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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3일 03시 18분 등록
너무나 아쉽습니다. 나는 이곳을 정말로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나다운 삶을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해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헤아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30년 남짓한 시간을 살면서, 방황과 고민이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시간이 10년이 넘습니다. 내 삶이 아닌 삶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생활에 마음을 못 두면서 내 갈 길을 모르겠는 그 답답함에 숨이 막혔습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저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시도다운 시도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시간이 멈출 줄 알았다면,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방황과 고민의 시간이 인생의 3분의 1이 넘어버리고 말았군요.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었으므로 무언가를 해야 했습니다. 전환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작년 여름 ‘내 꿈 첫 페이지’라는 자기계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진정한 나와 대면하기’의 첫 걸음을 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제가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를 보고 나의 길을 찾고 만드는 것이 하나의 여정임을 알았습니다.

나는 올해 초,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라는 곳의 연구원에 도전하여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불과 지난주의 일입니다. 여기서는 매주 책을 읽고 북 리뷰와 칼럼을 씁니다. 다른 연구원들과 교류하며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서로 촉매와 자극이 됩니다. 제가 연구원이 되려 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연구원 생활은 나의 길을 찾는 여정에 중요한 길목이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아니, 제가 그렇게 만들려 했습니다. 기대가 컸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이걸 못해보고 이렇게 떠나야 한다니요. 모처럼 어렵게 얻은 기회를 이렇게 놓아버려야 한다니요.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나는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본받을 수 있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이건 행복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엄마 아빠, 저 참 무심한 큰 딸이었죠. 좋아도 좋다고 하지 않고, 힘들어도 힘들다 하지 않고, 애교도 어리광도 부릴 줄 모르고. 부모님 마음도 몰라주고. 투정도 많이 부리고. 서른이 넘었는데도 저 아직 많이 덜 컸죠?

저는 엄마 아빠 사랑하지만 솔직히 미운 순간도 많았답니다. 그 때는 제가 참 어렸어요. 엄마 아빠 더 많이 사랑해드리려 했는데, 이렇게 빨리 가버리고 맙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더 많이 표현할 걸.......

전 제가 웃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제 길 찾아 즐거운 마음으로 사회 생활하는 밝고 활기찬 모습 보여드리려 했어요. 좋은 사람과 가정 꾸리고 오순도순 화목한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럼 엄마 아빠가 정말 기뻐하셨을 거 같아요.

전 그동안 받기만 했어요. 정말로 그저 받기만 했어요. 이제는 저도 드리고 싶었어요. 꼭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행복한 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말 그러고 싶었는데.......이렇게 자식인 제가 먼저 가게 되어 아픔을 드리고 맙니다.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동생들에게

얘들아, 너희들은 때로는 내 친구였고, 나이는 어려도 때로는 나는 너희들에게 배운 것이 많았다. 편안하고 즐거웠어. 우리 또래에는 형제 많은 집이 별로 없는데, 난 내 형제들이 많다는 게 정말 좋았어. 각각 개성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른데, 그런 우리가 서로 같은 집에서 부딪치며 어울리고 사는 게 난 참 재밌었다. 아웅다웅하기도 했지만, 기쁨을 서로 나누고 어려울 때 서로 힘이 되어주는 우리였지. 내가 계속 살아있어도 우린 앞으로 분명 그랬을 거야, 그치?

내가 없어도 좋은 마음 계속 가져가렴. 서로 아껴주렴. 그리고 부모님도 잘 챙겨드려라. 엄마 아빠 나이 드시면서 뒷모습이 자꾸 약해 보이는구나....... 얘들아, 나는 너희들이 나의 형제임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해. 진실로.


친구들에게

난 말이야, 30년 남짓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어. 그런데 난 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면에서는 난 행복한 사람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만난 좋은 사람들 그 대표격이지.

난 내가 힘들 때 옆에서 북돋아 주고 일으켜 준 그 정을 잊지 못해. 내가 고3때였다. 무슨 일 때문인지 난 너무 힘들어서 울기까지 했던 날이 있었어. 그 때 친구인 내가 가는 길에 따라 나와, 손에 쪽지를 쥐어주며 손을 잡아주었다. ‘민선아, 힘내라.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아무것도 힘이 되지 못하는 작은 내가 밉구나.’ 내용은 평범한 위로였어도, 마음이 담긴 한 마디는 나에게는 정말로 힘이 되어주었단다. 그리고 가르침이었어. 나는 아직도 네 생각 하면 그 때 일이 생각나곤 해.

우리 재수할 때 힘들고 불안했지. 넌 그런 우리에게 항상 활력을 주었어. 난 네가 있어서 그 시간이 외롭고 힘들지 않았다. 든든했어. 너는 나를 잘 알아주고 옆에서 많은 에너지를 준 친구였다. 대학을 가고 사회를 가도 너는 여전히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였다. 네가 내 친구임이 나는 참 좋았다.

너희들을 알고 친해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단다. 앞으로도 행복하기를 바래.


남자친구에게

우리의 만남이 너무 짧았구나. 반년도 안 되네. 아쉽다. 그리고 슬퍼. 많이 슬프다.

우린 서로 참 많이 달랐다. 그치? 그 다른 것들을 알고 받아들이기에는 반년도 안 되는 시간은 정말 짧았구나. 난 아직 널 더 알고 싶었는데 이젠 그럴 기회도 없어져버렸어.

그 동안 우리 참 사소한 걸로 많이 싸웠다. 그 당시에는 대단한 일 같았는데, 아니 대단한 것도 아닌데 왜 다투고 있는지도 몰랐었지. 근데 한참을 지나고 나서 내 생각을 해보니,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내 속이 좁았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너는 서로 맞춘다는 표현보다, 같이 섞이면서 흘러간다는 말을 좋아했다.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사귀기 전에 같이 도서관 같던 날들, 처음 사귀자는 프로포즈 받았을 때, 처음 손잡았던 날. 그 처음의 설렘과 떨림을 기억해. 그리고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 같이 책 읽고 글 쓰고, 손잡고 거리를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 너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 나는 행복하였다.

난 가끔 네가 힘들어 하는 걸 본다. 밝고 쾌활한 웃음 뒤에는 눈물도 있다는 걸 알아. 그런데 이제 네 옆에 있어 줄 수가 없구나. 힘이 되어줄 수가 없구나.
그래도 잘 될꺼야. 잘 할 수 있을 꺼야.

내가 계속 살아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너무 슬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남겨진 자에게는 남겨진 자의 몫이 있대.
행복해라. 내 몫까지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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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4.03 22:20:35 *.48.44.248
이거 읽으니깐 진짜로 가슴아프네.
죽지마라 호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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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4.05 05:49:19 *.112.72.193
누나.. 이번 글 참 좋았어요. 감정이 묻어 나오는 글, 참 오랜만인 것 같아. 그런데 승완형처럼 나도 욕심이 많은가보다. 장막을 걷고 한발짝만 더 앞으로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큰 딸'로서의 의무감, 자의식일랑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말은 쉽지만 .. -.-;; 그래도 한발짝만 더 나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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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묵대사
2007.04.28 15:02:09 *.177.93.249
우와~ 죽는 그 순간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지난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시는 모습이 넘 좋습니다. 글 솜씨도 넘 좋구요. 5분 연설문의 마무리가 좀 부족한듯 싶고, 어느틈에 부모님과 동생들, 친구들과 남자친구에게 각각 보낼 편지까지 완성한 것을 보니... 표현력이 정말 풍부하십니다. 맨앞에 연설문이란 소제목이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듯 싶습니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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