 ‘자, 이제 시작이구나’ 하고 되뇌던 그 떨리던 가슴의 두근거림을 되찾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한 번 그려봅니다. 순수한 마음들이 모여, 뜨거운 열정들이 모여,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어울려 자신의 영혼을 이야기하는 그 빛나는 순간을 그려봅니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어떤 이는 노래 부르고, 어떤 이는 장구를 두드리는, 어떤 이는 얼쑤, 하며 추임새를 넣어주고, 또 어떤 이는 제 흥에 겨워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아름다운 순간을 그려봅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길에서 각자의 도를 깨쳐 지상에 없는 길을 가는, 허공 위의 위태로운 외줄 위가 안방 같고, 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 칼날 끝이 평지 같은 고수가 되어 맘껏 합을 겨루어보는, 일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일이 되는, 몸과 맘이 하나가 되어 무엇을 하든 ‘오직 할 뿐’인 신묘한 경지를 꿈꿔 봅니다.

언젠가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니체의 책을 들고 다니던 한 고등학생은 졸업 앨범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적었답니다. ‘원은 둥글지 않다.’ 그 땐 자신이 적어 놓고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젠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툭, 마음을 내려놓은 저는 분명 어제와는 다른 어딘가에 서 있는 거겠죠. 저는 또 책 속을 허우적대며 힘들다고 투덜대겠지만 분명 그 마음은 어제와는 조금 다르겠죠.

이제 불을 끄고. 봄날의 곰처럼 한 숨 푹 자야겠습니다.
IP *.60.2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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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3.20 01:22:53 *.48.44.248
이해합니다, 그 마음.
우리에게 이런 날이 있음을 기뻐합니다.
오늘 저도 여러사람들과 즐거운 자리를 모처럼 함께 했습니다.

도윤님 마음, 다들 같으리라 봅니다.
기쁘게 시작한 만큼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고 이 습관이 오래가길 바랍니다. 여러분들과 같은 마음으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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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3.20 09:55:15 *.218.205.173
김도윤님, 공감 백만번 가는 글이네요..
예전부터 바래왔던 것이지만, 막상 뛰어드니 쉽지가 않네요!
저도 어제 혼자 산에 다녀왔습니다. 간만에 하늘을 보니좋더군요.
봄날의 곰처럼 한숨 푹 주무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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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03.20 10:37:25 *.197.205.157
논리적인 글도 좋았지만, 이렇게 어깨 힘을 빼고 쓴 글은 더 좋습니다.^^ 만만치 않은 독서력을 그에 못지않은 감성이 떠받치고 있는듯하여 읽는 사람의 마음이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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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3.20 11:55:56 *.249.167.156
명석님의 과분한 칭찬이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향인님, 옹박님도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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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0 14:38:46 *.140.145.63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도윤님이
그려지는군요. 저와 상담을 했던 한 사람이 이런 메일을 보내온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도 자주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날은 무척이나 마음이 들뜨고, 흥분되었더랬습니다.
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지만 생활속에서 또 다시 사람들과 부대끼고,
제가 하려는 여러 시도들에 대해서 이해받지 못함을
느끼게 될때의 좌절감은 여전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럴때마다 슬퍼지는 느낌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초라해지기도 하구요.
그러나 다른 점 하나가 있다면, 제가 그 부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전에는 마냥 슬프고, 좌절하고, 지쳤있었다면.
이제는 왜 내가 이럴까....그 뒤를 조금씩 볼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힘을 준 글이라고 평해주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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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21 11:10:46 *.180.48.239
공감합니다. 저도 세번째 책을 읽으면서, 지난번 올린 리뷰를 다시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꼭 하고 싶은 욕심에 몰두하다가 저를 잃어버리고, 그리고, 다시 찾아 헤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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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도움
2007.03.22 09:29:40 *.230.252.30
하루 한 번은 꼭 들어와서.. 또 다른 도움을 ..힘을 받는 ..애독자 ^^ 입니다. 공감이 가는 글 감사히 만나면서.. 또 한번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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