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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3일 12시 02분 등록
■ [칼럼] 어느 청년, 죽음을 갈망하다~!

개봉된 그 해, 어느 언론에서 최악의 외화 4위에 꼽혔던 <아마겟돈>.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엄청나게 울었다. <타이타닉>, <클래식>과 함께 내가 가장 많이 울면서 본 영화가 <아마겟돈>이다. 그 때, 함께 영화를 보았던 윗집 처자는 아직도 종종 그 울음을 살짝 놀리곤 한다. 나는 왜 울었을까?

슬퍼서?
부분적으로 맞다. 나는 브루스 윌리스의 죽임이 참 슬펐다. 그도 살아서 함께 돌아왔으면, 하는 유아적인 감상에 빠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자면, 슬퍼서 운 영화는 <클래식>과 <타이타닉>이었다.

그럼 기뻐서?
이 말도 부분적으로 맞다. 나는 기뻤다. 브루스 윌리스의 모습 속에서 발견되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원대한 이상이 멋져보였고,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는 메시야적 행위를 했고, 그 행위가 나에게 한없는 희열을 안겨다 준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최악의 외화에 꼽혔다. 지구는 위기에 처하고, 그 위기는 영웅에 의하여 구출되고, 그 영웅은 항상 미국인이라는 점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의 저변에 깔린 이데올로기와는 관계없이 이 영화가 슬프고 기뻤다.)

내 눈물의 원인은 브루스 윌리스의 영웅적 행동이 희생적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죽음까지도 뛰어넘는 희생 정신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식으로 나를 울린 영화는 또 있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지어, 외계 비행체로 자폭을 감행한 그 이상한 과학자(?)의 모습에서, 에서 자신의 부상 때문에 팀이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군인의 모습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20대 초반의 나는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나도 이렇게 정의를 위하여 죽어야지!’

나의 이런 모습이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죽음관이라는 사실을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젊은이에게 죽음은 극적이고 영웅적이며 낭만적이다. 그리고 젊은이와 여성은 사랑과 진실과 정의를 기꺼이 죽는다.” 나는 이 구절에 맞장구를 쳤다. 나는 기꺼이 국가를 위하여 내 한 목숨 던질 수 있는 애국자였다. 어제도 <이장과 군수>를 보며, 마지막 장면에서의 변희봉씨가 열연한 그 비열한 모습에 하마터면, 욕을 내뱉을 뻔 했다.

하지만, 진실과 정의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나의 비장함과 부조리를 싫어하는 의로움이 실제 상황에서 그대로 삶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모를 일이다.
나의 이런 생각이 다분히 추상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알랜 B. 치랜도 젊은이들의 정의로운 죽음 지향성에 대하여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죽음은 단지 추상적인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5년 전 <특별한 5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내 생애 마지막 5일이 남았다고 가정하고 5일을 살았던 적이 있다. 다음은 그 때, 첫째날을 보내고 쓴 글이다.

생애 마지막 5일을 앞둔 채, 첫째날을 맞았다.
7시에 일어나 박수를 치며 하나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하루 시작!
"오늘 하루를 멋지게 살아가겠습니다. 내게 주신 하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전에 책을 읽었다. 『주와 같이 길가는 것』이라는 책을 읽으며
묵상의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 그분께 달력이 있다면 나의 생일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을 것이다.
그분이 차를 몬다면 범퍼에 내 이름이 붙어 있을 것이다.
천국에 나무가 있다면 나무껍질에 내 이름을 세기셨을 것이다.
그분께 문신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문신의 글귀도 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이사야 49:16)"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
내 마지막 5일도 나와 동행하신다는 생각에 평안했다.
오전 내내 독서를 하다가, 12시에 수영을 했다.
수영을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마치 내 안의 (비록 많지 않지만)스트레스와 더러운 생각이 모두 씻겨내려간 기분이다. 이발을 하고, 서점에 잠시 들렀다.
책을 한 권 사고, 친구 상욱이를 만났다. 준비해 둔『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선물하였다.
그리고, 함께 영화 [나쁜 남자]를 보았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상욱이는 마치 내가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란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석이 넌 정말 내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놈이야. 내가 너 때문에 교회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이라고 말했다.
무척 기뻤다. 너무 너무 기뻤다. 상욱이랑 헤어지고, 예정대로 판중이 형을 만났다. 늘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준다. 멋진 형이다.
동생이랑 논쟁을 할 줄 아는 마음이 큰 사람이다.
대화 내내 나이 때문에 나를 무시하는 법은 전혀 없다.
그렇게 형이랑 네트워크 마케팅, 휴머니즘 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행복하다. 젊은 날에 훌륭한 지인이랑 삶에 대해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이...
판중이형이랑 헤어질 즈음에, 상욱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굴 보고 싶댄다...그래서, 다시 상욱이랑 만났다. 함께 얘기하고,
고기 구워먹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었다.
독서 리뷰도 하나 썼다.
나머지 4일도 이렇게 행복하게 보낼거다. 내 생애 마지막 4일이니까..

글에 절박함이 없어 보이는 것도 죽음에 대하여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위의 글에 다음과 같은 더욱 겁 없는 말들을 덧붙여 두었다.

저는 죽음이 무섭지 않습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하게 됩니다.죽음을 생각할 때, 내가 가진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기쁨이 삶의 하나이듯이 슬픔도 삶의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삶이 멋진 인생의 과정이듯이 죽음도 인생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절반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죽음 앞에 선 나는 분명히 일상의 소중함들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나는 꽤 이 진지하게 이 <특별한 5일 프로젝트>를 실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프로젝트 내용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고 일상적이다. 그 이유에 대한 알랜의 해석은 이렇다.
“죽음과의 조우는 개인으로 하여금 평범한 일상의 삶을 긍정적으로 만든다.”(p.151)

나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통하여 분명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내 생의 마지막 4일도 저는 일상적인 일들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기뻐했다.
수원대 이주향 교수님은 큰 이모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큰 이모는 죽음을 생각하며 사시냐고.
“죽을 때가 됐는데 왜 죽음을 생각 안 해? 나이가 들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풀어져 있는 게 보여. 그러면 죽음이 무섭지 않고 세상이 진짜 아름답단다. 이렇게 꽃 피는 것만 봐도 좋아!”
“이모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는데 세월이 덧없지 않으세요?”
“덧없긴, 고맙지”

생은 고마운 것이다. 나는 죽음과의 조우를 통하여 일상의 행복과 인생의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행복과 고마움을 느끼러 간다. 왠지 책상에서보다 바깥 공기 속에서 다 많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이만 일어선다.
IP *.134.1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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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4.03 22:27:40 *.48.44.248
희석님 인상이 아주 좋았어요.
속에 꽉 차있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같은 느낌이랄까요.
앞으로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주실 분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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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4.06 10:11:10 *.218.205.128
"덧없긴, 고맙지"
이 한마디 말로 모든게 밝아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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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7.04.08 23:12:55 *.77.216.97
하나님, 좋은 책, 멋진 친구들.... 희석씨와 항상 함께 하는 것이군요.
희석씨가 떠나더라도 하나님과 좋은 책, 멋진 친구들의 곁에는 항상 희석씨가 있는거죠... 너무나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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