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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일 18시 17분 등록
<내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을 위한 인생에서의 마지막 5분 연설 >


그때 죽고 싶었지. 홀로서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거든. 죽겠다고 작정해 버렸거든.

모든 것을 돌아보았을 때 느낀 것들, 마지막 순간에 나로 하여금 가장 죄스럽게 한 부분이 바로 너희들과 그리고 내 부모님이었다. 그것만이 최후까지 남는 아쉬움이었어. 가장 큰 절대적 소중함이 그것 뿐이더라.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이 없고 죽겠다는 건, 너희에겐 이유 없는 어려움을 남겨주는 거란 가책과, 내 부모님께는 나로 인해 여태의 삶을 허망하게 종결짓게 하는 일이었지.

어느 비중이 더 크더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진실로 그렇단다.

단지 내가 부모이기에 앞서 또 부모님의 여전한 자식임을 볼 때, 파릇한 인생을 시작하는 너희와 생을 마감할 날이 그리 많이 남았다고 할 수 없는 노인의 삶을, 서로 공정하게 비교할 수 없이 정말 꼬옥 같은 입장이더라.

한쪽은 자식된 도리이고 한편은 부모의 입장인데, 나는 여전히 부모이면서 자식이었기에 말이다.

젊음에 자칫 이기적인 것이 있다면, 나이 먹은 사람들이 무언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점들을 해결해주었으면 하고 기대고픈 못된 습성이 있을 수 있는데,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논리일지 몰라도 살아본 사람과 미처 살아보지 못한 사람 중에 선택하라면, 마치 뉴스를 보면서 무심결에 일반적으로 내뱉어 버리듯, 그래도 어느 정도 삶을 살아본 사람들이 양보하는 편이 낫겠지 하고 치부해버릴 수 있다는 것, 조금은 덜 아쉬워 할 수도 있는 것이겠으나 내 입장에서는 결코 그럴 수도 없었다.

평생 애지중지 키우고 가르쳐서 오직 저 하나 잘 살라고 염원했는 데, 어의 없이 애물단지 되고 말았으니 아무리 염치 없는 자식이래도 무슨 명분이 될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같은 무게 같은 비중임을 도저히 어쩔 수 없더라. 내 부모님께 전해드리게 될 나의 부고장,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너희 천사 얼굴, 너희 이쁜 모습들.......

또 하나, 그동안의 내 청춘을 돌아보니 세상 참 편히 살았고, 그저 부모님께 받기만 하고 살았더라. 너무 많이 넘치게 말이지. 그게 오히려 원인이 될 수도 있었으리만치 과분한 삶이었더라.

한 번도 안 되는 것이 없는, 불가능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오직 내 자신만이 관건이고 일상화되어 있었던, 부족함이 없이 밝고 맑고 환했던 지난 시간들 뿐이더라.

비록 너희는 돌보지 못한다하더라도 내 부모는 다시 잘 섬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잘하지 못했다. 말벗이나 해드린 정도지.

그러면서 이를 악물고 살아보자 다시 마음 돌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미 죽음까지 결심했었기에 더 이상 두려울 것도 문제될 것도 없었다.

나는 최대한 강해지려고 노력했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래도 괴로움과 서러움을 달랠 길 없었지만은, 그때마다 내 곁에는 나를 염려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곤 했는데 그때 가장 기억에 새긴 것은 내 친구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얘야, 열심히 살아라. 먼저 일을 찾고 일에 매달려 바쁘게 살아라, 살다보면 나아질 게야. 그래도 너는 볼 수 있잖니? 나는 볼 수도 없다. 그러니 꼭 열심히 살아. 시간이 약이란다."

친구와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제까지 편하게 지내는 사이고, 서로 가정환경이며 식구들까지 다 알아서 흉허물이 없는 막역한 사이이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인가,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었다. "애, 오빠가 죽었어." 친구 오빠들은 내 친구와 두어 살 차이로 남자 쌍둥이 형제였다. 나와도 내 친 오빠처럼 재미있게 잘 지내곤 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실험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그만 젊은 넋을 하늘에 맡겨버렸던 것이다.
생때 같은 장성한 자식을 어느 날 갑자기 잃어버린 기막힌 부모의 설운 심정을 뉘라서 가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얘야, 그래도 너는 볼 수 있잖니." 첫 직장에 취직해 얼마 안 되어 마냥 좋아라하던 사랑땀도 채 못한, 저미고 에이도록 가슴 속 깊이 자식을 묻어 버리고야만, 어머니의 담담하고도 처연하며 분명하신 말씀이셨다. 그때 그 한마디를 새기며 흔들리고 서러운 마음을 다스리고 잡아가며 미친 듯 살았었지.

나는 굴레에서 해방되어 살면서 너희들은 거두지 못하며 사는 죄스러움이, 언제든 여차하면 죽어버리겠다는 마음을 서서히 걷고, 일말의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더욱 진하고 커져만 갔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 사무친....... 그리움....... .

