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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일 12시 26분 등록
오늘 세상을 하직하면서 가장 먼저 하고픈 말은 제 육신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제 육신은 주인을 잘못만나 죽도록 일만 하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고 고생만 했습니다. 한 평생을 살면서 건강한 신체를 가진 행운도 있지만, 아무래도 많이 부려먹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제 육신도 편히 쉴 수 있겠지요.

저는 40이 넘어서야 비로소 제 길을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늦게 소명을 찾았다는 것을 무척 안타깝고 찾아다니는 노력과 시간을 후회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걸어온 길이 소명을 발견하고 제 일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늦게 찾은 길이었고, 제가 가진 능력이나 재주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고, 스승님과 선배님들의 가르침과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마 다시 살아도 이렇게 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감사하고 진정으로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오늘 제 인생의 마지막 날에 가장 먼저 기억나는 사람은 바로 제 아내입니다. 26살의 꽃다운 나이에 저를 만나 평생 반려자가 되었고, 늘 제 곁에서 저를 돌봐주었고 많은 조언을 했었고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내가 만난 여성 중에서 가장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결혼 초기에 아이들 키우고 뒷바라지 한다고 당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였지만, 제 소명을 찾음과 동시에 같이 노력하였고, 그 결과 저보다도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저의 사랑스런 아내는 제가 힘들고 선택의 순간에 있을 때 적절한 조언과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선택을 하게 하였고 늘 가정과 사랑의 소중한 원칙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덕분으로 행복한 가정을 가질 수 있었고 제 길을 자신 있게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내와 가족이 없었다면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원영과 수현도 우리 두 사람의 뜻을 잘 따라주었고 스스로 갈 길을 찾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을 보게 되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또 사랑하는 손자들까지 저에게 안겨주어서 정말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인가 봅니다.

저에게 안으로 힘과 용기를 준 것이 가족이라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은 세분의 소중한 스승님이었습니다. 우선 저에게 책읽기와 글쓰기로 세상과 만나는 법을 가르쳐준 스승님입니다. 제가 이 스승님을 만난 것은 30대 후반에 어느 세미나에서 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10여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스승님을 만나게 된 계기였습니다. 사제간의 첫 만남은 일반적인 하나의 장면이었으나 그 인연을 지속하면서 만나고 배우는 가르침은 가슴속에 뭔가 뭉클함과 짜릿함을 주었고, 독특한 가르침은 저의 한계를 한 단계씩 넘게 하였습니다. 저는 그 분의 연구원으로 1년간 혹독하게 가르침을 받았고 그 것이 제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스승님의 스승님이 돌아 가셨을 때 스승님은 중요한 길목마다 스승님이 거기에 계셨다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스승님의 존재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소중한 은혜를 갚는 길은 저한테 주어진 소명을 열심히 갈고 닦는 길이라 생각을 하였고 제가 힘이 들고 방황할 때 마음속의 바위같이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만난 스승님은 두 번째 이름인 소전(素田)이라는 호를 지어주시면서 평생 동안 풀어야 할 커다란 화두를 주신 분입니다. 처음 스승님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지식을 주었다면 이 스승님은 인생의 가치와 숲을 보는 식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분이 주신 소전이라는 호는 제 인생과 만나는 사람들, 하는 일에 대하여 늘 처음 시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서게 하였습니다.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삶의 터전인 밭을 직접 고르고 일구어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성실함과 우직한 끈기를 주셨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스승님은 대학원의 교수님이신 은사님입니다. 이분은 세종대왕 연구모임에서 만나 고전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분한테 직접 들은 논어강의는 지금도 제 마음을 굳건하고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있고, 힘이 들고 세상이 저와 맞지 않을 모순을 뛰어넘는 힘을 주는 에너지원이었습니다. 또한 평생 동안 한문을 읽고 공부하는 계기를 주어 제게 평생을 쓰고도 남을 만한 지식의 보고를 찾을 수 있는 길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 세분의 스승님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분들이 있어서 저의 인생이 풍요로웠고 늘 겸손하게 늘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견지하였습니다.

