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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일 20시 58분 등록

삶과 죽음의 어울림
<내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을 위한 인생에서의 마지막 연설 5분>


장례식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지금 이 순간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슬퍼하지 마시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죽음이 가식적인 가면을 벗고 여러분이 가진 참모습을 찾는 계기가 된다면 저에게는 또 하나의 어울림이 될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러분과 어울린다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삶과 죽음의 어울림이라. 참 모순되지만 서로 통한다는 진리를 일생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지금 그 깨달음을 여러분과 나누어 볼까 합니다.

삶은 곤충이 변태과정을 겪듯이 아름다워지려고 자신의 허물을 벗는 과정입니다. 허물을 몇 번을 벗는가 그리고 허물을 언제 벗는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허물을 벗을 때마다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제가 그 진리의 증거가 되고자 합니다.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변하는 첫 번째 계기는 죽음이었습니다. 같은 직장을 다니던 친한 동료 교수의 죽음입니다. 그 당시의 충격은 아직도 마음을 저리게 합니다. 안팎으로 어렵던 시기에 학교의 미래를 위해 건강도 챙기지 못하면서 불철주야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휴가차 떠났던 가족여행 중에 뇌출혈로 쓰러져 끝내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누적된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이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나를 충격에 휩싸이게 하였지만 그보다 더 심한 것은 학교와 학교 내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사후에 드러난 주변 사람들의 태도와 언행이 그렇게 싸늘할 수 있는지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심지어 “잘 죽었어!” 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그나마 붙여있던 정마저도 단숨에 끊어버렸습니다. 인간에 대한 배신감, 권력에 대한 인간의 나약함, 이기주의, 겉과 속이 다른 지성인의 이중적인 태도 등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혼란의 늪에 빠트렸습니다. 게다가 아버지 또한 위암수술로 생사를 목전에 두게 되자 삶은 점점 더 늪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이때부터 나의 삶이 절실해졌습니다. 세상을 회피하지 않고, 세상과 부딪히지 않고 오히려 어울릴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늪 속에서 헤어나고 싶었습니다. 그 때 나를 꺼내준 생명줄이 바로 ‘나를 찾는 여행’이었습니다.

두 번째 허물을 벗는 시기는 어떤 삶을 만나고부터입니다.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분의 삶이었습니다. 바로 구본형선생님의 삶이었습니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라는 소명을 갖고 몸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실천하는 삶이었습니다. 그 분의 실천 속에는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논리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웅변되지 못하는 잡담이며, 경험의 시험을 거치지 않는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이다.” 그 분을 닮고자 아니 내 자신을 찾고자 모든 가면들을 벗겨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워서 그동안 익숙했던 것들과 결별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내 자신의 기질, 재능 그리고 경험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요약하고 정리를 잘하는 능력을 활용하여 교수와 강연가로서 성공하였고, 매사에 진지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은 항상 배움을 갈망하는 불씨가 되어 참스승의 길을 걷게 채찍질하였고 생산적인 일을 좋아하는 성격은 프로젝트 경영에 작은 힘을 보탰습니다. 변화경영 연구원의 활동을 디딤돌로 20권의 책을 출간하였고 그것을 기회로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연구원들의 책뿐 아니라 꿈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책들도 출판하였습니다. 이 사업은 지금처럼 훌륭한 꿈벗 재단으로서 위치를 자리매김하는데 든든한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삶은 어울림입니다. 어울림이 맺어지려면 주고받음이 기본입니다. 이 주고받음의 관계가 아름다워지려면 자신이 먼저 세상에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먼저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밖으로부터 받으려고 합니다. 부, 명예, 권력, 행복, 안정 등 먼저 받으려고만 합니다. 어울림은 먼저 내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태어날 때 하느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고, 지금까지 지니고 살아왔으며, 죽을 때도 함께하는 우리만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가 세상에 내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주변 상황으로 자신을 정의하려는 습관이 항상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 습관이 우리의 참모습을 가립니다. 진정한 자신에 가까워지려면 자신의 어두운 면과 결점도 솔직해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세상과 어울릴 수 있습니다.

이제 또 다른 세상과 어울리기 위해 또 하나의 허물을 벗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의 죽음이 여러분 삶의 허물을 벗기어 진정한 모습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끝으로 징그럽고 보기 싫은 번데기 시절부터 옆자리를 지켜준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 태훈이와 태규, 그리고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흉한 껍질을 벗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 ‘세상과 아름답게 어울린 사람’으로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세상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뵙기를 기대합니다.

2047년 3월 31일
余海 宋 昌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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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4.03 22:06:22 *.48.44.248
그렇게 잘 어울린 분으로 남아있을 꺼에요.
진정을 가지고 쓰신 정성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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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묵대사
2007.04.28 14:45:04 *.177.93.249
우와~ 마지막 말씀... 흉한 껍질을 벗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어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말씀... 넘 멋지십니다. 앞으로 책 20권 출간과 출판사 운영, 꿈벗 재단을 만드시는데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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