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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2일 16시 39분 등록
“승객 쳐들어 옵니다. 승무원 준비하세요”
기내로 울려 퍼지는 익살스런 사무장의 방송에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려 내다본다.
40도가 넘는 땡볕의 바깥에 저 멀리 초라한 공항청사가 보이고 한 무리의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이 쪽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오고 있다. 그들의 손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 몸만큼이나 되는 전기제품이 양손에 가득 들려 출렁거린다.
한 100미터 정도 될까. 당시는 브리지가 없어 비행기까지 그렇게 걸어와 트랩을 올라가야 했다. 좌석이 지정되어 있으니 천천히 걸어와도 될 터인데 그 거리를 마치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 냅다 우르르 달려오는 승객들이 보인다.

마치 누가 먼저 도착하나 내기라도 하듯 있는 힘을 다해 무서운 기세로 뛰어오는 그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승무원들은 일사불란하게 광천수와 컵을 준비한다. 이윽고 땀이 범벅이 되어 탑승이 시작되면 그렁그렁 반가운 얼굴을 하곤, 규정을 초과해 들고 온 라디오 카세트며 그 외 전기제품을 둘 곳을 찾느라 잠시 부산스럽다가 여차하면 좌석 밑에라도 밀어 넣고 자리에 털썩털썩 앉기 시작한다. 그들은 늘 빠르고 통일되게 움직이며 누구 하나 다른 이와 비교해 특출한 행동을 하는 이가 없는 것이 이 승객들의 공통점이다.

앞으로 10시간 이상은 날아가야 서울에 도착하는 데도 자국국적 비행기의 탑승이 마치 이미 고향에라도 도착한 듯 환한 표정으로 흥분한 기세가 좀처럼 가라 않질 않는다. 우리는 승객이 착석하면 차가운 광천수를 가지고 나간다. 앞 열에서 시작해 마지막 열까지 한 사람도 빼 놓지 않고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면 곧바로 조종실로부터 이륙사인이 날라온다.
아주 짧은 시간에 신속하게 이륙준비를 끝내고 승무원이 점프시트의 벨트를 매면 잠시 침묵이 흐르다 느릿느릿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곤 이내 비록 한 때였지만 젊음을 바친 그들의 사막을 발 아래로 남기고 점보 747은 우렁찬 굉음을 울리며 서울로 한국으로 그렇게 힘차게 날아간다.

우리는 그들은 “중동 아저씨” 라 불렀다.
갓 입사한 새내기들은 여지없이 가장 험한 노선인 중동을 한 달에 두 번씩 가야만 했었다. 80년대 오일머니는 한국 근로자들을 중동으로 불렀고 나는 그 한창일 때 회사에 들어가 그들과 격투(?)하며 아랍의 여러 나라로 중동 아저씨들을 실어 날랐다.
20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인데 “일의 발견”이란 책을 읽다 보니 나는 어떤 일을 했었고 어떻게 지금까지 해 왔나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과거 첫 직장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그 회사를 그만두고 학생으로 잠깐 돌아갔다가 두 번째 들어간 직장은 처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저 아저씨들의 추억은 거의 잊고 있었다.