임종의 순간이 되니 그동안 살아왔던 오랜 기억들이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제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나하나의 장면에는 정말이지 계속 이승에서 살고 싶은 욕심이 드는 장면도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공무원으로 명예롭게 퇴직한 순간입니다. 정년은 아니지만 제 인생의 1/3을 보냈고, 내게 일을 주었고, 경제력을 주었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발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첫 책의 출판 기념회입니다. 세상에 나와서 처음으로 제 자신을 드러낸 장면이었습니다. 세 번째 장면은 제 회사 간판을 다는 날이었습니다. 각 장면마다 감동과 눈물이 다시 생각이 납니다. 그 감동과 눈물 속에는 늘 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격려해준 수많은 친구들과 선배, 후배들이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를 만나신 분들에게 제가 좀 심하게 대했거나 앙금이 있으신 분들이 있다면 다시 한번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직선적인 성격에 남을 많이 배려해주지 않는 행동으로 상처를 받으신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이 저의 못난 불찰로 여겨 주시고 모두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여기에 오신 분들에게 해드릴 마지막 얘기는 운명과 소명을 찾는 끈을 절대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희망과 뭔가를 찾는 것은 맨 마지막 밑에 까지 가서 온 몸으로 뒹굴고 처절함을 느껴야만 끈을 잡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용기를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마지막 숨이 멈추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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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海 송창용
2007.04.02 11:00:44 *.99.120.184
영훈아, 너를 알게 되어 정말 기쁘다. 너는 상대방을 적극적이고 활기차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솔선수범하고 궂은 일을 챙겨서 하는 따뜻한 마음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우리 1년 동안 열심히 해보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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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4.02 11:42:25 *.145.77.47
--- 13인의 합동 장례식장을 다녀 오고서 ---
이들은 어제 죽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태어 났다. 죽었으니 모든 욕망과 재산과 인맥이 끊어졌을 것이다. 너희들의 실력도, 학벌도,알고있는 모든 것이 없어졌다. 모든 것을 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열 세명 모두가 같다. 죽은 후 오늘 다시 태어 났다. 이것이 바로 초심이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아름다운 경쟁을 할 것이다. 모두들 동료를 걱정하고 모자라면 도와주고 친구가 힘들어하면 숙제도 대신해주고, 아프면 같이 병원앨 가고, 나의 마음을 다칠 말을 하여도 곱게 받아드리고, 나의 아픔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면서 같이 인생을 여행하라.

방금 태어난 동아는 거짓이 없다. 순수하고 약하다. 뭉쳐서 같이 생을 시작하라, 그것이 너희들의 소명이다. 일년후 새로운 나무가 되어 새상에 보일 때 그때 그대를 모두가 "작가 선생님"이라 할 것이다.

"比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方來 後 夫 凶"
<아름다운 경쟁은 너무 너무 길하다. 내가 그 근본을 가르치니 인간의 삶이 시작하면서 경쟁은 시작되고 경쟁함에는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신사도를 벗어난 부정한 경쟁을 하는 자는 하늘도 그를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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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4.02 12:36:11 *.99.241.60
초아 선생님.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분주하게 저녁준비하는데
많이 도와드리지 못하여 죄송하였습니다.
앉아 있는 것이 바늘방석 같았습니다.
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잊을 수 없는 생선구이였습니다.
늘 제대로 배우고 익히며
형제보다 더 진한 우애를 나누는 연구원이 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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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4.03 22:08:15 *.48.44.248
정말 영훈님의 솔선수범과 또 힘쓰는 일 마다하지 않으시는 모습 멋져보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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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묵대사
2007.04.28 14:07:53 *.177.93.249
우와~ 소전님, 넘 멋지십니다. 글속에 배어있는 살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그런데 소전님~ 칼럼 제목에는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을 위한 연설문이라 했는데...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것은 이미 죽은 다음일이니... 조문객들에게 남기는 말, 또는 유언장 정도가 더 좋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작성한 그날에 죽음을 준비하는 상태에서 작성하는 글인듯 싶은데4~50년 뒤에 죽는 상황으로 묘사된듯 싶네요. 스승 세분도 중요하지만, 죽기 바로 직전에는 가족들에 대한 글이 더 물씬 풍겨내야 하는것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시 태어나심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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