지금 이 일을 하게 된 것도 너히들과 헤어진 후 10년이 지나고 난 어느 때, 기다림에 지치고 삶의 정체성에 허덕일 때에, 비로소 내가 한 분의 스승을 만나게 되면서란다.

평생의 염원이고 간절한 소망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정하지 못해 서성이기도 했고, 어쩐지 자신감을 잃어버려 주저하며 망설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이 그리 길지 않았단다. 나는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이 생각했어. 참으로 운이 좋았지. 언제나 미루어 두기만 하다가 결국 다 포기하고 언젠가 모르게 잃어버린 꿈과 희망과 삶의 목적과 의미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마침내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고 하나씩 해나가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제법 근사한 책들을 쓰게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그리고 지금 너희와 함께 해온 이 일들 (써니의 집)이 바로 그때 시작한 내 인생의 가장 진실하고 옳은 선택이었다. 그때 내가 변화경영연구소를 외면해 버렸다면, 구본형사부님과 초아선생님을 만날 수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너희에게 주장하기보다, 말로 가르치려 애쓰기보다, 나의 일상적 취향의 삶 자체를 담아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

인생을 너무 성급히 결정하지 말거라. 다소 조금 더디더라도 신중하고 바른 태도로 살아라. 너희들과 함께 너희들 주변을 생각하고 언제나 균형 잡힌 자세로 치우침이 없도록 애쓰거라. 남의 어려움이나 실패를 비난하거나 피하려들기보다, 보편적 사고로 그들이 주는 현상과 교훈을 생각하라. 그래야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게 되느니. 너희들이 진정 어느 상황에 이르러야 자유롭고 즐거운 생을 누리게 되겠는지를 생각하여 찾고 실행하고 힘쓰거라.

정말 고맙다. 많이 미안했다. 너희는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며 희망이었고 자랑이었다. 사랑한다. 너희로 인해 행복했고 참 아름다운 생이었으며 후련히 마음껏 살 수 있었단다.

우리 함께 모여 여러 나라 돌아보며 즐겁게 여행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이제 편안히 쉬련다. 내가 미처 이루지 못한 더 나은 일들은 너희들이 더욱 힘쓰고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거라. 언선생과는 앞으로도 형제처럼 지내면서 서로 돕거라.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 거란다. 무덤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생을 갈구하라. 너희를 믿는다.

인생은 사랑이다. 또한 적절한 때 바르게 변화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잠이 오는 구나. 꽃향기가 좋으네. Power of love! (셀렌 디온의 노래를 들으며) 나... 는 ... 행... 복 ... 하 ㅂ ... ㄴ ...ㅣ ... 다. 안녕.......


나와 함께한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과 또 꿈 벗을 통해 만나게 된 이 많은 좋은 사람들 ........ ( 한 사람씩 눈을 맞추며... )

(속으로 독백) 이곳까지 이렇게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들과 함께한 즐거운 삶, 보람되고 흥겨웠습니다. 우리들의 고운 꿈과 예쁜 소망, 치열했던 승리는 참으로 신났었지요. 다 담아 가렵니다. 당신들 많이 보고 싶을 거에요. 그립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또 만나겠지요.......
사랑해요. 안녕....... .


이 글을 나의 사랑하는 꿈나무와 가슴앓이로 인해 현재 투병에 계신 오랜 벗 선화 어머니께 바치면서 우리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꿔봅니다.
IP *.70.7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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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4.03 22:11:43 *.48.44.248
가슴이 짠해지는 글이네요.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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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7.04.08 23:44:36 *.77.216.97
어디를 간다고 가십니까? 이렇게 당신은 우리곁에 있는데...
저녁에 지는 듯한 태양(Sunny)은 내일이면 다시 떠오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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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묵대사
2007.04.28 14:20:02 *.177.93.249
우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입니다. 정말 찡~하네요...^^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사랑하는 꿈나무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 "잠이오는구나~ 안녕..." 은 마지막 눈을 감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 같았는데... 그 다음에 다시 많은 친구들과 조문객들에게 추가로 말을 이어간 것은 옥에 티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을 연상한듯 싶은데...^^ 글 잘봤습니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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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30 07:25:59 *.70.72.121
묘사를 잘못했군요. 친구들과 조문객에게는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하는 독백이었는 데... 숨이 금세 딸꾹 할 것 같지는 않아서요.
세상에 미련이 많이 남을 지도 모ㅡ르겠고 한편으로는 의연해 지고 싶을 것 같은 데 그렇게 후련히 살다 홀연히 갈 수 있으려는지...

근데 초아선생님 북세미나와 뒤풀이에 들렸더랬는 데 누구신지 잘 생각이 안나네요. 반가워요. 환영합니다.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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