서점에 가면 수많은 저명한 미래학자들의 경영서적이 넘친다. 재테크 관련 다음으로 많이 쌓여 있는데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경영에 관한 서적이 출판러시를 이루고 있다.
전문가들의 저서이니 그대로만 하면 당장이라도 회사가 급신장할 것 같고 고용주와 고용인 모두 행복해질 것만 같다. 때때로 그런 책들을 우리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 생명이 짧다는 데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늘 불안하고 지금이 위기라고 경종을 울리는 시대를 살아오고 있으며 한번도 현재 풍족한 시절이니 즐기자는 말을 들은 적이 없던 것 같다. 도대체 언제 우리에게 풍요롭고 행복한 시절이 있었는지 다 지나고 나서 그 때가 좋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실제 우리가 살면서 지금이 좋다고 느낀 적이 있던가? 이러다가 근로자들은 늘 위기의식을 고취시켜 능률을 높이려는 회사에 둘러싸인 채 평생을 긴장상태로 보내다 인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요즘은 글로벌 시대라는 말로 경제의 잘못은 내 탓이 아니라 유동적인 세계 시장경제에 있다며 문제를 그 쪽으로 그럴듯하게 돌리며 부실경영의 책임을 회피한 채 회사의 회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고용해고나 월급삭감을 실시하여 월급쟁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여러 이론을 도입해 고용인에게 혁신을 강요하며 고용인 스스로의 자격에 의심을 갖게 하거나 무기력한 소시민으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은 때로 아주 고지식하여 절대 변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나를 보면서 주욱 느끼는 것으로 자신에게 비추어보면 그런 답이 나온다. 회사의 슬로건이 제 아무리 좋고 그럴 듯한 외국어의 유행 타는 카피로 포장되어 있어도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오니 하는 척은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대부분 적용되지 못하는 게 그런 것들이다.
왜냐하면 안 맞으니깐 그렇다. 몸에 안 맞는 옷은 불편해 이내 벗게 돼있다. 제 아무리 뛰어난 경영서나 비법이 있다 해도 서로 교감하지 못하면 무용지물로 변해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진정한 교감으로 가게 하는 것일까, 사람을 바꾸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절실하게 만들어 변화시키고 변화하려 하는 걸까.

“마음 가는 데 돈 간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상한 표현은 아니지만 나는 이 말이 참 핵심을 찌른다는 생각이다. 수 많은 경영 서적의 요점을 한 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결국 이 한 구절에 다 들어있다고 본다. 사실 마음이 가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하게 돼 있다. 솔직히 마음 가면 돈만 가나? 물건도 가고 사람도 가고 락앤락에 담은 반찬도 다 따라 간다. 표현이 거칠긴 해도 이렇게 가슴에 탁 와 닫는 말이 설명하기도 편하고 듣는 사람도 금방 와 닫는다.
(요즘은 돈 가는 데 마음 간다고들 하지만 서두……)

그럼 대체 어떤 마음으로 가고 오고 해야 하며 마음이 갈 만한 대상은 어떠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가 수없이 들어 본 감동이라는 단어 속에 있다. 그런데 이 감동은 늘상 듣는 고객감동이나 고객 까무러침이 아니라, 먼저 자신 스스로의 가슴을 휙 하고 뚫고 지나가 다시 뒤통수를 후려칠만한 그런 감동을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 본연의 선함과 도덕성이 그 바탕에 있어야 한다.

또한 마음이 갈 만한 대상은 마땅히 합당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도 인정하고 너도 인정하는 올바름이 있어야 비로소 감동이 시작되며 더 나아가 서로 납득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고용인과 고용주가 서로에게 진정으로 마음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그 때 그 시절의 또 한 장면이 떠 오른다. 힘들다고 징징대긴 했지만 우리가 중동 아저씨들에게 마음이 갔던 건 바로 이 장면 때문이었다는 생각이다.

사우디는 아랍권에서도 규율이 엄격해 여자들의 바깥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라 보통 호텔에서 갇혀 지내는데 오후 3시쯤이면 교포상회에서 쇼핑버스가 픽업하러 와 준다. 그나마 숨통을 틔어 주는 유일한 외출이라 다들 몸을 가리는 사우디식 복장을 하고 냉방 버스에 올라 타 상가를 구경하러 나간다.
에어컨이 없으면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의 더위인데 그 땡볕 속에서 논에서 일 할 때마냥 얼굴에 무언가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길 바닥에서 아스팔트 까는 일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이 우리버스를 알고 있는지 한 사람이 손을 흔들며 옆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는 듯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우리 버스를 향해 일제히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누굴까? 몸짓이나 모양새가 낯이 익다. “와! 한국 아저씨들이야.”
우리도 열심히 손을 흔든다. “아, 저 아저씨들…… 이 더운 데서…….”
소갈딱지 없었던 후배는 저 분들 저렇게 고생하는 거 알았으면 기내에서 더 잘해 줄 걸 하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우리는 버스가 커브를 그리며 돌아 갈 때까지 몸을 돌려 아저씨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또 흔든다. 역시 그 아저씨들도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똑 같은 자세로 그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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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22 16:48:55 *.167.128.183
향인의 글속에서 나는 향기는 변하지 않했는데, 꽃이 달라졌다.
아름다운 변화다. 연구원 레이스에서 변하는데 끝날 때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언제나 첫 글이 신비함을 좋아하는 걸보면 끼는 있는데, 애인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으니 참으로 이상 타!

향인씨! 메스컴에서 하는 소릴 다 믿었는 모양이지요.
주역에서 치자는 민초들에게
"擊蒙 不利爲寇 利禦寇"
<군대에서 줄을 바로 세우는 것과 같이 법질서를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이 격몽이다.>

현재의 대통령이 왜 인기가 없는 줄 아십니까? 다른 보수주의 자는 진실을 감추고 격몽으로 다스려 왔습니다. 그게 싫어서 진보주의자인 노무현을 시켜서 민초들을 위한 정직한 경제정치를 원했는데 오히려 거짓말하면서 달콤한 궁물을 먹던 시절마저 없어지고, 아파트가격은 뛰어 오르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는 불합리가 극성하니 국민의 민심은 돌아선 것 입니다. 만일 대통령게이트가 없길 다행이지 있다면 돌에 맞아 죽었 을 겁니다.

옛부터 치자의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가 진실하면서도 올바른 정치를 하는 세상이 올련지...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향인의 향취와 온몸에서 흐르는 끼가 승화되어 우리가 잘 살수 있는 경제의 대안을 만들길 기대합니다.

다음에는 어떤 꽃을 피우며 어떤 향기를 보낼련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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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3.22 17:40:03 *.70.72.121
다들 왜 이리 부지런 한지.. 코끝이 찡긋. 흑백 화면이 차르르 돌아가는 느낌, 다음 번엔 가요무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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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일
2007.03.22 19:20:42 *.46.159.113
주제를 떠나서 마지막 부분에서 먼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 그 사이에 흐르는 정과 안타까움이 깊이 전해져 옵니다. 전공책만 보다 보니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좋은 글귀는 오랜만에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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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7.03.23 07:02:50 *.210.111.168
언니의 뭔가가 터졌네요! ㅊㅋㅊㅋ~^^
또다른 새로운 모습에 잠시 당황했어요. ㅎㅎ

저는 이제서야 여유를 찾아가며 조금씩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 시간이 엄청난 반성의 시간이네요.
3기 연구원 1차 합격자들의 활약에 눈이 부실 지경이에요.
줄줄이사탕같은 글들은 완전 자극덩어립니다.

에너지 가득한 언니의 활약을 기대할게요.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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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3.23 11:47:56 *.54.31.44
아.. 좋다.. 진짜 향기가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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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3.25 05:05:03 *.74.127.104
답글, 격려 고맙습니다.
드디어 세 번째 과제를 모두 제출하였습니다.
어떻게 제가 이걸 다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ㅎㅎ
다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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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찬
2007.03.25 19:27:30 *.140.145.63
글을 읽다보니 저희 아버지께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고생하시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먼 곳에서 가족들을 위해 몇년간을 뜨거운 중동
에서 보내셨던 아버지와 가족간에 녹음된 테이프를 통해서 소식을
전하던 그때는 울기도 많이 했는데..

정치든 경영이든 자연스럽게 이치에 맞게 잘 흘러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가는데 마음가고 마음가는데
돈간다에 꿈벗 가는데 꿈의 길이 생기고, 연구원 가는데 꿈이 영근다고
덧붙이고 싶군요..^^ 고생하셨고 후회 없으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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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26 02:24:02 *.72.153.12
레이스를 안했으면 이런 글귀를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 하아~

그래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계속 글 올려주실 거죠?
사람 사는 것처럼 맛깔나는 글 계속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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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3.27 14:42:49 *.48.44.248
기찬님 그러셨군요..
정화님 고마워요.앞으로 또 밤샐 일 많겠네요.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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